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괴산일기 6.
[독자기고] 괴산일기 6.
  • 괴산타임즈
  • 승인 2023.03.2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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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식 전 수학교사
최재식 전 수학교사
최재식 전 수학교사

[괴산고 첫날]

오래전부터 품었던 꿈이 하나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교실에서 아이들과 수업을 하는 것이었다. 정해진 진도와는 관계없이 파도가 전해주는 그리움을 바라보면서 그 감성 그대로 아이들과 그냥 아이들과 철없이 노는 꿈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도 부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첫사랑 이야기도 과장해서 들려주며 창가에서 괜시리 폼잡고 하늘을 바라보는 그런 순간들을 꿈꾸었다.

괴산은 바다가 먼 내륙 한가운데이다. 한반도에서 지리적으로 한가운데이다.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바다가 보이지는 않지만 오랜 꿈이 이루어진 셈이다. 바다보다 중요한 건 아이들의 순정한 미소이다. 교실 창밖을 내다보면 가까이 첩첩산중이 푸르게 펼쳐져 있다. 파도가 밀려오지는 않지만 푸른 산의 기운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아이들의 미소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첫날이었다. 누구든 그렇겠지만 첫 만남은 설렘이다. 나이를 먹어도 이건 변함없는 진실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나이를 헛먹은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처음은 설렘이다. 자신의 편협한 경험으로 첫 만남의 설렘마져 지워버린다면 그만큼 불행한 인생일 것이다.

드라마에서 본 남녀공학의 이미지는 내게는 예쁜 환타지였다. 나는 그 환타지를 고스란히 안고 교실 문을 열었다. 세상에나 환타지는 현실이었다. 환타지보다 더 멋진 현실이었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내게 스스럼없이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이 말에 담긴 호기심과 기대가 느껴졌다. 드마마보다 멋있다. 관계의 시작은 인사이다. 나는 드라마보다 멋있다고 나의 진심을 전한다. 그 진심이 먹혔고 이어지는 나의 마술도 먹혔다. 그렇게 시작된 첫 수업은 나로서는 감동이었다. 열정적으로 수업을 마치고 나서 몇몇 아이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아이들의 좌석표를 만들고 아이들 이름 아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쓰도록 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공감하면서 아이들과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잠과 먹기와 노래 듣기와 스포츠 시청이 주를 이루었다. 생각해보면 행복이란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거 먹고 수다 떠는 것이다. 수학 문제 풀기가 취미라고 쓰는 아이도 전교에 한 두명 있기는 하다. 그 또한 존중해 주어야 한다. 아이들의 좋아하는 것을 소재로 짧게 이야기 나누는 것만으로도 아이들과의 친밀감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무엇을 하든 친밀감과 신뢰감이 기본이다.

수업을 기분 좋게 마치고 집에 와서 아내와 기분 좋게 술 한잔을 나누었다. 아내는 내가 괴산고에 수업 나가게 된 것을 누구보다 좋아하고 지지해준다. 나는 그 지지에 실망을 끼치고 싶지 않아 수업도 최선을 다했지만, 농사에서의 내 할 바에도 최선을 다했다. 퇴비 10포대를 사 오라는 미션을 성실히 수행했고 아내가 벗긴 비닐을 쓰레기 처리장에 버리고 왔다. 그리고 오늘 당신 수고했다고 서로를 격려하며 술 한잔을 나누었다.

괴산에 귀촌해서 꿈꾸었던 일들이 올해 이루어지고 있다. 괴산고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퇴근하고 집에서 농사하고 펠렛 난로를 지피고 술 한잔을 하는 것, 그것이다. 아참 나의 사랑하는 반려묘 코지와 함께 노는 것도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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