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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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괴산타임즈
  • 승인 2017.10.17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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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이승신의 컬쳐에세이 - 야스코


동경 야스코

오뎅을 먹으며,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갑자기 어머니가 서울에서 가시자 여러 추억이 몰려왔다.

그 중 하나가 1980년 워싱톤에 살 때인데 서울 집으로 가면서 당시 동경의 대학원에서 만엽집萬葉集 연구를 하시던 어머니를 만나러 동경에 내렸다.

그 때 어머니와 외식을 한 중에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이 긴자 4정목 어딘가에서 오뎅을 저녁으로 들었던 오뎅집이다.

어머니가 언젠가 세상을 떠나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긴자銀座에서 가까운쯔끼지 つきじ築地 수산시장에서 먹은 스시, 긴자에서 든 하이라이스 그리고 오뎅을 먹으면서도 주위를 둘러보지 않아 거기가 어디인지 전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가시자 그제야 철이 좀 든 나는 일본에서 대가로 알아주는 어머니의 시심을 가시기까지 일생을 산 한국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쉬워 여러 책을 기획하고 일생을 다룬 영상 작품을 기획했다.

한국과 일본의 몇 곳을 오가며 찍은 어머니의 다큐멘타리가 2년이 되어서야 완성이 되고는 동경 프레스센터에서 다큐 시사회를 가지게 되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뒷문으로 나가면 긴자銀座였다. 긴자를 보니 그 오뎅 집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인상에 남는 건 맛도 고급스러웠지만 아담한 크기의 오뎅집에 밍크 코트 등 고급으로 치장한 사람들이 보였고 어머니가 내는 돈이 생각보다 커서 놀랐던 생각이 난다.

서울에서 오뎅은 서민적이고 싼 음식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의 추억도 돌아보고 그걸 점심으로 먹고는 6시 시작하는 다큐 시사회에 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동경 최대 번화가, 긴자 4 정목에서 어느 방향이었는지 전혀 감이 안와 이쪽으로 갔다 저쪽으로 갔다 시간은 자꾸 가고 아래 위로 아무리 걸어도 긴자 비싼 땅덩어리에 오뎅집 해서 그 임대료 내고 할만한 데가 영 보이질 않았다.

화려한 긴자를 두세 시간 걸으며 마음이 급해 주위를 살피나 그 집 이름을 모르니 속수무책이었다.

이러다간 모처럼 온 동경이고 어머니를 아는 많은 분들이 참석하는 시사회에 인사도 하고 일어로 스피치도 해야 하는데 늦으면 안되겠다 싶어 아쉬우나 아무거나 빨리 들고 가야 해 스즈란 すずらん鈴蘭 골목 깊이에서 그저 먹는데 같아 보이는 집 노렝 のれん暖簾 을 제치고 들어갔다.

어머니와 둘이 가진 추억찾기를 완전 포기하고 당시 위치나 상호를 보지 않은 걸 후회하며 미국 삶의 좋은 이야기도 많은데 오랜만에 뵌 엄마에게 하필 고민거리나 얘기한 걸 더 깊이 후회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안으로 들어가 오뎅 끓이는 커다란 통을 보니 그토록 내가 찾던 바로 그 집이 거기 아닌가. 아 그렇다, 야스코 やす幸 다.

엄마와 같이 앉았던 자리가 보이자 손을 놓쳐버린 엄마 잃은 고아처럼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의 손이 그 곳을 찾으려 애쓰는 이 딸을 그리로 인도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둘이 오뎅 끓이는 그 카운터 앞에 앉아 요거요 저거요 큰 통속의 오뎅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동그란 접시에 먹음직하게 내주던 바로 그 자리다.

2005년에 다시 앉았으니 어머니와 들던 게 25년 전의 일이고 지금으로부터는 37년 전의 일이나 엊그제 같기만 하다.

살아계실 때 일본 천왕이 단가短歌의 대가로 궁에 초청하였고 내가 엄마 없이 오뎅집을 찾은 그 때는 서울의 한일정상 회담에서 양국정상이 어머니의 평화정신을 이야기한 직후였다.

그 일을 조금만 더 서둘렀다면 어머니가 그 광경을 보실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그 생각을 하며 어머니의 시를 담은 액자 하나쯤 이 작은 벽에 붙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그 후 동경에 갈 일이 있으면 1980년 한 겨울 추억의 오뎅집 야스코부터 찾는다. 어머니의 모습이 거기에 또 보일까 싶어서다.

누가 식사약속을 하자고 하면 거기에서 만나기로 한다. 거기서 그 스토리를 들려주면 감동해 하고 맛도 일품이라고 한다.

연로한 주인의 어머니가 세운 오뎅집이라니 역사도 길 것이다.

오픈된 작은 주방에 오뎅을 끓이는 사람이 십여명은 되고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얼굴들이 반긴다.

그 후 어려운 일이 있으면 막막한 동경 한복판 어머니가 딸을 먹이고 싶어 큰 맘먹고 데려 가셨던 그 오뎅집을 찾다찾다 낙담해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바로 그 순간, 불현듯 해피엔딩이 되었던 그 생각을 떠올리며 나는 희망의 자세를 곧추 세운다.

 

삶의 고비 

헤메고 헤메여도 답이 안나올 제

나는 떠올리네

말없는 어머니의 그 메세지

야스코 やす幸의 메뉴와 수저의 엠블럼 - 동경 긴자 2015 5
커다란 통 안의 먹음직한 오뎅과 곤약꾸, 무와 두부와 야채
오픈된 작은 주방에서 십여명의 쉐프가 오뎅을 끓인다.
야스코 2대째 주인 이시하라 이사시 石原 壽
파를 올린 두부와 오뎅
야스코 - 동경의 긴자 4정목 스즈란도오리 2017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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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  시인, 에세이스트, TV 방송인,  손호연단가연구소 이사장 

이대영문과, 와싱톤 죠지타운 대학원, 뉴욕 시라큐스 대학원, 교토 동지사대학

미국의소리방송, 한국방송위원회 국제협력위원, 삼성영상사업단 & 제일기획 제작고문 역임

저서 -치유와 깨우침의 여정, 숨을 멈추고, 오키나와에 물들다

삶에 어찌 꽃피는 봄날만이 있으랴, 그대의 마음있어 꽃은 피고

Love Letter, 호연연가,  孫戶姸의 101수 단가집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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