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이라면 선거를 하고는 곧장 그 뒤 둘레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것이 쌀쌀도 하여 이제사 오르게 된다.
이번 선거는 유난히 시끄럽고 난장판이어 어서 끝나기를 고대했었다. 그런데 지금도 선거를 치루는 듯 시끄럽기만 하다.
'당신의 성공이 나라의 성공이다' 당선인 클린톤에게 진 부쉬가 한 말과 오바마가 트럼프에게 '우리는 이 집무실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일 뿐' 이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 갈등과 불화를 거두고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다.
둘레길을 여기는 '자락길' 이라 하는데 조금 오르면 언덕받이가 나오고 날 좋을 때는 벤치에 앉아 책도 보고 메모도 한다. 거기에 소나무들이 하늘을 찌르는 중 꽤 굵은 두 소나무 사이로는 청와대 푸른 기와가 내려다 보인다.
그 집에는 아주 어려서 들어간 기억도 있고 녹지원 뜰에서는 한일정상이 읊은 어머니의 평화의 시가 울려 퍼지기도 했다. 거기엔 나라의 대표인 대통령이 살고 일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알든 아니든 매스콤을 통해 늘 보는 얼굴들이어 친근하기만 하다.
누가 되어도 비난 비판이 있게 마련이나 그 안에서 24시간 국민이 다 알 수도 없는 고뇌와 선택으로 얼마나 힘이 들겠나. 누구든 나라를 바로 잡고 더 좋은 길로 인도하려는 마음 가득하지않겠는가만 실제로 해보면 생각한대로 되지 않을 순간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구중궁궐이라 하는 그것을 보며 부럽기보다는 그래서 동정이 간다. 그래서 그걸 바라보며 기도하게 된다.
5년은 돌아보면 엊그제 같지만 그 기간을 통과하기엔 긴 시간이다. 그 5년 만에 신구 정상이 만나 후 그걸 바라보며 이제부터 시작될 행로를 그려보게도 된다.
더우기 이번엔 그 곳에서 떠난다니 복잡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여러 해 만에 귀국해 보니 옛 친구들이 옮겨간 강남 값은 엄청 올랐는데 이 곳은 내려가고 있었다. 추운 고택에 떨면서도 사랑과 영혼의 추억으로 어머니는 이 집을 부여잡고 있었다. 바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러 생각의 과정을 거쳐 무엇이든 결국 어머니가 옳았다 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몇 십 년 올랐으니 강남도 이젠 멈추겠지 라고 생각했으나 그러고도 한참이 되었는데 오늘도 오르고는 있다.
미국에서 조국祖國 그리는 글을 그곳 신문들에 쓰기도 했지만 와 보니 그리던 곳은 살아온 이곳이었다. 시내 한복판인데도 알아주지 않았고 시골만 같은 이 마을이 이제 신문 두 면에 대한민국에서 제일 힙한 곳은 서촌이다~ 로 나오고 있다.
그런 것 중 하나는 뒤로 받쳐주는 인왕산 등걸도 있으나 대통령 관저가 있다는 것도 한 몫 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광화문으로 간댔다가 교통 번잡으로 용산으로 한다고 한다.
근처 광화문도 아니고 더 떨어진 곳으로 간다는 생각은 뭔가 허한 감을 주어 익숙해진 이곳 주민은 마음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듯도 하다.
정치가 우리 삶에 90프로나 영향을 준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여기는 현재 그것이 100프로 만 같다. 땅값도 잘 안 오르는 이 지역의 자부심으로 그 이전이 섭섭도 하지만 촛불 시위로 막히고 차박으로 상인들 장사가 연일 안되고 밤에 주민증 없으면 집도 못 들어 갔었는데, 이제는 집 아래 인수위 사무실에 다시 전경차가 둘러서고 그 앞 시위에 피켓 든 시민들이 모여드니~ 계속 이런 식이라면 어디든 빨리 가라고만 하고 싶은 심경으로 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청와대가 열린다니 떠오르는 어려서의 연한 살구꽃 기억의 그 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