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대마도해전은 우리 역사에 상처를
[기획연재] 대마도해전은 우리 역사에 상처를
  • 괴산타임즈
  • 승인 2020.05.07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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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본시 우리 땅이다' 작가, 이석우 시인의 우리 역사문화 답사기
눈물의 섬 대마도를 가다 28.
이석우 시인
이석우 시인

1904년 일본 정부는 군함 쓰시마 호에 전문을 띄운다. 독도에 전신을 설치할 지형을 탐색하라는 것이었다,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감시 통신망이 절실하다는 전략 분석 결과에 대한 즉각적인 조치를 내리는 중이었다. 망루는 물론 해저전선까지 러일전쟁 준비 프로그램에 잡혀있었다. 이 전신망은 대마도는 물론 독도와 제주도를 비롯하여 한국 본토에 집중적으로 설치된다.

조선과 만주를 둘러싼 일본과 러시아 간의 긴장감은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팽팽해질수록 고종은 고뇌의 수렁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우선 미국공사에게 피신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다. 러시아공사에게 의사를 타진한 결과 긍정적인 답을 얻었으나 아관파천 때의 기억 때문에 믿음이 서지 않았다. 측근들은 프랑스 공사관으로 피신하자고 주청하기도 하였다.

한편 일본은 서울의 궁궐을 절대 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하면서, 만약에 경솔하게 행동할 경우, 황실의 안전은 없다는 식으로 떡과 칼을 동시에 고종의 코 앞에 들여밀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고종은 신의 한 수를 생각해 낸다. 1904년 1월 21일, 즉시 전시중립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영국 · 프랑스 · 독일 등은 고종의 생각을 여지없이 깔아뭉개고 미국은 고종의 중립선언에 대하여 코도 들큰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일본은 오히려 잘 되었다는 듯이 군대를 밀고 들어왔다. 고종은 러시아와 프랑스 공사관에게 서울만이라도 중립지대로 해달라고 애걸하였으나 메아리만 미납편지처럼 되돌아왔다.

2월에 접어들자, 일본의 임시각의는 그들의 주장에 대한 러시아의 회답도 기다리지 않고 전쟁을 결정해 버린다. 그리고 2월 8일 밤 일본군은 여순의 러시아군 기지를 기습하고, 9일 인천 앞바다의 러시아군함 두 척을 바다에 가라앉힌다. 인천상륙 작전이 전개된 것이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 원조에 해당하는 군작전이 펼쳐진 셈이다.

그리고 10일이 되어서 러시아에게 선전을 포고한다. 국제룰 상 반칙인 것은 분명하지만 반칙패는 선언된 적이 없다. 그것이 전쟁의 부조리다.

서울이 무력으로 점령하고 말았다. 고종은 눈물을 머금고 무릎을 접는다. 1904년 5월 6일, 창덕궁 뜰에서는 고종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완용을 비롯한 내각 대신들은, 도열해 있는 일본군 장교들에게 "황군 전승 축하회"를 열어 주는 치욕적인 짓을 서슴없이 자행하였다.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매듭되자 고종과 집권층은 그들의 시중 들기에서 부끄러워해야할 이유를 잃어버린 듯보였다. 군자금을 충당하고 위문사를 보내고 군수품과 술대접도 거침없이 이어 나갔다. 의병들은“폭도”로 규정되어 토벌의 대상이 되었다.

일본군은 1905년 1월 1일 여순을 함락하고 3월의 봉천전투를 끝으로 육전을 매듭 짓는다. 그러나 일본은 더 이상 전쟁 수행능력을 충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러시아 역시 국내애서 일어난 혁명에 발목을 잡힌채 허덕이고 있었다. 양자 모두 전쟁을 끝내고 싶었으나 달리는 전쟁이라는 호랑이 등에서 누구도 뛰내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러시아의 발틱함대는 리바우항을 떠나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대마도에 들어서고 있었다. 병사들이 지쳐 전력이 가라앉아 있는 상황이었다.
진주만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본 연합함대의 도고 사령관은 정보를 입수하자 즉시 대마도로 접근하였다.

1905년 5월 27일 새벽 4시 45분, 대한해협의 동쪽 대마도에서 세기의 해전이 벌어진 것이다. 24시간 계속된 해전에서 발틱함대는 38척의 함대 중 35척이 궤멸되고, 3척만이 회생했다. 사령관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이 포로가 된다. 도고 헤이치로 제독이 이끄는 연합함대에게 러시아가 전멸 당한 것이다.

대마도해전은 러일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결국 승자인 일본에 의하여 우리는 1905년 굴욕적인 을사늑약을 당하고, 1910년에는 불법적인 병탄으로 우리 역사에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도고 헤이하치로는 발틱 함대와의 일전을 앞두고 이순신 제독의 기록을 읽고, 전승지를 몇 차례나 직접 답사하였으며 정자전법(丁字戰法:즉 敵前回頭作戰)으로 격파하였다. 도고는 “이순신 제독은 36회의 크고 작은 해전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바다의 신이며 전쟁의 신이며 軍神(군신)” 이라고 평가하였다.
도고 헤이하치로는 발틱 함대와의 일전을 앞두고 이순신 제독의 기록을 읽고, 전승지를 몇 차례나 직접 답사하였으며 정자전법(丁字戰法:즉 敵前回頭作戰)으로 격파하였다. 도고는 “이순신 제독은 36회의 크고 작은 해전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바다의 신이며 전쟁의 신이며 軍神(군신)” 이라고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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