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와 도화서(圖畵署)
김홍도와 도화서(圖畵署)
  • 괴산타임즈
  • 승인 2018.11.17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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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이근우와 연풍현감 김홍도] 김홍도의 풍속화는 인물이 주가 되어 있다
이근우 중원대 교수.
이근우 중원대 교수.

정조(正祖) 때에 조선시대 화원제도(畵員制度)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조선 초기부터 궁중의 도화업무를 담당하던 도화서(圖畵署)와 별도로 규장각에 화원을 차출하여 일명 “자비대령화원”을 실시하였기 때문이다.

조선의 도화원은 고려의 화원과 달리 일찍부터 육조(六曹)에 귀속되었다. 명목상의 이유건 실질적 필요에 의해서건 도화원이 예조(禮曹)의 한 기구로 명시된 것은 분명 고려와는 대조적인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화원제도에 있어 두 번째 시기는 성종(成宗)의 도화원에서 도화서로의 개편으로 시작되었다. 이 시기 개혁의 특징은 화원 기구의 규모와 지위는 축소되었지만, 그 제도는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정비되었다는 점이다. 
   
화원 제도에 있어 세 번째 시기는 정조 때에 자비대령화원 제도를 설립하여 도화서와 함께 이원적으로 운영한 것을 기점으로 삼을 수 있다.

즉, 정조는 1783년(정조7) 자비대령화원제를 설치하였는데, 즉 도화서 화원 중 10명을 규장각에 차출하여〔差備〕임금의 명령을 가까이서 기다리는〔待令〕화원이다.

당시 도화서와 규장각이 화원을 운영한 이중 구조였다. 하지만 자비대령화원은 규장각에서 선발하고 대령한 화원이지만 형식적으로 도화서에 소속되어 있었다.(유재빈, 정조대 궁중회화 연구)

정조의 ‘홍재전서’에 

김홍도는 그림에 솜씨 있는 자로서 그 이름을 안지가 오래다. 30년쯤 전에 나의 초상을 그렸는데, 이로부터 무릇 그림에 관한 일은 모두 홍도를 시켜 주관케 하였다.(생략)...(金弘道工於畵者知其名久矣 三十年前圖眞自是凡屬繪事 皆使弘道主之畵師)

정조는 김홍도라는 인물과 생애를 가장 포괄적이고도 요약적으로 『홍재전서』에 언급하고 있다.

국왕이 자신의 문집에서 하급관리인 화원의 이름 석 자를 거명하면서, 30년에 걸친 그림을 통한 봉사를 직접 설명하고 아울러 만족의 뜻까지 표명한 것은 유교 국가에서 극히 전례가 드문 일이라 하겠다.

철인군주, 예인군주로서 정조가 위민정치(爲民政治)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김홍도와 도화서와의 만남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도화서 터 표지석 : 을지로 입구 4번 출구.
도화서 터 표지석 : 을지로 입구 4번 출구.
서울시 우정국로 55, 조계사 정문을 바라보고 오른쪽 약 30m 지점.
서울시 우정국로 55, 조계사 정문을 바라보고 오른쪽 약 30m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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