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괴산일기 7. 벚꽃이 진다 한들
[독자기고] 괴산일기 7. 벚꽃이 진다 한들
  • 괴산타임즈
  • 승인 2023.04.1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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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식 전 수학교사
최재식
최재식 전 수학교사

철없이 피어난 벚꽃이 바람에 꽃비처럼 떨어지더니 아슴한 봄빛이 교정에 완연합니다. 봄이 시작되고 초여름을 방불케 하던 더위가 찾아오더니 4월의 봄은 가을 같은 바람이 부는 날이 많습니다. 누군가 봄이 사라졌다 호들갑을 떨기도 했고, 매사 진지한 누군가는 이게 다 기후 위기가 초래한 현상이라고 눈썹을 찌푸렸습니다. 아내는 이제 그만 기술문명이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점심을 함께 먹던 김 선생님에게 우리 아이들 참 예쁘죠? 라고 물었더니, 전에 있던 아이들하고 관계가 안 좋아서 학교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는데 여기 와서 잘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청주 시내에 있는 학교만 가더라도 분위기가 그렇게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그러니 내가 이 곳 괴산고등학교에 온 것은 특별한 행운이 틀림없습니다.
행운이 주어지는 것이고 행복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면, 행복을 만들기 위해 상상하고 연출해야 할 것입니다.

점심을 먹고 산책하다 벤치에 앉아 운동장을 내려다보는 일은 하루의 특별한 리추얼입니다. 남학생들은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하고, 여학생들은 돗자리를 펴고 앉아 수다의 향연을 펼칩니다. 이따금 공이 돗자리 쪽으로 굴러가면 여학생 하나가 ‘골 때리는 그녀들’처럼 어색한 동작으로 공을 찹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요. 가만히 살펴보니 돗자리에 남학생도 같이 있군요. 그 모습은 또 어찌나 정겨운지요. 남녀공학은 다 이런가요? 그걸 알 리 없는 내게는 남녀 학생이 친숙하게 지내는 모습이 너무 예쁘답니다.

어제는 점심시간 벤치에 혼자 앉아 있는데 3학년 학생 둘이 자연스럽게 내 곁에 앉았습니다. 우리는 원래 알던 사람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수학 익힘장을 소중하게 품고 있기에 양해를 구하고 펼쳐봤더니 초등 수학 문제가 있었습니다. 말이 조금 어눌한 걸 보니 특수반 학생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친구들에게 손 마술을 보여주자 건치를 환하게 드러내며 크게 환호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사랑받기 위한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복음 성가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내가 노래를 시작하자 교내 방송에서 그 노래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따뜻한 햇살이 교정 가득 출렁이는 봄이었습니다.
괴산고등학교는 이 학생들을 위한 전담 교사도 있고 담임 쌤들이 특별 케어하고 있습니다.

수학을 가르치며 나의 로망은 아이들하고 수학 문제를 함께 탐구해 보는 것입니다. 그 첫 발자국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괴산고에 학습 코칭 프로그램이 있어 교과서 외 문제를 탐구하고 싶은 친구들을 모집했습니다. 반응이 좋아 2팀이나 꾸려졌습니다. 아이들이 공부하다가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카톡방에 올리는 것이지요. 나는 관점을 제시해주고 관심 있는 아이들이 함께 풀어 봅니다. 그 풀이에 조언하거나 나의 풀이를 올려줍니다. 필요하면 다음 날 함께 풀이를 살펴봅니다. 시험이 끝나고 여유가 있을 때 좋은 문제를 놓고 같이 탐구하면 더 좋을 듯 합니다. 엊그제는 여행 중에 카톡방에 문제가 올라와서 빵 봉지에 풀어 주었더니 감동이라는 답글이 왔지요. 그 답글에 나도 감동했구요. 쌤이란 아이들의 감동에 감동하는 존재이지요^^
질문하는 학생이 성공합니다. 누군든 언제든 무엇이든 질문하기 바랍니다.

나 혼자 신나게 가르치다 ‘아차!’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눈높이 수학을 해야 한다고 늘 생각하면서도 아이들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순간적으로 지나치는 우를 범하곤 했었지요. 수행평가를 하고 나서 많은 친구가 수학을 어려워하는구나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이 곳 친구들은 대답도 잘하고 칠판에 나와서 푸는 것도 적극적으로 잘하고 있지만, 기초가 부족한 친구들도 있고 흥미를 못 느끼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왠지 내 마음은 미안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쌤이 분위기에 취해 하나하나를 들여다보지 못했습니다. 좀 더 쉽게 차근차근했어야 하는데, 이렇게 설명하면 알겠지 하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특별하게 설명하면 아이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오만에 빠졌습니다. 기본에 충실해야겠습니다.

출퇴근길을 자전거로 달려 보았습니다. 괴강을 따라 피어난 꽃길을 라이딩하면 바람에 실려 가는 것 같지요. 20km 거리를 1시간 동안 달리면 엉덩이도 아프고 힘이 들기도 하지만 새롭게 펼쳐지는 풍광에 내 마음은 하늘거립니다. 늘 가던 길에서 길을 잃기도 하지만, 나만 가는 출근길에 나만 느끼는 행복에 취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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