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의 삶
한 여인의 삶
  • 괴산타임즈
  • 승인 2023.06.2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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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남윤봉 교수.
남윤봉 교수.

1930년대 중반에 태어난, 시골 농촌마을에 한 여인이 있었다.

이때에는 웬만한 집안에서는 여자들은 초등학교에도 보내지 않았다. 시대적 분위기와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그런 모습이 이상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때 이전에 태어난 여자들은 문맹자가 매우 많았다. 그래도 좀 영리하고 부지런한 여자들은 야학이나 독학으로 한글을 깨우쳐서 가정생활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였고, 대부분의 문맹자들은 답답한 일생을 살아야 했다. 
이 한 여인도 마찬가지로 학교교육은 엄두도 못 내고, 독학으로 한글을 깨우쳐서 실생활에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

넉넉지 못한 집안의 둘째 딸로 태어난 이 여인은 스무 살 좀 넘어서 시집을 갔다. 시집은 친정에서 십 여리 쯤 되는 산골마을 외딴집이었다.

이때에는 대부분 부모들이 정혼하는 것이 보통이었기에, 신랑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부모들이 정해준대로 시집을 갔다.

시집은 친정집보다는 농사도 많이 짓고 부자였다. 그래서인지 신랑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4남매 중 맏아들이었다. 동생들도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고, 형편이 괜찮은 집안이었다. 그런데 산골마을 중에서도 외딴집이어서, 농사일에 열중하는 것이 삶의 전부였다.

농촌에서는 대부분이 그렇게 부지런히 일을 해도 많은 사람들은 식량이 부족해서 하루 세끼를 밥으로 먹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여인은 시집을 잘 간 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시할머니의 존재였다. 그때는 대부분이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이 여인의 시집에는 시할머니,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누이, 남편과 이 여인으로 구성된 여섯 식구가 함께 살았고, 두 시동생은 타지에서 학교를 다녔다.

부잣집 농사이고 보니 농사철에는 눈 코 뜰 사이 없이 고달팠지만, 풍성한 수확으로 친정에서보다는 호의호식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시집간 이 후에 남편이 폐결핵이 발병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전부터 발병된 것일 수도 있었지만, 이로 인해 시할머니가 이 여인에게 남편과 있지 말고, 병이 다 나을 때까지 헤어져 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친정으로 가자니 체면이 말이 아니고, 다른 방법을 찾다가 서울 어느 집으로 식모살이로 갔다. 이때에는 가정부를 “식모”라고 했다. 친정에는 전혀 모르게 말이다.

부잣집 맏며느리가 잡자기 남의 집 식모살이가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시할머니 한 마디에 가족 모두가 묵묵히 받아들였던 것이다.

아마도 수년간 식모살이를 하는 사이에 시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다시 시집으로 돌아와 살았다.

이때의 가정은 대가족제도가 일반적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시할머니의 한마디에  이 여인처럼 남편과 생이별을 하고, 뜻밖의 식모살이를 하는 경우는 특이한 일이다.

지금 생각해도 참담하고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모든 것을 감내하며 살아온 이 여인의 품성에 존중과 경의를 표한다.

한편으로는 분노를 느낀다. 다른 가족들과 특히 남편의 처신에 한없는 서글픔마저 느끼게 된다.

 이 여인은 시집에 돌아와 농사에 몰두하면서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평온한 가정을 꾸리며 살다가, 시부모가 모두 작고한 후에는 농사일을 접고, 도시로 이사해서 힘겨웠던 농촌생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 여인이 시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마을에 있는 교회에 나아가 신앙생활로 위안을 받았던 것으로 안다.

도시로 이사하여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중에, 뜻밖에도 시집간 맏딸이 병을 앓다가 약을 잘 못 사용해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굳세게 견뎌온 이 여인은 딸자식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다.

그래도 담대히 일상을 유지했으나, 그간의 모든 곤경의 상처가 이 여인을 억눌렀는지, 이 여인은 70대 초반에 질병으로, 그 고달프고 한 맺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한없이 착하고 인내심 강한 이 여인의 삶을 회고하면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하늘나라에서 평안히 휴식을 누리시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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