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신사터
[기획연재] 신사터
  • 괴산타임즈
  • 승인 2022.01.1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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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수 연구소장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한국 국학진흥원 자문위원
괴산향토사연구회 고문
김근수 연구소장.
김근수 연구소장.

감물면 신사터

위치 : 괴산군 감물면 충민로 덕운리길 15-12(광전리76-1)
실태 : 감물면 신대마을은 감물국(甘勿國) 시절에 죄수를 사형하던 곳이다.

덕운리에 사는 역적 이단천을 죽인 곳이라 하여 벌터라고 부른다. 1917년 감물면사무소와 1933년 감물경찰주재소가 생길 때만 해도 덕운리 소티실에는 여러 집이 있었고 신대는 들판이었다.

신대는 감물장터의 1/4을 차지하고, 동남으로 동리가 산재하며, 박달산 서륵 밑에 위치하고 있다. 19번 국도가 동리를 관통하며 면사무소가 위치한다. 옛날에는 면과 지서가 모두 신대에 위치했다.

1947년에 면이 남양동으로 이사를 했다가 1977년에 다시 신대 구역으로 편입되어 지금에 이른다. 지서는 신대에 잠시 속해 있다가 1936년에 남양동으로 이사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신사 터는 광전리 신대마을 남향진 곳에 1943년경 신사 터를 평평하게 닦아 놓고 건축물은 신축치 못하고 1945년 해방이 되었다.

현재는 개인이 몇 년 전 가옥을 신축하고 거주하고 있으며 명산인 박달산(825m)의 동쪽을 바라보며 경사진 모습으로 되어 있다.

박용운 전면장의 기억으로는  당시 초등학교 1학년 생으로 학교 운동장에는 커다란 깃발에 큰 잉어 모형을 매달아 놓고 일본 천황에게 예의를 표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장연면 신사터

위치: 괴산군 장연면 오가리350-2
실태: 현 위치는 장연면사무소와 장연초등학교 뒷 편 산 언덕으로 1939년 신사 부지를 확정하고 암반을 징으로 쪼아 폭파하는 등 부지를 300여펑 정리하였으며 초등학교에서 신사부지로 가는 길을 학교에서 개설하였다.

부지정리 후 주변에 낙엽송 등 나무를 식재하였다. 신사 건물 신축을 준비하다가 1945년 광복으로 중단 되었다. 현재는 삼밭으로 경작하고 있다. 

※. 증언 및 도움 : 심재화(장연면장), 심상기(전 장연면 부면장으로 1945년 초등학교 6학년, 현 86세)

문광면 신사터

위치: 괴산군 문광면 광덕리 산94번지(광덕리327번지)
실태: 문광면 신사는 문광면 광덕리 문광초등학교에서 미원방향으로 가다가 좌측방향으로 피세정이 있고 칠충각을 지나 우측으로 칠충사가 있는데 일제가 1940년경 신사 터를 조성해 놓고 1945년 광복된 후 중단되었다.

신사 부지에서 학생들이 뛰어 놀았으며 그 후 밭으로 경작해 오다가 1975년 순창조씨(淳昌趙氏) 문중에서에서 칠충사(七忠祠)를 건립 하였다. 칠충사(七忠祠)는 문광면 광덕리 산94번지에 동향하여 위치하고 있다. 1976년 12월 21일에 충청북도 기념물 제7호로 지정되었다.

칠충사는 순창조씨(淳昌趙氏) 문중에서 괴산삼강록(槐山三綱錄)에 등재되어 있는 조신(趙紳), 조종(趙悰), 조복(趙服), 조반(趙胖), 조덕공(趙德恭), 조덕용(趙德容), 조은(趙垠) 등 7명의 충신(忠臣)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사당이다. 1975년 문중에서 건립하였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5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좌우에 풍판이 있다. 전면 1칸은 외진으로 구성하고, 바닥은 장마루를 설치하였다. 어칸 처마에는 ‘칠충사(七忠祠)’ 현판을 걸었다. 

건물구조는 낮은 장대석 기단위에 원형초석을 놓고 그 위에 원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삼익공식을 기본형식으로 하였으나, 창방 위에 평방을 설치하였으며 주칸에도 화반대신 주두와 교두형의 3소로 첨차, 쇠서형 살미로 포를 구성하는 등 다포식을 절충하였다.

