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길
아카시아 길
  • 괴산타임즈
  • 승인 2023.06.2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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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이승신 시인
이승신 시인

6월이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 월도 너무 좋지만, 6 월로 들어서면 그간 눈에 잘 안 띄던 주위 나무들이 하나같이 신록으로 빛을 발하여 눈이 부시다.

집에서 나오면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든 산에 가 닿는데 이 시기는 배화여고 앞으로 해서 활터인 황학정 가는 길을 택하게 된다. ‘아카시아 길’이 있기 때문이다. 종로 도서관을 끼고 돌면 거기서부터 아카시아 나무가 활터 입구까지 한 30 미터 늘어 서 있다. 꽃 향기가 진동을 한다.

향기도 그런 향수가 있다면 사고 싶을 만큼 감미롭지만, 오래 전 아버지와 산책을 한 길이어서다. 평양서 오시어 가시기까지 두고 온 부모님을 보지 못 하였고, 파란만장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맞으시고도 시름 하나 없다는 듯, 어찌 그리 만사가 긍정이고 밝은 성품인지 이제서야 그 향기를 아카시아 향기처럼 느껴본다.

평양사범 장학금을 받은 책무로 대학 가기 전 2년을 만주에서 음악 교사를 했던 아버지는 일터에서 오시면 피아노를 치며 가고파 등을 부르고 저녁을 들고는 동네 산책을 하였는데, 나와는 아카시아 길을 걸었었다.

귀에 듣기 좋은 음성으로 말하시며 양 옆으로 늘어선 아카시아 녹 빛 긴 잎을 따서는 가위 바위 보, 별 놀이도 없던 시절 그 순박한 게임을 했다. 길다란 줄기에 열 몇 개 잎이 달린 걸 하나 씩 떼어내어 먼저 다 떼어낸 사람이 이기는 거다. 지금같이 서울 인구가 많지 않던 시절이어선가 그 길에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어린 딸에게 져주어 힘주고 싶으실 만도 한데 당시 내 기억으로는 아버지가 꼭 이기려고 벼르듯 열심히 하시던 생각이 난다. 나도 이기려 기를 썼다.

그때 들려주신 말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며 5 월부터 6 월 초까지 아카시아 하얀 꽃이 피어난 걸 보러, 아버지의 화안한 모습과 따뜻한 그 손길을 느끼려 집 뒤 그리로 간다.

그 길도 정비되고 변하여 이젠 마을 버스도 다닌다. 활터로 오르는 길인데 그 많던 아카시아 나무들이 베어지고 우측으로만 서 있다. 다 자란 내가 걷기엔 너무나 짧은 길이다. 그래도 그때의 아카시아 나무가  몇 그루 남아 길다란 하얀 꽃까지 그렇게 주렁주렁 피워 날 맞아주니 감사하고, 수 십 년 전 가위 바위 보~ 를 힘차게 외치며 둘이 걷던 생각을 하면 그건 꿈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눈에 들어오는 건 계절이 바뀌어 죽었다 다시 살아난 아카시아 흰 꽃과 잎 뿐이다.

이 시대 글로벌리 아주 중요해진 ‘특허, 지적 재산권’을 1950년 대 워싱톤에서 공부 한 후 이 나라 황무지에서 일구어 낸 개척자로 1956년에 만드신 ‘대한민국 발명의 날’은 5 월에 해마다 이어지는데 아버지만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내 안에 아버지의 DNA를 조금 느끼는 나는 억울하고 원통한 일이 있으면 하늘을 쳐다보며 하나님께 말하지만 사랑 주신 이윤모李允模 아버지에게도 그걸 일른다.

미국 살 때 그리워 했던, 6 월의 감미로운 아카시아 이 길을 오랜 만에 타박타박 걸으며 아버지~ 그 이름을 또 다시 불러 본다.

6월 20일은 아버지의 생신이다.

이 길은 この道

北原白秋 きたはら はくしゅう시  山田耕筰 やまだ こうさく곡

이 길은 언젠가 왔던 길
아아 그랬지
아카시아가 피어있었지

이 언덕은 언젠가 보았던 언덕
아아 그렇지
맞아, 하얀 시계탑이 있었어

이 길은 언젠가 왔던 길
아아 그랬어
어머니와 마차로 갔었지

저 구름도 언젠가 봤던 구름
아아 그랬다
산사자 가지도 늘어졌었지

음악 교사 하시던 아버지가 서울 집에서 피아노 치며 일어로 부르던 이 노래는 어린 내가 뜻도 모르며 자연히 외우게 되었다.

‘오월이 왔네 그대 태어난 오월이 왔네 그대 갔어도 눈부신 오월이’

‘눈부신 오월에 그대는 태어나고 그 색 바래기 전 급히 가신 님’

‘가지런히 싹 돋은 참대 잎 싱그러워 5월 9일 태어난 님도 그랬지’

- 손호연
 

-  孫戶姸의 한 줄 시 속 5월 9일은 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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