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소식2
교토 소식2
  • 괴산타임즈
  • 승인 2023.02.0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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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이승신 시인이 동경 메구로 강 6키로에 늘어진 밤 사쿠라 배경으로  -  2016  3  28  동경
이승신 시인이 동경 메구로 강 6키로에 늘어진 밤 사쿠라 배경으로 - 2016 3 28 동경

동경에 이어 교토에서도 마음이 내려간 순간은 있었다.

'내가 살던 동네 데마치出町' 는 '왜 교토인가 2' 책의 부제이기도 한데 그 제목 한 편의 에세이에는 인연 있는 많은 상점과 집에서 몇 걸음만 걸으면 나오는 시장의 과일집 미장원 우동집 사바스시 집 떡집 찻집 꽃집들이 등장한다.

교토에 갈 때만 서울서 들고 가는 공부할 때 책가방인 푸른 백팩에 책을 가득 넣어 도시샤대 근처인 데마치出町 동네로 가 몇 해 만에 보는 그들에게 인사도 하고 일일이 사인해 책을 건네주었다.

자신의 가게 이름이 나오고 사진도 나오고 글이 나오니 놀라고 무척 기뻐하며 반겼는데 그 중엔 상점이 코로나로 폐쇄되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곳도 있어 여간 슬픈 일이 아니었다.

다음에 오면 또 보겠지 하며 연락처도 받아 놓지 않은 것이다. 백 년 이 백 년 거기에 있었으니까.

실제로 이번에 동지사대 들어가기 직전 그 대문 밖서 조금 걸어가면 나오는 집밥 같이 해주어 자주 가던 정든 그 노부부에게 먼저 달려 갔었다. 아도리브 다.

남자는 아무 것도 안하고 서 있기만 하고 부인이 요리하고 세 테이블에 부지런히 나르는 메뉴도 없이 알아서 주던 수 십 년 된 그 집. 한국에서 김을 가져가 주면 한국 음식은 어떻게 다른가요, 한국에 가보고 싶어요 하던 정겨운 그였다. 굳게 닫쳐 있어 유리창으로 들여다 보니 모든 집기가 상위에 올려져 있었다. 안타까웠다.

그 잉어를 보면 내가 기를 받는다고 책에 썼던 라쿠쇼 찻집.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집인 고다이지 바로 옆집으로, 널찍한 정원의 연못 속 수많은 코이 잉어는 너무나 잘 생기고 선명하고 활기차 보기만 해도 힘이 번쩍 나서 시무룩해지려 하면 그리로 갔고 여주인은 한국서 작가가 왔다며 줄이 길어도 그 집만의 떡과 차를 내주었다.

나는 그 특별한 와라비 떡보다 유리 문 열고 나가 연못 앞에서 귀족 같은 잉어들을 보는 게 좋았다. 실제로 많은 지인에게 보여주었고 놀라워 했었다.

네네노미치 그 길에 수십 그루 벚나무를 심어준 대를 이어 백 년 해온 유명 찻집이 못 견디고 팔린 것이다.

교토에 한참을 있어도 온천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었다. 여러 달 지나서야 마침내 찾아낸 구라마 온천. 거기서 가끔 한국말이 들려서 늦게서야 내가 찾은 여기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으면 오사카에 머무는데 거기서 알려줘서 왔다고 했다. 거기서는 먼 거리다.

살던 데서 주말에 전차를 20분 타고 종점에 내리면 첩첩 산 중, 공기부터 다른 뜨건 노천에 몸을 담근 후 내려와 그 온천 집에서 어려운 숙제를 해가며 먹은 두부는 얼마나 위로가 되었던가. 집에 있는 수건을 늘 안 가져가 200엔 추가를 내어 이번 만은 정신 차리고 수건을 들고 가 어둠에 전차를 내렸는데, 매번 역전서 맞아주던 승합차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았다.

산과 울창한 수림은 그대로인데 온천은 닫은 것이다.

언제든 가면 한적하고 고요해 딴 세상 만 같던 그 곳이 오랜만에 가도 고대로 맞아줄 줄 알았다. 대를 이어 내려온 집이다. 마음이 내려갔다.

일본인들은 대대로 지켜오는 가업을 여간해선 옮기지도 그만두지도 않는다.

동경대 박사 아들이 후에 부모 하시던 우동 가게를 이어 한다는 뉴스를 종종 보지 않는가.

그러함에도 이런 천재지변이 닥쳐올지 그 누가 알았겠나.

이젠 외국서 온 사람들로 넘친다지만 그걸 몇 해 어찌 버틸 수 있었겠는가.

설마 했는데 한국서 보던 것처럼 안타까운 일이다. 허전하지만 그러나 어찌 보면 천 일의 그 재앙에 닫은 숫자가 적은 편이라고, 긴 날들을 더 많은 이가 버텨온 게 오히려 대단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저자가 보통 감탄하지 않았다면 그런 곳이 어찌 책에 등장했겠는가. 그렇게 책에 나온 곳들 중 세 개가 사라졌음을 현장 확인하고는 쓸쓸했다. 남은 이들도 하나같이 그간 거리에 개미 하나 없었다고 얼마나 울적했는지 아침에 가게에 나오고 싶질 않았다며 텅 빈 길 사진을 보이며 누누히 말한다. 하긴 자주 가던 나도 4년 만에 갔으니까.

여러 색의 붓을 사곤 하던 두 평 상점의 그가 안되 보여 상점 나와 바로 인 사람으로 넘치는 관광 1순위 길 네네노미치를 힘내라고 보여주었다. 갑갑한 기간이 얼마나 길었으면 빽빽한 사람들 행렬에도 바로 감격해 하지를 않았다.

이건 우리 생에 겪는 상황이지만 수 천 년 역사에 이보다 더한 것은 오죽이나 많았을까. 어느 세대 어느 인생에나 그런 체험이라도 있어야 비로소 앞서 간 분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는 게 아닐까.

우리를 큰 마음으로 키우려는 신의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미국에 살 때
철 없이 힘들다고 투정을 써 보내면
인생은 고해다 
로 시작하는 어머니의 단정한 편지가 왔다

기억은 다 안 나지만
끝에는 그렇게 큰 사람이 되어간다
고 하신 듯 하다

살아볼수록 고해인데
천상에서도 
철 덜든 게 안타까워 
더한 깨우침을 주시려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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