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맛 좀 볼까
매운 맛 좀 볼까
  • 괴산타임즈
  • 승인 2018.08.2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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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준의 한방의학] 아마도 매운 맛은 맛 자체보다 그 매운 맛이 가져오는 이런 분위기 때문이다.
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우리나라에 고추가 들어온 것은 16세기의 일이며 이것이 김치 등에 향신료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8세기의 일이고 전국적으로 고추의 사용이 일반화되는 것은 20세기 중반의 일이다.

고추가 우리 입맛을 사로잡기까지 약 400년이 걸렸다. 물론 고추 이전에도 우리는 매운 맛을 즐겼다.

그때 사용된 재료는 후추나 겨자, 마늘, 초피(문헌에는 천초로 되어 있다) 등이었다. 특히 초피는 매운 맛을 내는 대표적인 재료로 쓰였다.

마늘은 단군신화에서부터 나오니까 아주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누구나 매운 맛을 즐기는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1986년에 나온 신라면의 광고에는 “사나이 대장부가 울기는 왜 울어”라는 말이 나온다.

이때만 해도 매운 맛은 남자들도 먹기 힘들었다는 뜻이다. 매운 맛이 일반화된 것은 대체로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일로, 세계적인 매운 맛의 선풍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 선풍은 멕시코 음식인 살사에 쓰인 칠리소스가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주영하, 음식인문학).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우리만의 특징이 있다.

첫째는 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매콤 달콤’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것처럼 매운 맛에 단맛이 곁들여졌다.

1970년대부터 널리 퍼진 고추장 떡볶기에 다량의 물엿이 들어가 맛이 달달하게 변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둘째로 서양에서는 다이어트나 건강이라는 측면과 향신료 정도의 의미를 갖는데 비해 우리는 고추장과 같이 주요한 양념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이 시기는 우리 음식이 ‘맵고 달고 짜고’로 변하는 때이기도 하다. 

이러한 변화는 음식 프랜차이즈 사업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국내 음식 시장을 노린 외국의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이 80년대 말부터 대거 들어오자 국내 프랜차이즈 사업도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김밥 프랜차이즈인 종로김밥이 1994년에 시작된 것도 이런 흐름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들 프랜차이즈 음식은 무엇보다도 식재료와 관계없이 언제 어디서나 일정한 맛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식재료는 계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제철이 아니면 제 맛을 내기 어렵고 가격도 비싸게 된다.

그래서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식재료의 원래 맛을 없애는 소위 ‘코팅’이다. ‘싸구려 식재료를 숨기는 악덕 마법사’(황교익, 미각의 제국), 곧 화학조미료가 필요한 것이다.

또 하나, 한 번 먹으면 그 맛을 잊을 수 없고 다시 찾게 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매운 맛이다. 매운 맛은 중독성이 있다.

먹을 때는 눈물이 날 정도로 입이 얼얼하고 먹고 나서는 속이 쓰리고 마지막으로 대변을 볼 때까지 힘든 것이 매운 맛이다.

그래도 다시 생각나 찾게 되는 것이 매운 맛이다. 많은 프랜차이즈 음식이 매운 맛으로 승부를 걸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매운 맛을 먹으면 땀이 난다. 몸에 열을 내게 해준다는 말이다. 그래서 매운 맛의 기는 뜨겁다고 한다. 몸을 덥혀주니까 추운 지역에서 매운 맛을 좋아할 것 같지만 반대다.

고추의 원산지는 남아메리카의 아마존 강 유역일 뿐만 아니라 지금도 매운 고추는 대개 더운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다. 왜 그럴까? 

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더운 곳 또는 더운 때는 열기도 있지만 습기도 많다. 원래 ‘열熱’에는 습기가 포함되어 있다.

습기가 없이 뜨겁기만 한 것은 ‘화火’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 곳에서는 이열치열하는 이치로 땀을 내서 몸으로 들어온 더운 기운과 습기를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이것이 더운 곳의 사람들이 매운 맛을 즐기는 이유다. 

늘 더운 지역에서는 이런 일이 계속되다 보니 땀구멍도 추운 지역에 비해 더 크고 잘 열리게 되어 있다.

비교적 더운 지역인 홍콩 같은 곳에서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지 않았는데도 노숙을 하다 얼어 죽었다(정확하게는 저체온증으로 죽은 것이다)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 마디로 찬 기운에 대해서는 별다른 면역이 없는 것이다. 

또한 더울 때의 몸속은 밖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갑다. 이를 한의학에서는 음기가 숨어 있다고 하여 복음伏飮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몸의 겉은 땀을 내서 더위나 습기를 몰아내야 하지만 몸속은 덥혀주어야 한다. 이런 필요에 가장 적절한 것이 바로 매운 맛이다.

몸속은 덥혀주면서 땀을 내어 몸 겉의 더위와 습기를 몰아내는 것이다. 한의학에서 추위에 상한 병을 다룬 분야가 추운 북쪽이 아니라 더운 남쪽에서 발생한 것(상한론傷寒論)은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반면 추운 곳에서는 반대의 현상이 벌어진다. 추운 곳에서는 함부로 땀을 내서는 안 된다. 땀을 흘려 땀구멍이 열리면 몸 안의 열이 빠져나갈 뿐만 아니라 밖의 추운 기운이 들어오게 된다.

이럴 때는 오히려 몸 안을 약간 차게 하여 땀구멍을 막을 필요가 있다. 겨울에 냉면을 먹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매운 맛은 원래 더운 지역 또는 더울 때 먹으면 좋은 맛이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여름의 음식은 쓴맛을 줄이고 매운 맛을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보면 설렁탕을 먹을 때 여름에는 파를 많이 넣어 먹어야 좋고 겨울에는 파를 넣지 않고 먹는 것이 좋다. 냉면은 겨울에 먹는 것이 좋고 여름에는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매운 맛은 여러 가지 효과가 있다. 첫째는 열을 내주는 것이다. 둘째는 열을 내서 땀을 나게 한다. 셋째는 식욕을 늘려준다.

넷째는 몸에 진액을 생기게 한다. 매운 것을 먹으면 입에 침이 도는 것이 바로 매운 맛의 효과다.

이외에도 돌림병을 막는 효과도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정월에는 다섯 가지 매운 맛이 나는 음식을 먹어서 전염병을 예방했다.

다섯 가지 음식이란 마늘, 파, 부추, 염교, 생강이다(식의심경食醫心鏡). 여기에 고추는 빠져 있다. 아직 고추가 중국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운 맛에는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 소위 엔돌핀이라는 것의 생성을 촉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를 오행으로 말하자면 매운 맛으로 금金의 기를 늘려서 간의 기를 억누르기 때문이다(금극목金克木). 특히 고추의 캡사이신은 관절염, 항암, 시력회복, 야맹증 등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체지방을 연소시키기 때문에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다. 그래서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는 고추를 차로도 먹는다.

매운 맛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한번 매운 맛을 보고 나서도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찾게 된다. 매운 것을 먹으면 누구라도 조용히 있을 수 없다.

입김을 호호 불며 땀을 씻어내며 연신 물을 찾게 된다. 심하면 눈물을 흘리고 딸꾹질까지 한다. 그런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아마도 매운 맛은 맛 자체보다 그 매운 맛이 가져오는 이런 분위기 때문에 다시 찾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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