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기획] 괴산 충민사(槐山 忠愍祠)·취묵당(槐山 醉墨堂)
[탐사기획] 괴산 충민사(槐山 忠愍祠)·취묵당(槐山 醉墨堂)
  • 괴산타임즈
  • 승인 2018.09.24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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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괴산타임즈 노원래 기자
충북 괴산군 괴산읍 충민사길 46 충민사. /사진·괴산타임즈 노원래 기자
사진·괴산타임즈 노원래 기자
사진·괴산타임즈 노원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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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12월 21일 충북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왜군과 맞서 싸우다가 순절한 충무공(忠武公) 김시민(金時敏:1554~1592)과 그의 숙부인 문숙공(文肅公) 김제갑(金悌甲:1525~1592)의 위패를 봉안하고 배향하는 사당이다. 

김시민은 1578년(선조 11) 무과에 급제하여 1591년(선조 24) 진주판관이 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진주목사로 부임하여 사천·고성·진해 등에서 왜적을 물리치고 경상우도(慶尙右道) 병마절도사가 되어 진주성에서 적과의 치열한 교전을 벌이다가 전사하였다. 1604년(선조 47) 2등 선무공신(宣無功臣)에 추록되고 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김제갑은 1553년(명종 8)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여 1555년부터 홍문관정자, 병조좌랑, 정언(正言) 등을 역임하고 1581년(선조 14)에는 충청도 관찰사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 원주목사였던 그는 관군과 의병을 이끌고 영원산성에서 왜적과 교전을 벌이다가 부인 이씨, 아들 시백(時伯)과 함께 전사하였다. 그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능촌리 야산자락에 위치하며, 입구의 안내판을 지나 석조계단을 오르면 앞에서 부터 자연경사를 따라 외삼문·내삼문·사당이 일렬로 서 있다. 바깥 마당에는 김시민장군신도비와 박종화(朴鐘和)가 짓고 이상복이 쓴 김시민장군유적정화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효충문(孝忠門)이라 불리는 외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을 올린 평삼문이고 선무문(宣武門)이라 불리는 내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에 맞배지붕을 올린 솟을삼문이다. 본 건물인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으로 처마 밑에 ‘충민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네이버지식백과

충북 괴산군 괴산읍 충민사길 45 취묵당. /사진·노원래 기자
충북 괴산군 괴산읍 충민사길 45 취묵당. /사진·노원래 기자
1억1만3000번을 읽었다고 하는 일명 억만재(億萬齋) 편액(扁額). /사진·괴산타임즈 노원래 기자
취묵당중건기 편액(扁額). /사진·괴산타임즈 노원래 기자

취묵당은 1662년(현종3년)에 백곡 김득신(栢谷 金得臣)이 만년에 세운 독서재(讀書齋)이다. 팔작지붕에 목조 기와집으로 내면은 통간 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렀다.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괴강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더불어 정자건축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김득신의 자는 자공(子公), 호는 백곡(栢谷)·구석산인(龜石山人),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의 손자이다. 영감과 직관을 통해 자연의 생명을 조화롭게 읊은 시가 으뜸이라고 칭해진다. 5언ㆍ7언 절구를 잘 지었으며 시어와 시구를 다듬는 것을 중요시했다.

김득신이 이곳에서 '史記(사기)', '伯夷傳(백이전)'을 1억 1만3000번을 읽었다고 하여 일명 억만재(億萬齋)로도 불린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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