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말이나 4월 초가 되면 교토나 동경을 갔었는데 코로나 핑계로 못 간 지 3년이 되어간다.
그 철에 피어난 일본의 벚꽃을 보고 돌아오면 그제사 피어나는 서울의 꽃을 보았는데 온난화 영향인지 언젠가부터는 같은 때 피어나게 되어 서울의 봄꽃을 못 보게 되기도 했다.
이 봄엔 몇 해 전 집 앞길에 시市에서 심은 한 200 미터 늘어선 벚나무 가로수가 틀을 좀 잡게 되어 화사해진 길가를 사흘 걸었고, 어머니와 함께 걸었던 연희동의 명물 수백 그루의 벚나무 아름드리도 보았다. 아름다워 엄마 없이 보는 게 쓸쓸했지만 이 광대한 벚꽃잎들과 그 속의 나를 기쁘게 보시겠지 라고 생각을 돌린다.
해마다 말과 글로 그 작품들을 좀 보아 주라 해도 가지들 않는다. 아까운 일이다.
긴 겨울로 잘 못 가던 집 뒤 인왕산 자락길을 날이 풀리자 걷게 되었고 꽤 많은 산벚꽃은 피는 게 시내보다 늦어 느긋이 있었는데 그것도 온난화로 져버렸다.
그 몸에 손을 대며 미안해 미안해 라고 했다. 여러 해 못 보아주었고 3년의 서울 봄도 다른 장소 꽃을 보다 숲 사이 피어난 가냘픈 산벚꽃잎을 못 보아주었으니 미안한 일이다.
그러다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무무대無無臺 전망대로 향하는데 땅만 보고 걷다가 하마터면 못 보았을 키 큰 나무에 숨 좀 쉬려 기대어 올려다보니 아 이게 웬일인가. 벚꽃은 이제 어디에고 끝이다 싶었는데 진한 빛깔의 벚꽃 수억 만 송이가 찬란히 피어있었다, 그것도 여러 겹으로. 우리나라에 흔한 쇼메이 요시노 종류는 이삼일 바람만 불어도 흩어지나 일본에서 야에자쿠라로 불리는 이 벚꽃은 그에 비하면 오래 가는 편이다. 오염이란 전혀 없는 듯 빛깔이 참 좋다.
무슨 메달이라도 딴 듯 기뻐 거기를 땅만 보고 지나는 이들에게 고개 들어 저거 좀 보세요, 저리 아름답게 피어있어요~ 오고 가는 몇몇 팀에게 그 대단한 발견을 알려 주려 해도 도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저 달 좀 보세요 하는 연인에게 보름달이니 밝지~ 식이다. 아까운 일이다.
끝에 한 여인 만이 '왼 편에 보이는 계단을 한참 오르면 동굴 속 석굴암 직전에 기막힌 하얀 겹벚꽃이 있으니 가보라' 고 반응한다.
해가 져서 다음 날 그 꽃을 만나러 수백 계단을 숨 몰아쉬며 올랐다. 거의 산 정상이어 시내가 더 시원히 내려다 보이고 공기가 강원도 깊은 산속만 같아 머리가 상쾌해지는데 과연 새하얀 겹벚꽃이 큰 스케일로 고고히 피어있었다. 솟아 오른 바위 틈으로 다가가기는 위험하여 제대로 사진이 찍혀지진 않았다.
지나는 이들에게 저 꽃 좀 보셔요~ 애타게 말하지 않았다면 수 십 년 걸어보는 자락길의 저 높은 계단 위 하늘 가까운 그 겹겹 벚꽃은 만나지 못 했으리.
남의 일 같지 않은 낀 나라의 전쟁이 두 달 넘도록 끝이 보이지 않아 인명 피해가 늘고 있어 애처럽고 국내는 선거만 다하면 좀 조용해지려나 했더니 신구 세력이 시끄럽기만 하고 3년 넘도록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균은 세가 여전 당당하고~ 기다리던 봄이 왔건만 어디를 보아도 어수선하기만 한데, 그러나 지구 한 켠에선 이리 아름다운 한 컷의 장면도 있어 마음을 달래주니 감사할 뿐이다.
362일 땅속 물을 뿜어 올리고 비바람 맞으며 엄청난 노력을 해야 피워내는 꽃이 사흘에 져버린다면 다시 또 362일 새로운 피어남을 준비해야 하는가, 그 생각이 인간의 허망한 삶을 떠올리게도 하는데 이별이 많아져 가는 인생 길에 그래도 그는 또 다시 어김없이 피워주겠지 하는 희망이 솟아 오르니 벚꽃 엔딩의 시절을 고이 보내드려야만 한다.
해마다 매듭짓는 꽃이라면 이 봄에 다시 만날 수 있을 그대여
- 손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