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이화령”이 남북통일의 서기를 잉태하는 역사의 공간이 되길!
[기획연재] “이화령”이 남북통일의 서기를 잉태하는 역사의 공간이 되길!
  • 괴산타임즈
  • 승인 2021.09.2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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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韓國戰爭)과 이화령전투(梨花嶺戰鬪) 8.
호국보훈의 달에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 시리즈
김근수 연구소장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한국 국학진흥원 자문위원
괴산향토사연구회 고문
김근수 연구소장.
김근수 연구소장.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가 많은 부문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수많은 외침과 내전으로 인하여 평화로운 기간의 지속은 그리 길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 유사 이래 수많은 전쟁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처절하고 비극적인 전쟁은 당연히 1950년6·25 한국전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쏘련, 중국 등 강대국의 힘에 의하여 민족이 양분되고 그들이 지급한 무기에 의하여 발생한 이 전쟁은 다른 국가나 민족이 아닌 한민족 한 겨레 한 형제였음을 생각해보면 우리민족사에 영원히 씻지 못할 수치이고 그로 인하여 탄생한 비극적 유산은 더 큰 상처를 남겨주었다.

1950년 6월24일과 25일 국방부 정훈국 종군기자의 일기를 통하여 6.25 당시 상황을 알 수 있어 소개 하였다.

1950년 7월13일부터 7월16일까지 충북 괴산군 연풍면 이화령 일대에서 국군 제6사단과 북한군제 1사단의 침공을 지연시킨 중요한 전투로 당시의 실제상황과 이화령전투에서 목숨 바쳐 아군을 지키다 장렬히 산화한  전쟁영웅 김용하육군 소령의 활약을 살펴보았다.

이화령은 죽령, 조령, 추풍령과 함께 경상도와 이어지는 전략적 요충지로 이 지역을 북한군에 빼앗기면 국군은 낙동강까지 후퇴 할 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곳을 지키고 있던 국군 제6사단은 북한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렸던 것이다.

1987년 연풍면 6·25참전 전우회에서는 당시 전국적으로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이화령 전투를 상기하고 공산당만행을 규탄하고자 이화령입구에 “6·25참전기념비”와 “석상”을 세워 후세에 기리며 아픔을 전하고 있다.

일제는 1925년 한반도 도로를 선진화 시킨다는 명목아래 전국도로를 확장하거나 직선화사업을 벌리며 백두대간의 중심지에 있는 이화령의 혈맥을 끊어 버렸다.

2012년 87년이란 장구한 세월동안 혈맥이 중간에서 멈춘 것을 치유하고 국토복원과 민족정기를 복원하여 1950년 참혹했던 한국전쟁의 아픔을 뒤로하고 “이화령”이 남북통일의 서기를 잉태하는 역사의 공간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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