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괴산일기9
[독자기고] 괴산일기9
  • 괴산타임즈
  • 승인 2023.05.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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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식 괴산고 교사 / 브런치 작가
최재식 전 수학교사
최재식 전 수학교사

농사는 경험이라고 하는데 귀농 한 해를 보내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서툴기만 합니다. 그건 아마 작년 한 해 얼치기 농사라고 할 것도 없이 아내가 시키는 일만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따져보고 스스로 해 봐야 자기 것이 되는 거는 농사나 교육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내는 내가 유튜브를 보고 있노라면 농사 관련 유튜브도 보라고 했지만, 그걸 다소곳이 실천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올해는 학교에 수업 나간답시고 제대로 도와주지도 못하고 있지요. 작년에는 감자와 옥수수를 같이 심었는데 올해는 아내 홀로 심었습니다. 참으로 책임감 없는 남편입니다.

햇살 따사로운 5월은 심어 놓은 작물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시간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때 물도 듬뿍 주어야 하는데 지하수 펌프가 고장이 났습니다.

친구에게 물어보았더니 센서를 교체하면 된다고 합니다. 센서를 교체하니(사실 이것도 내게는 어려운 일이지만 어찌어찌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부웅 시동이 걸립니다. 그런데 다음 날 다시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친구는 이번에는 마중물을 넘어 보라고 나를 원격 조정합니다. 그리하였더니 신기하게도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 날 다시 먹통이 되는 겁니다. 다시 마중물을 채우면 살아나고 다음 날 또 안 되고... 결국 모터를 분해해서 수리점에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언젠가 고백한 적이 있다시피 나는 기계를 분해하고 조립하는데 천부적인 백치 기질이 있습니다. 그런 내가 새벽에 일어나 아내 몰래 모터를 분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실로 감격적인 순간이었죠. 수리점에서 압력 탱크도 교체하고 닦고 기름치고 조이니 모터가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름 모터가 어떻게 돌아가고 고장났을 때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가르치는 일도 그러하겠지요. 수업이 어떻게 전달되는지, 아이들이 이해를 못 했을 때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 지 내 입장에서가 아니라 학생 처지에서 살펴봐야겠지요.

괴산고 친구들이 중간고사가 끝나자 힘들어하는 기색이 엿보입니다. 신록의 마음으로 다시 뛰어 보자고 격려했지만 어쩐지 내 말이 포스터의 뻔한 표어처럼 허공에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몇몇 친구에게 왜 요즘 질문이 뜸하냐고 물어보았더니, 시험이 끝나고 나서 잠시 공부에 손을 놓았다고 합니다. 내가 안타까운 표정을 짓자 다시 시작하겠다고 눈에 힘을 주고 결연한 의지를 약속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5월은 체육대회도 있고 Out Door (수학 여행)도 있어 온전히 공부에 매진하기 어렵습니다. 체육대회와 수학여행은 학창 시절 잊지 못할 추억이지요. 그런 날은 공부고 뭐고 신나게 놀아야 합니다.

체육대회 하는 날 나는 서울에 올라가야 해서 직접 보지 못하고 영상으로 보았는데 무척 즐거워 보였습니다. 특히 커다란 풍선 공으로 하는 배구 경기가 인상적이었는데요, 명랑 운동회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최선을 다해 패배할 수 있는 명랑 운동회는 함께 나눔의 축제입니다. 이번 축제는 아이들이 직접 기획했다고 합니다. 지시에 순종하는 아이들보다 경기 종목과 규칙을 스스로 만들고 참여하는 아이들이 아름답습니다.

비가 온 후 잡초의 생명력은 신비로울 정도입니다. 도대체 무얼 먹고 저리 빠르게 성장하는 것일까요? 작년에는 마당에 날라온 민들레를 제거했지만, 올해는 그냥 모른 척합니다. 아니 노오란 민들레를 예쁘게 바라봅니다.

길을 걷다 길섶의 민들레를 예쁘게 바라보는 마음과 잔디 사이에 피어난 민들레를 잡초로 바라보는 마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잔디를 우선으로 하는 차별의 마음이겠지요. 텃밭에 클로버가 점령군처럼 무성하게 번지고 있습니다.

행운의 클로버는 번식력이 강해서 온 밭을 뒤덮어 버릴 기세입니다. 심어 놓은 작물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리고 뱀의 출현을 막기 위해 클로버 제거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겨우내 창고에 있던 예초기를 힘차게 가동했습니다.

실은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예정된 수순을 거치기도 했습니다. 작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시동이 안 걸리면 작년에는 멘붕에 빠졌는데 올해는 나름 이치를 따져보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인간은 변화 발전하는 존재라는 것을 나로부터 깨닫습니다. 형광등을 새로 갈았는데도 불이 켜지지 않아 판을 뜯어내 안전기를 교체하는 일련의 작업을 스스로 해 냈습니다. 도시에 살았을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귀촌을 했으니 이런저런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문제를 해결할 때 성취감도 느끼지만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기쁨도 있습니다.

삶이란 새로운 나를 발견해 나가는 여정이 아닐런지요. 학교에서의 교육도 아이들의 잠재력을 끄집어내어 새로운 나를 확장시켜 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푸른 햇살 아래 아이들 마음이 구름처럼 풀어져 진도 나가지 말고 놀자고 합니다. 그럼 나는 못 이기는 척 준비해 간 퀴즈 쇼 게임을 시작합니다.

나는 아이들과 신나게 놀면서 가슴속에 찰칵 추억 사진을 간직합니다. 신나게 함께 노는 것이 참교육이라고, 훗날 아이들에게 남는 추억이라고, 아이들의 까만 눈망울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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