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꽃이 피면
서울에 꽃이 피면
  • 괴산타임즈
  • 승인 2018.05.03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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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 이승신 컬쳐 에세이 작가.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의 봄꽃이 만개한 것을 보는 것은 오래간만이다. 지난 20여 년 그 시기에 교토나 도쿄를 갔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그 곳의 봄꽃을 보고 돌아오면 우리의 봄꽃이 피어났기 때문에 양쪽의 꽃을 누리기도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거의 같은 때에 서울의 꽃이 피어났기 때문에 한쪽만 보게 된 것이다.

그것을 이번에 1월의 갑작스런 사고로 생고생을 하며 외국 일정을 취소하면서도, 느즈막이 4월 초라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교토의 봄꽃, 그 중에도 늘어진 수양벚꽃 시다레자쿠라는 보게될 줄 알았는데 퇴원 후에도 회복중이어 한시간여의 비행을 하지 않았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교토 여러 군데의 기막힌 예술의 진분홍빛 시다레자쿠라가 눈앞에 하늘하늘 거리지만 내 고향 서울의 봄꽃을 느긋이 바라보는 기회로 삼게 된다.

우선 아침에 깨어나면 저편에 부엌 작은 창이 보이고 그 유리로 앞집의 붉은 벽돌 집이 보였지만 며칠 전부터 하얀빛 벚꽃이 가득 차 상쾌하게 나를 놀라게 한다.

아 잔인한 긴 겨울이 지나갔구나. 새 계절 새 생명이 피어났구나. 방금 뭔가 꿈을 꾸다 깨어났는데 저 꽃이 꿈은 아니겠지. 희망이겠지.

꽃 뒤로 보이는 그 집은 육영수 여사의 오빠인 육인수씨가 살았고 모시고 사는 어머니가 박정희 대통령의 장모여 육여사 가신 후 대통령과 큰 딸 박근혜가 자주 왔고 앞뒤 골목을 막았지만 나는 이층 내 방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 보곤 했었다.

언젠가는 당대 유명한 코미디언 다섯, 곽규석 뚱뚱이 홀쭉이 김희갑 구봉서가 거기서 '오부자五父子' 라는 영화를 찍은 생각이 나고, 미국에서 한참 후 오니 인도대사관이 되어 있었다.

그 후엔 3층 빌라를 지었고. 빌라를 지으며 잘 안팔렸는지 바로 앞에 계신 어머니에게 하나 사라고 했는가 북악산이 부엌에서 다 보이는 제일 좋은 전망의 집하나를 잡았는데, 그 후 은행빚을 갚으려 아무리 팔려고 해도 팔리지를 않자 나에게 이것을 너에게 주고 싶다고 하셨다.

그때는 일로,  비싼 아들 미국학비 내는 한창 바쁘던 때여서 관심이 없었고 들어가 보니 수리할 일이 막막해 안하겠다고 했다.

여러 번 조르시어 십대 저항하듯 '그거 수리할 시간이 돈이 안되니 안하겠다' 고 뻣대니 형제 몰래 주시려던 어머니는 긴 한숨을 지었다.

파는 거라도 본격 알아보다 가까운 새문안교회가 담임목사를 프랑스에서 초빙하여 산 값의 반으로 내려간 그 집을 중환자 실에서 함께 계약했고 어머니는 그것으로 은행빚을 갚고 가셨다.

지금 꼭 필요한데, 아침에 눈을 뜨면 그것부터 눈에 들어 와 순진하고도 어리석던 당시,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어머니의 말은 무어든 꼭 들었어야 했는데 를 볼 때마다 상기시키는데 거기에 새하얀 꽃이 어머니의 메세지처럼 불현듯 피어난 것이다.

방의 서향 창으로는 뒷뜰이 보이는데 거기에 오래전 내가 심었던 벚나무가 훌쩍 큰 키로 자라나 뭉게구름처럼 꽃무리로 피어난다. 1년을 잊고 있던 그 꽃이 봄에는 피어나 나를 놀래게 한다.

오래 전 미국으로 공부가기 전 날, 카메라도 잘 없던 때, 나의 어린 시절부터 사진찍기가 큰 취미였던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경복궁에를 갔다. 경회루 앞 벚꽃 잎이 하늘하늘 휘날렸던 걸 보면 3월말이나 4월이었을 것이다.

그린빛 두터운 스웨터 재킷을 입고 앞으로 펼쳐질 날들은 전혀 모른채 밝은 눈임에도 돗수 없는 둥근태 안경을 끼고 있었고 그리고 그 뒤에 늘어진 수양 벚꽃이 피어 있었다.

사진이나 기록은 좋은 것이다. 지금은 어디있는지 모르겠으나 오래도록 본 그 사진으로 그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벚꽃을 배경으로 환히 웃는 나의 사진, 자신의 작품을 인화해 뒷면에 보석같은 첫 딸을 멀리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한 줄의 시로 써서 한일 지인들에게 보냈었다.

그 경복궁으로 천천히 걸어가 본다. 청와대 앞쪽 산책을 하다 경복궁을 가끔 들어가지만 경회루 물앞에서 어머니가 사진찍어 주시던 그 꽃 배경 장면은 실로 40여 년 만이다.

그간 벚꽃길이 우리나라 곳곳에 많이 생겨났지만 늘어진 수양벚꽃은 잘 없다.

현충원에 몇 그루가 있고 요즘은 여기저기에 조금 있지만 땅까지 내려올수록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걸 모르고는 늘어진 긴 가지 중간을 툭 잘라버리기 일쑤다. 

경회루 물앞, 삼각형의 사랑스런 북악산과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흔들거리는 수양벚꽃 시다레자쿠라가 내가 처음 본 시다레자쿠라 수양벚꽃이다.

이 땅에 남겨진 사람은 외롭다. 아버지 한참 먼저 가시고 남겨진 어머니도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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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  시인, 에세이스트, TV 방송인,  손호연단가연구소 이사장 

이대영문과, 와싱톤 죠지타운 대학원, 뉴욕 시라큐스 대학원, 교토 동지사대학

미국의소리방송, 한국방송위원회 국제협력위원, 삼성영상사업단 & 제일기획 제작고문 역임

저서 -치유와 깨우침의 여정, 숨을 멈추고, 오키나와에 물들다

삶에 어찌 꽃피는 봄날만이 있으랴, 그대의 마음있어 꽃은 피고

Love Letter, 호연연가,  孫戶姸의 101수 단가집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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