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나 비가 내리는 날이면 할아버지께 항상 전화가 온다. 전화를 먼저 걸지 않은 나에게 서운해하시며 할아버지 생각이 나지 않았냐고 물어보신다.
할아버지에게 눈이나 비가 내리는 날은 평상시와 다른 특별한 날이고, 그 특별한 날에 떠오르는 사람이 나인 것이다.
그제야 나는 창밖을 보며 오늘도 한발 늦었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 첫눈이 내리는 날에도 할아버지께 먼저 전화가 걸려왔다.
마당의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첫눈치고는 꽤 많은 양의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계신 서울에도 눈이 내리고 있었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하얀 바깥 풍경을 보며 대화를 나눴다.
150km가 넘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이처럼 마음이 가까이 와있는 순간엔 물리적 거리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2020년은 특히나 ‘거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 한 해였다. 그렇지 않아도 괴산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서울에 있던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나기 어려웠는데, 코로나19때문에 만남이 더욱더 쉽지 않게 됐다.
결국 SNS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이 늘어났고, 전화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익숙해졌고, 화상채팅을 통해 바라보는 서로의 얼굴에 만족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덕분인지 감정적인 거리는 오히려 가까워진 것 같은 관계도 생겼다. 사실,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느냐는 거리가 아닌 마음에 달린 문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지만, 더 무서운 건 ‘눈에 가까이 있지만, 마음이 자꾸 멀어지는 사이’다.
코로나19의 끝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현실은 새해에도 계속될 것이다. 상황이 나빠질수록 홀로 있는 시간이 길어질 테고, 수많은 만남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마음과 마음 사이의 거리를 잊지 않으려고 한다. 조그마한 눈송이에도 나를 떠올리는 할아버지의 그 가까운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