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찰옥수수
[기고] 찰옥수수
  • 괴산타임즈
  • 승인 2018.07.2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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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현 괴산군 농특산물 판매장 운영자
조광현 씨

찰옥수수 철이 또 돌아왔다. 웬만한 국도엔 옥수수를 파는 노점상들이 더운 줄도 모르고 손을 흔들고 있다. 가마솥에서 금방 꺼낸 뜨거운 옥수수를 호호 불면서 한 알씩 따먹는 것은 지난 추억만큼이나 맛이 있다.

내가 어렸을 때도 찰옥수수를 심었다. 다른 집들은 간식용으로 밭둑이나 콩밭에 듬성듬성 심었지만 우리는 밭 전체에 심었다. 장돌뱅이를 하시던 엄마에게 옥수수는 아주 좋은 상품이었다. 그 날도 아버지께서는 옥수수를 한 지게 베어 오셨다. 잘 여문 일등급은 속껍질을 남겨두고 벌레가 먹었거나 이가 빠진 불량품은 껍질을 다 벗겼다. 가마솥에 불을 피우면서 신이 났던 것은 단지 맛난 옥수수를 먹는다는 설레임 때문이었다. 잘 타고 있는 장작불에도 부채질을 하면 김이 폭폭 나며 가마솥 뚜껑 사이로 감동의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드디어 다 익었다고 호들갑을 떨면 엄마는 잠시 뜸을 들여야 한다며 동네 한바퀴를 돌고 오라 하신다. 두말없이 잰 걸음으로 사뿐사뿐 고샅을 돌고 오면 기쁨도 잠시였다. 잘 여문 일등급은 광주리에 가지런히 진열되어 장에 갈 준비를 하고 불량품은 점심 대용이었다.

이가 빠지고 못생긴 것이 맛은 더 있다고 하시며 한 바가지를 주신다. 그래도 내 소원은 저 일등급을 먹어 보는 것인데 엄마는 말도 못 꺼내게 하신다

"저 것들을 잘 팔아야 너희를 공부시키지......." 그 한마디에 막 나오던 침도 멈춘다. 또 그 소리야 하면서도 맛나게 잘 먹었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나는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일등급 두 개를 가져다가 웃방 장농속에 얼른 숨겼다. 나중에 아무도 없을 때 나혼자 꺼내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강가로 달려가 물에 풍덩 뛰어들었다. 물놀이에 정신을 빼앗겼다가 깜박하고 다음날 장농 속이 생각났다. 장농 문을 열고 깜짝 놀랐다.두근거리며 껍질을 벗기는 순간 이상한 냄새와 함께 노오란 곰팡이로 분장한 일등급 옥수수가 나를 비웃고 있었다.

올 해도 텃밭에 찰옥수수를 심었다. 맛난 옥수수를 먹는 기쁨보다도 엄마 생각을 덤으로 맛 볼 수 있기에 해마다 심는다. 그런데 옛날 그 맛이 안 난다. 그래서 묘목을 고향 괴산에서 얻어다 심어 봐도 그렇고. 껍질을 다 벗겨서 삶아도 보고, 한 잎씩 덮여서 삶아도 보았지만 그 맛이 아니다. 내가 옥수수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럴까도 고민해 보았지만 내가 정작 모르는 것은 옥수수 맛이 아니라 엄마의 마음이 아닌가 싶다. 그거 하나 못 판다고 어찌되는 것도 아닌데 막내 아들에게 선뜻 내어 주지 못한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설령 아무리 잘 설명을 한다 한들 못 알아 듣고 땡깡을 부릴 것이 뻔한데......... 

엄마는 학교 문턱에도 가 본 적이 없어 당신의 이름조차도 쓰지 못하고 그리셨다. 지독한 가난에 쪼들리다 행상을 시작했고 그렇게 장돌뱅이로 반평생을 지내셨다. 거친 시장 사람들속에서 뼈저리게 느끼고 한이 된 것이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자식만큼은 공부를 시켜야겠다는 것이 엄마의 신념이셨다.

풀리지 않는 세상의 미스터리 중에 어머니도 있다고 한다. 어머니란 말만  들어도 목이 메이고 눈물이 맺힌다고 한다. 자식을 위해 희생과 헌신으로 온 몸을 던졌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어머니도 험한 세상을 사셨지만 당신의 가르마 같이 오직 한 길을 걸으셨다. 십여년째 전화도 안받으시고 하늘나라에 계시는 어머니가 단 한 시간만이라도 특별 면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포근한 어머니 품에 안겨 솔껍질 같은 손을 꼭 잡으며 살아생전 못한 ' 어머님 고맙습니다! ' 라고 고백하며 실컷 울고 싶다.

다른 채소들을 심을 때도 그렇지만 옥수수는 더욱 정성을 들이고 거름도 더 많이 준다. 쫀득쫀득한 찰옥수수를 먹을 때마다 찰진 어머니의 향기를 느끼기 때문이다. 

감히 누가 어머니의 사랑을 함부로 말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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