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는 정조대왕 어진동참화사의 공으로 1791년 연풍현감에 제수되었다.
현감 김홍도가 연풍에서 약 3년 동안 봉직하고 연풍을 떠난 지 약 227년 만에 제39회 연풍 조령 문화제에서 처음으로 현감 김홍도 부임 행차 재현이 되었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예나 지금이 사는 것이 녹록지 않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어느 한 사람의 흔적을 찾아 그 모양새를 다듬는 일이 마치 대장장이가 무쇠를 녹여 수백 번 수천 번 망치질의 손을 거쳐야 온전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연장 하나가 만들어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연장 하나가 한 가족을 먹여 살리게 되며, 한 해의 풍년을 기약할 수 있게 된다. 현감 역할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그 속에 연풍이 있다.
연풍은 농사짓기에 힘든 마을이었는가? 풍년을 기원하는 청사 동헌에 풍락헌 현판을 걸었다. 그 속에 김홍도 현감도 있다.
그러나 연풍의 풍년이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만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풍락을 일구어 온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를 기리기 위한 마음을 갖는 것이 후세의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일 것이다. 현감 김홍도 부임 행차 재현이 그 예의 하나라 하겠다.
현감 부임 행차 속에 연풍의 풍년은 끝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 그 풍년의 즐거움을 넓혀나가는 것에 있어 현감 김홍도와 아들 연록의 역할이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옛말 하나 떠올려 본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느린 것이 아니라 멈춤(我不怕慢 只怕站)’이다. 오늘도 연풍면에는 현감 김홍도의 멈춤이 없다.
이것이 본 필자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단, 그 멈춤 없는 행보와 좀 더 많은 사람이 함께했으면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