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권력이다
요리는 권력이다
  • 괴산타임즈
  • 승인 2019.12.13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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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오늘날 흔히 쓰이는 ‘요리料理’라는 말은 일본말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적인 요리책으로 알려진 책의 이름도 조선조리제법朝鮮料理製法(1917)으로 되어 있다. 그러면 요리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무엇일까.

과거에는 음식을 먹기 위해 준비하는 것을 ‘차린다’고 하였다. 음식을 차린다는 말은, 음식을 장만하여(사거나 만들어서) 먹기 좋게 상 위에 늘어놓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차리다’는 말은 ‘디미다’로도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판소리 흥보가 중 흥부 마누라 음식 차리는 대목 중 ‘음식을 채리는디’라는 사설을 ‘음식을 디미는디’로도 부르기 때문이다(박동진 명창의 흥보가 사설). 또한 음식디미방이라는 책 제목도 그럴 가능성을 높여준다. 보통 ‘음식디미방’에서 ‘디미’를 지미知味로 보아 ‘맛을 알다’는 의미로 푸는데, 만일 그렇다면 ‘음식디미방’은 ‘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이라는 뜻이 되어 요리책 제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디미’를 ‘차리다’는 뜻으로 보면 ‘음식 차리는 법’이라는 뜻이 되어 비교적 합당한 제목이 될 수 있다.

필자는 기존의 견해처럼 ‘디미’라는 말을 ‘지미’로 표기했을 것으로 보지만 ‘지미’는 맛을 안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맛을 알린다’, ‘맛을 드러낸다’는 의미일 것으로 본다. 첫째 이유는 ‘맛을 알다’는 뜻으로는 ‘기미氣味하다’는 말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유는 ‘지知’ 자 자체의 뜻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지’는 이치를 몸으로 느껴 깨닫는 것, 그것을 화살처럼 빠르게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에서 ‘드러내는 것’은 바로 음식의 기미다. 그리고 그렇게 드러내는 방법이 오늘날 말하는 ‘요리’다. 그러므로 ‘지미’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음식이 갖고 있는 본래의 기미를 드러내는 일이고 나아가서는 그 기미를 필요에 따라 바꾸는 일이다. 기미를 바꾸기 위해서는 음식에 물이나 불과 같은 다른 기를 더하거나 다른 음식을 더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필자는 바로 이런 과정이 바로 ‘지미’이며 이것은 우리말인 ‘차림’ 또는 ‘디미’를 한자로 표기한 것일 것으로 본다.

음식을 차린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일 것이다. 그것은 음식이 갖고 있는 음식 자체의 기미를 드러내는 일이며 사람의 몸은 물론 음식이 맺고 있는 모든 보편적인 연관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리의 의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상나라를 세운 탕왕은 하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이윤伊尹이라는 사람을 불렀다. 이윤의 출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이윤이 요리사 출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탕왕에게 갈 때 이윤이 솥을 짊어지고 갔다고도 하고 동아시아에서 요리는 이윤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도 말한다. 요리와 같은 의미를 갖는 탕약의 기원도 이윤이라고 하는 말이 전해지는 것을 보면 이윤과 요리의 관계는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요리를 하려면 솥이 필요하다. 이 솥을 ‘정鼎’이라고 하는데, 이 ‘정’은 청동기로 만들어졌으며 뚜껑이 없다. 이 솥은 단순히 요리를 위한 솥이 아니라 그 자체가 왕의 권위 또는 정통성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요리를 위한 솥이 왕권의 상징이라면 요리 역시 그에 버금가는 중요성을 갖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여씨춘추’에는, 요리를 하려면 여러 재료와 요리를 하기 위한 조건들이 필요한데, 이는 아무나 갖출 수 없는 것이며 오직 천자만이 갖출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소위 요리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아무나 해서도 안 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윤이 주방장 출신이라는 것도 그의 출신이 비천하다는 의미보다는 맹자가 말한 것처럼 ‘요순의 도’를 체득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이윤이 정을 짊어지고 탕에게 갔다는 전설도 탕의 왕권을 정당화 내지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당시에 정을 옮긴다는 것은 왕조를 옮긴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를 뒷받침하는 것은 이윤이 요리로 탕임금에게 정치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보통은 이를 하나의 비유로 간주하지만, 만일 요리가 왕권과 깊은 연관이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비유로 간주할 수 없게 된다. 여씨춘추의 맛과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탕임금이 이윤을 얻고 나서 제사를 지내고 이윤을 만났다. 이윤이 지극한 맛[지미至味]의 도리에 대해 이야기하니 탕임금이 지금 바로 그 맛을 만들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러자 이윤은, 탕임금의 나라가 작아서 아직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요리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식재료에 대한 이해와 이를 조리하는 방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천하의 가장 좋은 식재료를 구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운반할 교통수단이 갖추어져야 하는데, 이는 천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자는 억지로 하려 한다 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도道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도, 곧 길은 다른 사람에게 가는 길이지만 도 자체는 내게 있는 것이다. 요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 만드는 것이지만 요리 자체는 내게 있다. 그러므로 내가 온전하게 도를 깨달아 실천해야 비로소 천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나도 완성되고 남까지 완성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보면 요리는 단순히 식재료를 변화시키는 일이 아니라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이자 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요리는 날 생선을 그냥 썰어만 놓거나 굴을 까서 레몬즙을 떨어뜨리는 것과 같이 단순한 것부터 오랜 시간을 두고 숙성시키거나 여러 가지 재료를 섞고 물과 불로 달이는 방법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 중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은 불을 이용한 요리다. 왜냐하면 불을 이용한 요리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적 혁신 중 하나로 취급받을 자격이 있는 이유는 그것이 음식을 변형시키기 때문이 아니라(음식을 변형시키는 방법은 조리 말고도 수없이 많다) 사회를 변형시켰기 때문이다(펠리스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 음식의 세계사 여덟 번의 혁명).” 요리는 ‘공동의 식사와 예측 가능한 식사 시간을 중심으로 사회를 조직하는 방식’이다. 요리는 천하를 얻은 결과일 수도 있고 반대로 천하를 얻기 위한 방법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인류는 그 탄생에서부터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두 끼 식사를 했다. 그러던 것이 자본주의가 탄생하면서 공장의 3교대에 맞춰 세 끼 식사로 바뀌었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쌀을 주식으로 했지만 미군정을 계기로 밀가루가 주요한 곡식으로 바뀌었다. 밀 수입이 늘어나는 만큼  농촌은 점점 더 피폐해져갔다. 사회가 바뀌었다.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한 재력과 권력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음식을 먹음으로써 자신의 재력과 권력을 재생산하는 것이다. 요리는 한 마디로 세상을 바꾸는 권력이다.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이기도 하지만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와 남을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무심코 먹는 음식, 내가 한 요리 하나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방에서는 오로지 맛만 이야기 한다. 그것도 거의 단일한 맛의 기준을 세움으로써 이제는 자연까지도 파괴하고 있다. 커피나 바나나 같은 단일한 입맛에 맞춰 대규모 단일 작물의 생산이 이루어져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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