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의 아일러브유 아이시떼루 워아이니
최인호의 아일러브유 아이시떼루 워아이니
  • 괴산타임즈
  • 승인 2023.10.3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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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이승신 시인님 괴산나드리
이승신 시인님 괴산나드리

명동 성당의 최인호 장례 미사는 엄숙하고 평안하고 아름다웠다.

둘러보니 안성기가 보이고 배창호가 보였다.

그들의 만감이 서리는 듯 슬퍼하는 표정을 보자 나는 좀 더 슬퍼졌다.

미사가 다하자 그의 관이 내 앞을 스쳐갔고 따라 나오니 유난히도 긴 리무진 속에 그를 길게 넣었다. 그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차 앞을 살짝 잡고 들여다 보니 유리 속 좌석에 꼭 살아있는 것만 같은 영정 속 최인호가 날 보고 빙긋이 웃었다. 세번 째 만남이다.
처음 보았던 그의 미소는 2007년 12월 20일

오랜만에 펼쳐 본 카렌다 북에 그가 써넣은 날자가 그렇게 쓰여져 있었다.

젊은 PD를 붙잡고 '한류 원조가 손호연' 이라고 하니 그 시인의 러브 스토리를 KBS 드라마로 만들어 보자고 기획을 만들어 준 지 오래 되었는데,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이면 독도 사건이 터지는 등 일이 벌어져 미뤄지기를 여러 해, 세월이 많이 지나 어느 날 그 PD가 KBS 사장이 되었다.

하루는 최인호가 구상해 만든 드라마는 다 성공했으니 그가 쓰면 된다며 사장이 그를 데리고 아이리스를 만든 KBS 드라마 감독과 최고 카메라맨들 일당 다섯이 나를 찾아 왔다.

최인호라~

미국에 살 때 서울 집에 다니러 와 그의 '가족' 시리즈를 읽은 재미며, TV 방송으로 선진국을 만들자며 정부가 3년 넘어 권유해 마침내 귀국했을 때, 책을 쓰고 있는데 동생이 느닷없이 '누나, 문학으로 성공할 수 있어?' 했을 때도 퍼뜩 떠올린 게 만나본 적 없는 최인호의 글빨이었다.

그런 이야기 만도 벅찬데 그 때 어떻게든 최인호를 설득해 손호연 한류 드라마 50회를 KBS에서 만들 근거를 만들어 일본 독자들이 반하는 손호연의 깊이 있는 사랑의 마음을 국민에게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어려서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가 평양 출신 변호사였다는 걸 어디서 보고 그 좋은 머리가 아버지에게서 온 건 아닐까 혹 평양 출신의 변호사인 내 아버지와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 저녁을 들며 그 이야기부터 꺼냈다.

아버지 이야기가 나왔고 서로의 아버지가 가셨으니 확인할 길도 없는데, 아무렇게나 입고 오려는데 마침 자기 집 아래 층에 살고 있는 서울고 동기 친구가 그 대단한 분을 만나려면 옷을 예의 있게 차려 입고 가야 한다고 해서 집으로 도로 가 이렇게 재킷을 입고 왔다고 했다.

그런데 그 예의라는 게 3분을 가지 않았다.

이화를 다녔다고 하니 히히 거리며 자기가 글을 처음 쓴 동기가 예전에 이화여중 다니는 눈부신 여학생을 보았는데 도저히 그의 눈에 띄게 할 도리가 없어 궁리해 낸 게, 글을 잘 써 유명해지면 혹 그의 눈에 띌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그 때부터 열심히 쓰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게 아일러브유 아이시떼루 워아이니~ 그런 몇 나라 말을 하더니 그 쪽 방향으로만 계속 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왜 손호연 드라마를 만들어야만 하는가' 를 부드럽게 말해 주었고 그는 연방 '승신씨 아일러브유 아이시떼루 워아이니~' 를 수시로 읊어댔다.

몇 시간 후 분위기를 바꿔 본다고 옆 테라스로 자리를 옮겼고, KBS 사장이 건네 준 다음 해 카렌다를 와락 뺏더니 첫 장을 열고 북북북 연필로 나를 스케치하더니 '사랑하는 이승신 2007 12 20  최인호' 라고 썼다.

장난기가 지나친 데다 도시 그에겐 심각함이라곤 하나토 없어 보였다.

사장이 설득되려면 그가 설득되어야 하는데 서울고 친구의 코치까지 한참 받고 왔다는 이가 저리 막무가네로 나오니 아예 하고 싶은 문학 이야기나 할 걸 싶었다.

나머지 다섯 사람은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우리 둘의 가는 방향을 말 없이 관전만 하고 있었다.

늦게사 이젠 틀렸다 싶어 일어나 어머니 문학관에서 집은 시집을 건네니 움칫하며 '아 신문에서 이 이야길 몇 번 봤어요'  처음으로 다소곳해지더니 자료를 더더 달라고 했다. '백제 이야길 그리 많이 썼는데 또 써야겠구먼' 이라고도 했다.

그리고는 며칠 후 새해가 되었고 '최인호 침샘암'이라는 희귀한 이름의 병명이 기사로 나왔다. 주위를 웃기던 유쾌함과 우려가 교차되었다.

4년이 지나갔고 교보 영등포점에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신간 사인회가 있다 해 갔다. 한국어 일어로 된 나의 시 250 수가 화제가 되어 시집을 한일 양국에서 내느라 지쳐 있을 때인데, 한마디 꼭 해주고 싶어 긴 줄에 섰다. 그는 나를 곧 알아보았고 경쾌하게 포옹을 했다.

바짝 마르고 한 여름에 두툼한 목도리를 두른 게 애처로웠지만 천진난만한 눈빛은 그대로였다. 제발 생명을 위해 쉬고 이런 두터운 책일랑 이제 고만 하라고 유난히 긴 에스컬레이터를 몇 칸 같이 타고 내려와 그가 주차한 데까지 길게 걸으며 애원했다.

응 응~

어머니 말 년에도 밤 늦게까지 팬레더 답을 하느라 같은 말을 듣지 않으셨듯 듣지 않을 게 뻔하지만 제발 그 탁월한 재능과 영성을 세상이 조금은 더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잃으면 손해다.

귀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작가 정신을 끝까지 불태우다 갔다고 칭송하지만 아쉬울 뿐이다. 연일 시인 소설가 문화부장 문학기자 연예인의 오랜 인연이 대서특필이다. 나는 두 번 만났을 뿐이지만 그 순박한 마음과 영성을 느끼기엔 충분히 진한 시간이다.

그에게 위로와 희망을 얻었던 많은 사람이 아쉬워 아직도 성당 안에서 서성이는데 나는 먼저 나와, 그를 실은 길다란 리무진 속에서 예의 환히 웃는 좀 젊은 그의 얼굴을 한동안 마주 했다.

유리를 사이로 우리는 이승과 저승이었으나 결국 같은 거였다.

아일러브유 아이시떼루 워아이니 즈땜므 사랑합니다 가 귓가에 쟁쟁히 들려온다.

아 그가 짧은 생에 주님을 보았다는 순간까지, 수 없이 글로 전하려던 메세지가 바로 그거였구나

아일러브유 아이시떼루 워아이니 즈땜므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어느 해 예수 이 땅에 오시기 나흘 전, 제발 깨달으라고 귀가 따갑고 따갑게 여러 시간 그가 들려준 '한 줄 시' 를 그 순간 나는 그에게 돌려주었다.

촉촉한 미소와 함께

아일러브유 아이시떼루 워아이니 즈땜므
사랑해~
삶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결국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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