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이화령 六二五 참전 기념비와 석상건립 2.
[기획연재] 이화령 六二五 참전 기념비와 석상건립 2.
  • 괴산타임즈
  • 승인 2021.08.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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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韓國戰爭)과 이화령전투(梨花嶺戰鬪) 6.
호국보훈의 달에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 시리즈
김근수 연구소장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한국 국학진흥원 자문위원
괴산향토사연구회 고문
김근수 연구소장.
김근수 연구소장.

당시 각종 지리지도 비슷한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중종)은 '문경현의 서쪽 십팔리에 있다. 충청도 연풍현 경계이다.'(伊火峴: 在縣西 十八里 延豊縣界)라고 적었다.

대동지지(1861, 철종)도 '문경 서쪽 십팔리에 있다. 연풍의 경계로 지름길이다.'(伊火峴 西十八里 延豊界 捷路)라고 적었다.

설명구가 짧은 것은 당시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비교적 적었음을 의미하고 있다.

고개가 많다는 것은 마을 위로 준령이 지나가고, 또 주변이 두메산골임을 의미하고 있다. 이중환(李重煥, 1690~1752)도 택리지에서 그 은자적인 풍광을 적었다.

'비록 만첩산중에 있으나 추하거나 험한 봉우리가 없으니 참으로 은자가 살만한 곳이다.'(雖在萬産中 亦無險之峰 眞隱者之所居)

지금의 이화령은 한자로는 '梨花嶺'으로 적고 있다. 직역하면 '배꽃고개'라는 예쁜 이름이 된다. 그러나 이화령 주변에서는 배나무를 거의 구경할 수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부터 나타나는 조선시대 지명은 '梨花嶺'이 아닌, '伊火峴'이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화령의 어원은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을 자주 나타낸다.

아직 정설화 된 이론은 없다. 다만 대동여지도는 연풍을 가로지르는 하천의 이름을 '伊火川'이라고 적었다. 따라서 '이화령'이 문경사면이 아닌 충북사면에서 생겨난 지명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 어떤 어문 전문가는 '연풍 이유릿재 혹은 이우릿재를 한자로 옮긴 것이 이화령이다'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상당히 근거있는 주장으로 보여지나 더 이상의 학문적인 추적은 안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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