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금석성의 노문을 지나다
[기획연재] 금석성의 노문을 지나다
  • 괴산타임즈
  • 승인 2023.10.04 15: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석우 작가
'대마도는 본시 우리 땅이다' 시리즈
눈물의 섬 대마도를 가다 115.
이석우 시인
이석우 시인

이즈하라의 외성은 청수산성이고 내성은 금석성이다. 내성에 들려면 노문을 통과해야 한다. 대마도의 명산인 유명산(아리아케산)을 배경으로 한 대마도주 가문의 가네이시성(금석성)에 들어가기 위한 통과의례인 셈이다. 대마도가 번창했던 1669년 종의진(소오요시자네)이 축성하였으며 역대 대마도주들이 거주하였다. 조선통신사가 오면 이곳에서 성대한 환영 행사가 열리던 곳이다.

성의 입구의 이 노문(櫓門)은 다이쇼 시대에 소실된 것을 17세기 후반에 새로 정비했던 것인데, 1919년에 도로공사로 또다시 해체하였다가 1990년 복원하였다. 이 노문은 금석성의 외문 겸 망루로 침입자를 경계하였고, 수성의 이중 장치로 해자까지 만들어 놓았다.

이곳은 조선통신사들이 올 때마다 성세를 이루더니 지금은 '조선통신사 막부 접우지지'라는 표지석이 그 옛날 문화축제에 대한 희미한 기억을 떠오르게 하고 있을 뿐이다.

이 노문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수영장이 있고, 앞으로는 아름다운 신지이케(心子池) 정원 형태의 공원이 펼쳐진다. 이것도 옛날 정원을 복원하였다고 할 수 있다. 200m쯤 걷다 보면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 만나게 된다. 1931년 5월 대마도주 종무지 백작과 결혼하게 되자, 대마도 주민들은 기념비를 세우고 잔치를 벌였다. 그 후 대마도 시내 구석에 쓸쓸히 버려졌는데, 한국 관광객이 성황을 이루자 2001년 다시 복원하였다.

1925년 4월, 일본은 '황족은 일본에서 교육시켜야 한다.'라며 덕혜옹주를 일본으로 강제 유학시켰다가 1931년 5월 36대 대마도 마지막 도주의 아들인 소 타케유키(宗武志)와 결혼했던 옹주는 끝내 불행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금석성의 노문

 


  • 충청북도 괴산군 관동로 193 괴산타임즈
  • 대표전화 : 043-834-7008 / 010-9559-6993
  • 팩스 : 043-834-7009
  • 기사제보/광고문의 : ssh6993@hanmail.net
  • 청소년보호책임자 : 노원래
  • 법인명 : 괴산타임즈
  • 제호 : 괴산타임즈
  • 등록번호 : 충북 아 00148
  • 등록일 : 2014-12-29
  • 발행일 : 2014-12-29
  • 발행인 : 노원래
  • 편집인 : 노원래
  • 괴산타임즈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괴산타임즈.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sh6993@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