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이화령에서 산화한  전쟁영웅 김용하 소령
[기획연재] 이화령에서 산화한  전쟁영웅 김용하 소령
  • 괴산타임즈
  • 승인 2021.08.0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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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韓國戰爭)과 이화령전투(梨花嶺戰鬪) 4.
호국보훈의 달에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 시리즈
김근수 연구소장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한국 국학진흥원 자문위원
괴산향토사연구회 고문
김근수 연구소장.
김근수 연구소장.

철수하는 아군을 지키고 이화령에서 산화한 김용하 육군 소령을 소개한다.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은 후퇴를 반복하면서 북한군에게 패배를 거듭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군의 전투력은 방어전투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회복되었고 이화령전투가 바로 그 회복의 기점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군의 침공을 지연시키던 이 이화령전투에서도 목숨 바쳐 아군을 지킨 전쟁영웅이 있었는데 바로 이화령에서 장렬히 산화한 김용하 육군 소령이다. 그분의 활약을  살펴본다.

김용하 육군 소령.
김용하 육군 소령.

김용하 육군 소령은 1926년 11월 29일 경주에서 출생했다.

1948년 7월에 김용하 육군 소령은 육군사관학교를 제 6기로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바로 전쟁에 투입되었다.

전쟁 초기에 있던 강원도 홍천지구전투와 충주 달천강 도하적전에 참여하여 목숨을 건 근접 지원사격을 실시하는 등의 활약으로 북한군의 진격을 지연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

제 6사단 2연대 4중대장으로 복무하고 있던 김용하 육군 소령은 이후 이화령전투에 참여하게 된다.

이화령은 문경시와 괴산군 경계에 있는 고개이름으로 문경 북방의 이화령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를 말한다.

당시 문경은 소백산맥 줄기와 죽령, 조령, 이화령, 추풍령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로
이 지역을 북한군에게 빼앗기면 국군은 낙동강까지 후퇴할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곳을 지키고 있던 제 6사단은 북한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게 된다.

김용하 육군 소령은 중대장으로서 문경 북방에 위치한 충북 괴산군의 연풍지역을 탈환하는 등의 활약을 펼쳤지만 전반적인 상황이 불리해지자 아군은 이화령을 포기하고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본부에서는 다른 부대는 철수시키고 김용하 육군 소령이 있는 4중대는 이를 엄호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김용하 육군 소령은 죽음을 각오하고 중대원을 격려하며 이화령 고개마루에서 국군을 엄호하기로 했다.

국군들이 경북 점촌으로 철수하기 시작했고, 북한군의 공격도 동시에 시작되었습니다.

김용하 육군 소령은 직접 국군의 주력을 엄호하면서 북한군을 공격하였고 이로 인해 아군은 무사히 철수를 할 수 있었고 북한군에게도 큰 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이 와중에 김용하 육군 소령은 북한군이 쏜 포탄에 맞아 이화령 고개에서 장렬히 산화하였고 이후 전사한 김용하 육군 소령의 시신은 3월의 전쟁영웅인 박노규 준장에 의해 수습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전공을 기려 1계급 특진과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출처][전쟁영웅 김용하] 철수하는 아군을 지키고 이화령에서 산화한 김용하 육군 소령 (이달의 보훈스타 - 독립운동가 및 6.25전쟁영웅)|작성자독립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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