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일본을 배반한 항왜인 김충선
[기획연재] 일본을 배반한 항왜인 김충선
  • 괴산타임즈
  • 승인 2023.01.09 14: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석우 작가
'대마도는 본시 우리 땅이다' 시리즈
눈물의 섬 대마도를 가다 98.
이석우 시인
이석우 시인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다음과 같이 사야가(김충선)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사야카는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쳐들어온 가토 기요마사의 좌선봉장이었다. 그는 조선에 건너오자마자 바로 부하를 이끌고 조선에 귀순하였다.

사야카는 경상도 의병과 힘을 합쳐 수차례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공을 세웠다. 이에 조선 조정은 그에게 김충선이라는 이름과 높은 벼슬을 내려주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10년간 북쪽 국경의 방어를 맡았으며 병자호란에도 참전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진주목사의 딸과 결혼하여 대구 우록동에 뿌리를 내렸다.”

모하당(慕夏堂) 김충선(1571-1642)은 조선의 인본사상을 흠모하며 성장하였다.

조일전쟁이 발발하자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우선봉장(右先鋒將)으로 조선에 출병하는데 부산항에 발을 얹자마자 부하 3천 명을 이끌고 조선에 귀화했다.

그는 경주, 울산 등지에서 외적과 싸웠으며, 결정적으로 조총 제작기술과 사용법을 조선에 전수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대구 우록동에 거주하였고, 10년 동안 북쪽 변방 수비를 위해 근무하기도 하였으며,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때에도 큰 공을 세웠다.

삼란공신(三亂功臣)이 된 그는 정헌대부(정2품)에 올랐다. 김충선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사성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김충선의 삶은 그냥 지워지지 않았다.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는 1972년 <한나라 기행>을 통해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귀화한 왜군이 있었다는 사실을 일본에 처음 소개하자, 하세가와 쓰토무의 <귀화한 침략병>, 고사카 지로의 <바다의 가야금> 등 사야가를 소재로 한 역사소설이 연이어 출간되었다.

방송에서는 '사야가는 누구인가, 왜 조국을 버리고 조선을 선택했는가'에 대해 집중 조명하였다.

일본인들은 이를 통해 침략행위에 대한 참회를, 조선을 선택한 행동을 보여준 김충선의 위대한 인류정신이 각인되었기 기대한다.

실상 김충선의 인류 박애정신은 일본이 깊이 새기며 영광으로 받들어야 할 일이다.

일본에서 선풍을 일으킨 김충선의 소재의 역사소설들
일본에서 선풍을 일으킨 김충선의 소재의 역사소설들
녹동서원 강당 우측 뒤에 자리잡고 있는 녹동사(김충선 사당)
녹동서원 강당 우측 뒤에 자리잡고 있는 녹동사(김충선 사당)

 


  • 충청북도 괴산군 관동로 193 괴산타임즈
  • 대표전화 : 043-834-7008 / 010-9559-6993
  • 팩스 : 043-834-7009
  • 기사제보/광고문의 : ssh6993@hanmail.net
  • 청소년보호책임자 : 노원래
  • 법인명 : 괴산타임즈
  • 제호 : 괴산타임즈
  • 등록번호 : 충북 아 00148
  • 등록일 : 2014-12-29
  • 발행일 : 2014-12-29
  • 발행인 : 노원래
  • 편집인 : 노원래
  • 괴산타임즈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괴산타임즈.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sh6993@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