목수 나름대로 한껏 멋을 부렸으나 목구조의 기본형식을 벗어난 지방 목수의 조잡함이 느껴진다. 가구형식은 1고주 5량가로 구성하였다. 창호는 어칸은 궁판이 있는 사분합 띠살문, 양 협칸은 이분합 띠살문으로 구성하였다. 내부 바닥은 장마루,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하였다.

전면에는 솟을삼문을 두고 주위로는 막돌담장을 둘렀다. 

사당 아래에는 1973년에 건립한 ‘칠충각(七忠閣)’이 위치하고 있다. 안에는 일곱 분의 정려 현판이 걸려 있다. 

칠충각은 정면 7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좌우에 풍판이 있다. 건물구조는 자연석 기단 위에 사다리꼴의 팔각장주초석을 놓고 원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이익공형식으로 하였으며, 가구형식은 3량가로 구성하였다. 전면은 장주초석 높이로 설치된 하인방 밑으로는 벽, 위로는 홍살을 설치하였다. 북쪽 측면에는 내부로 출입할 수 있는 널판문을 설치하였다. 
입구에는 홍살문과 함께 순창 조씨 문중에서 세운 비석들이 있다. 

※. 도움 및 증언: 음재승(1933년생, 광복시 초등학교 5학년,문광면 노인회장), 안종운(괴산향토사연구회 감사)

청천면 신사터

위치 : 괴산군 청천면 청천리 38-2번지(청천면 화양로22)
실태 : 1940년 전후 신사 터를 닦아 놓고 건물은 신축치 못하였다.

1952년 5월1일 엽연초(담배) 수납장 건물(555㎡) 로 사용승인 되었으며  저장창고로 사용해 하다가 1999년 창고시설로 용도 변경하여 죽염공장으로 사용했고 현재는 빈 창고로 남아 있다. 지금도 이 지역에서는 창고 부지를 “신사터”라고 부르고 있다. 

※. 도움주신분: 김사진(전 군의원) 김영관(면 노인회장) 홍혜자(청천면 부면장)

청안면 신사터

위치: 괴산군 청안면 읍내리 231번지
실태: 청안신사 부지는 현 청안중학교 뒤편 언덕 구릉 상부인 청안면 읍내리 231번지에 있다. 부지 옆에는 청안중학교 초대(1955년 설립인가) 교장인 정천일 장로의 묘소와 그의 아들 정동원묘표가 있는데 동원초등학교와 청안교회가 있던 곳의 바로 뒷 쪽에 자리하고 있다.

1940년대 신사 터를 자리 잡고 건물은 신축치 못 한 채 1945년 광복을 맞았다. 신사 터는 남향으로 청안 읍내가  내려 보이는 곳으로 전망이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는 밭으로 경작하고 있다.

현지를 안내한 전병철 괴산군주민자치 위원 협의회 회장은 일본제국정부가 소화17년(1942)에 발행한 대동아전쟁 할인국고채권 20원, 30원 권을 보여 주면서  “일본이 대동아전쟁을 일으키고 우리 조선인에게 많은 부담을 강제로 시킨 것이 증명된다”고 말했다. 

※. 안내 및 도움 : 신상만(청안면장), 신상덕(전 괴산군의회의원), 전병철(청안면 주민자치위원장), 이상주(전 중원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소수면 신사터

위치 : 괴산군 소수면 수리 산44-11번지
실태 : 소수면 소재지인 수리 뒷산에 1940년대 신사 부지를 정리해놓고 건축을 준비하다가 1945년 광복과 함께 중단되었다.

부지정리 시 묘소(불명)가 있었는데 파묘하니 “황골이 나오는 명당 터 였다”고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1982년 본 부지에 1968년 체신부장관, 1969년 보사부 장관을 역임한 김태동 장관 묘소를 썼다가 2017년 이장하였으며 아직도 “대한민국 국무위원 춘곡 김태동 박사 지묘(春谷 김태동(金泰東) 博士 之墓) 비석이 남아 있다. 주위에는 참나무가 무성하게 자랐으며 부지 정면으로 면사무소를 비롯하여 각 기관 단체건물과  마을 전경이 아름답게 보인다. 

※. 증언 및 도움말: 경달현(소수면 부면장).김만응(85세,소수면 수동1길44 . 1945년 광복 시 초등학교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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