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비루'
'네팔의 비루'
  • 괴산타임즈
  • 승인 2021.02.2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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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이승신 시인이 동경 메구로 강 6키로에 늘어진 밤 사쿠라 배경으로  -  2016  3  28  동경
이승신 시인이 동경 메구로 강 6키로에 늘어진 밤 사쿠라 배경으로 - 2016 3 28 동경

새해를 맞으며 '순수함' 을 생각해 보다가 몇 해 전 도시샤同志社 대학에서 독해 시간에 읽은 수필이 떠올랐습니다.

일본 '문예춘추' 잡지에 실린 '최근 내가 가장 울었던 이야기' 라는 제목 아래 쓰여진 '네팔의 비루' (일어로 비루는 맥주 Beer) 입니다. 작가는 요시다 나오야 吉田直哉 로 일본 NHK 방송의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에서 선구적 역할을 했고 '일본의 민얼굴'  '내 안의 테레비' 등 여러 저서가 있는 분입니다.

여기에 줄여 변역해 적어봅니다.

 



4년 전 이야기이니 정확히 최근은 아니지만 내게는 어제 일처럼 새롭다.

한 여름 촬영하기 위해 네팔의 도라카 라는 곳에 열흘을 머물게 되었다. 해발 1500 미터로 전기 수도 가스 같은 현대 문명이란 일체 없는 곳이다.

4500명의 인구로 자동차도 도로도 없는 상황이 세계 수준에 못미친다는 걸 그들도 잘 알고 있다. 여행자 눈에는 인류의 이상향인 듯한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에 어떻게 그렇게도 어려운 삶이 있을까 싶다.

젊은이 특히 아이들은 그 마을을 벗어나 전기와 차가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어하는 것이 무리는 아닌게 

나만 해도 차 없이 무거운 장비를 들고 등산을 해야만 했으니까.

15명이나 포타를 고용해 장비와 식품으로 짐을 줄여야 해 맨 먼저 포기해야 하는 것이 비루였다. 무엇보다 무거웠고 알콜이라면 위스키 쪽이 훨씬 효율적이다.

비지땀을 흘리며 촬영이 끝난 어느 날, 눈 앞에 시내가 잔잔히 흐르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아 여기 차가운 비루 하나만 있다면 ' 그 말을 통역을 통해 들은' 체토리' 라는 마을 소년이 눈을 반짝였다.

'내가 가지고 올 수 있어요' ' 어디 가서? ' 어른 걸음으로 두 시간이 걸리는 챠리콧토 라고 했다.

'해지기 전 돌아올 수 있어요'

8시쯤 그가 5병을 들고 나타나 우리 모두는 박수로 그를 맞았다.

다음 날 촬영하는데 소년이 '오늘은 비루 필요 없나요? 오늘 토요일은 수업이 없고 내일도 휴일이어 많이 사올 수 있는데요' 어제 맛본 생각도 나고 해 한 타스 살 돈 이상을 그에게 주었다.

그런데 밤이 되어도 소식이 없다'

사고는 아닐까.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큰 돈을 주었으면 분명 도망간 거라고 입을 모았다.

15세의 체토리는 집을 떠나 산을 하나 넘은 곳에 하숙하며 학교를 다닌다. 거기를 촬영하며 보고 들어 어려운 사정은 알고 있었다. 짚으로 된 침구만이 있는 좁은 토방에서 다미아와 지라 라고 하는 향신료를 고추와 섞어 돌 사이에 넣고 갈아 야채와 끓이는 일종의 카레를 밥에 얹어 먹으며 작은 석유 램프 하나 있는 어두운 방에서 엎드려 공부를 했다.

그 체토리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토 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어도 무소식이다. 학교를 찾아가 선생님에게 의논을 하니 '너무 걱정말아요. 사고 같은 건 아니니. 그런 큰 돈이라면 도망 간 겁니다'

후회막심이었다. 그저 단순한 생각으로 네팔 아이에게는 큰 돈을 건넨 것이다. 착한 아이의 일생을 그렇게 망친 것이다.

그래도 혹 사고는 아닐까.

안절부절한지 사흘째, 숙소의 문을 누가 세게 두둘긴다. 최악의 흉보는 아닐까 하며 문을 여니 거기에 체토리 군이 서 있었다. 흙투성이었다. 챠리콧토에 비루가 3 병 밖에 없어 산을 네 개를 넘었다고 했다.

모두 10병을 구했는데 3병이 그만 깨져버려 울상이 되어 그 파편을 꺼내며 잔돈을 내어 놓는다.

그의 어깨를 껴안으며 나는 울었다.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깊이 여러 반성을 해 본 적도 없다.

 



4년 전 커다란 쓰나미가 일본에 일어났고 매일 매일 사람들과 마을이 통째로 사라져 갈 때 시인 어머니를 존경한 그들 생각이 났고 그 때 시를 250여 수 쓴 적이 있다. 양국 신문에 동시에 그 시들이 나가 화제가 되었을 때 몇 분이 왜 일본을 그리 위로하는가, 터키와 인도네시아에 지진이 났을 때는 왜 그리 하지 않았는가, 라고 했다.  '일본이니까 했다' 라는 말을 나는 꺼내지 않았다

이번에 큰 지진이 난 네팔의 뉴스를 교토에서 보며 그 생각을 했다. 네팔에 아직 가보지 않은 나는 네팔이라면 에베레스트 히말라야 산이 생각날 뿐이다.

이 글을 보며 나는 울었다. 

교토 육첩 방에서 밤새 모르는 일어 단어를 찾아 읽고 또 읽으며 그런 순박하고 정직한 마음이 살아있는 나라에 가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쓴 작가에게 감사하고 싶어졌다.

독자의 마음을 울리고 그 마음을 일순에 바꿀 수도 있는 '문학의 힘'이다.

곧 2011년 3 월 11일, 대재난으로 수 많은 인명이 가고 동일본이 아수라장이 되었던 10주기가 오고 있다.

히말라야 그 聖山 이 보이는 마을
산 아래 마을  -   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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