[특별기획연재] 우리가 몰랐던 괴산의 최초창의융합적 진품명품 54.
[특별기획연재] 우리가 몰랐던 괴산의 최초창의융합적 진품명품 54.
  • 괴산타임즈
  • 승인 2024.03.1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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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
구곡문화연구전문가
이상주 교수.
이상주 교수.

지난호에 이어 ☞

제8부 제월리 고산구곡과 충북 최고의 은병암 잔도(棧道) 4.

첫째, 은병암잔도(棧道)를 주목한 김대진(金大鎭 1800~1871)의 시를 보자. 2024년 1월 18일 금요일 검색하여 확인했다. 영감과 판단력을 주시는 은병잔도신령님과 조상님께 감사한다. 김대진, ‘정와선생문집(訂窩先生文集)’ ‘권1시(詩) 16일 괴강천(槐江遷)’, 한국고전번역원, 장성덕(張星德)해제. 16일은 신축년 즉 1871년 8월 16일이다. 번역해본다.

“백절영우일선천(百折縈紆一線遷),전행곡곡진람연(前行曲曲盡嵐煙). 의미송계소산제(依微松桂小山際),망창겸가추수변(莽蒼蒹葭秋水邊).포독입암응유리(抱犢入巖應有里), 연롱유정기다선(煉龍遺鼎幾多仙).차신이재령진굴(此身已在靈眞窟),시향경풍송양견(試向輕風竦兩肩).백 번  돌아가는 외길의 잔도, 앞으로 굽이굽이 나가니 아지랑이 안개가 끝나네. 소나무 계수나무 작은 산에 희미하고, 갈대가 가을물가에 무성하고 푸르네. 송아지 끌고 은병암에 들어가니 응당 마을이 있으며, 연단을 만들어 용을 타고 승천하여 쇠솥만 남았으니 신선이 얼마나 많겠는가? 이 몸이 이미 신령한 굴에 와있어, 시험삼아 가벼운 바람을 향하니 양어깨가 오싹해지네.” 김대진은 은병암 잔도를 지나가면서, 신선의 세계라 은유했으니 시의 기교가 뛰어나다.

둘째, “연롱유정기다선(煉龍遺鼎幾多仙)”은 다음의 고사를 인용했다. 전설상의 제왕인 황제(黃帝)가 형산(荊山) 아래에서 솥‘정鼎’을 주조완성하고 연단(鍊丹:신선이 먹는다는 단약)을 만드니,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황제를 태우고 승천하는데, 이때 신하와 후궁 70여 명이 용을 타고 함께 하늘로 올라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용의 수염을 잡으니, 수염이 뽑혀 떨어지면서 황제의 활과 검(劍)이 함께 떨어졌다. 남은 백성들은 그 활과 검을 끌어안고 우러러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로 인하여 후대에 이곳을 정호(鼎湖)라 불렀다. ‘史記 권28 封禪書’. 위시에서는 신선이 되었다는 점을 비유했다.

셋째, 은병암잔도는 필자가 2001년 발견하여 ‘동서어문연구’ 제17집, ‘구곡문화관광특구와 구곡시 연구’ 라는 논문에 소개했다. 필자가 제보하여 2008년 중부매일 노승혁기자가 촬영하고 조혁연기자가 글을 써서 소개했다. 2016년, 동양일보 하은숙기자가 다루었다. 2023, 충청리뷰, 김영이 기자가 ‘기획 시리즈, 왜 문화산수 구곡특별군 괴산군인가(2)’에서 다루었다. 이탄리에서 태어난 어떤 분은, 어렸을 때 이 은병암에서 다이빙하며 물놀이했는데 그게 잔도인지 몰랐다고 한다. 어린 시절이라 식견이 부족하고 잔도를 알지 못한 것이다. 조성한지 오래돼서 자연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필자는 잔도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보는 순간 인위적으로 조성한 잔도라는 것을 알아봤다. 견문의 차이가 식견(識見알아보는 능력)의 차이다.

넷째, 위에서 제시했듯이, 1800년대 후반에도 외지인들은 은병암잔도를 답사하고 시를 남겼다. 지금껏 은병암 잔도에 대해, 충북사람이나 괴산사람이 시를 지은 사람을 찾아내지 못했다. 나의 느낌을 적어본다. “천하장사가 바위 절벽을 디디고 지나간 발자국, 움푹 파여 길이 되니 사람들 편안히 지나다니네.지혜롭게 홍익한 사람들 이름은 새기지 않았어도,적선공덕은 암벽잔도와 함께 만고에 책이 되었네.”고향의 역사문화를 찾아내고 사랑하는 것이 고향사랑의 기본이다.

다섯 째. 각고의 노력이 절대 중요하다. 송시열(宋時烈)도 각고(刻苦)라는 휘호를 남겼다. 진천군 초평면 양촌리에 만권루를 건립한 이하곤(李夏坤1677~1724)은 어머니가 혹독하게 공부시켜 눈이 물렀다. 삼경사서와 당송팔대가 등을 기본으로 암기했다. 그림, 글씨, 골동품등 다방면에 고도의 식견을 구비하여 만물박사가 됐다. 너무 무리해서 그런지 48세에 서거했다. 그러나 시문집 ‘두타초’ 18책을 남겨 불후의 인물이 됐다. 그의 시문은 그 시대 문학, 회화, 서예의 동향을 알 수 있어 가치가 높다. 그래서 학자들이 많이 연구했다. 송상현(宋象賢:현명한 사람을 본받다)의 이름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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