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 숨은 영웅… 11월 호국인물 ‘이광악’장군… 현양행사
진주성 숨은 영웅… 11월 호국인물 ‘이광악’장군… 현양행사
  • 노원래 기자
  • 승인 2019.11.16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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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3대첩 빛나는 진주성전투 승리 주역
묘소 괴산군 불정면 삼방리 탑말 위패 모셔
지난 7일 16세손인 이광희 씨 및 후손 현양행사
이광악 장군.
이광악 장군.

[괴산타임즈=노원래 기자] 임진왜란 진주성 1차 전투 숨은 영웅이면서 충주 출신인 이광악(1557~1608)장군이 전쟁기념관의 ‘이달의 호국인물’에 선정돼 괴산에서도 남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유는 그의 묘소가 괴산 불정면 삼방리 탑말에 위패와 함께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이광악 장군의 16세손인 이광희 씨와 후손들은 이달의 호군인물에 선정된 기념을 기리기 위해 현양행사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육군참모총장을 대리해서 온 육군 제1방공여단 이경주 장군이 참여했다. 또, 서울지방보훈청 이재진 보훈과장도 참여해 헌화와 분향에 예를 보했다.

그 외에도 보훈계 관계자들이 참석해 이광악 장군의 현양행사에서 예를 다한 모습들을 보였다.

괴산군에서도 중요 내빈들이 참석했다. 미처 바쁜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이차영 괴산군수를 대신해 여대연 행정복지국장이 참여해 헌화와 분향에 예를 보였다.

또, 괴산문화의 중심을 이끌고 있는 괴산문화원 장재영 원장과 문화원 이사진들도 참여해 남다른 역사적 애정을 야기시켰다.

그만큼 이광악 장군에 대한 괴산군의 관심은 지역 출신 조상과도 같은 의미로 보여지는 대목이다.

임진왜란 3대첩 중의 하나인 진주대첩 승리를 잠시 이야기 하자면, 그 이면에는 백성과 동고동락하면서 솔선수범한 지휘관의 탁월한 용병술과 전략으로 무장된 체계적인 계산이 있었다.

단연 의병들이 혼연일체가 돼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싸운 결과라는 평은 업계에서도 이미 검증된 사실로 드러났다.

이 진주대첩에서 얻은 결과는 김시민을 도와 승리로 이끌어 낸 장수로 충장공 이광악 장군을 빼 놓을수 없다.

이광악은 임진왜란(1592~1598년) 당시 김시민 장군을 도와 왜군을 격퇴하는데 큰 공을 세운 장군으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일대를 잠시잠깐 설명하자면, 이광악(李光岳) 장군은 조선 중기의 장군으로,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진지(鎭之)이다.

1557년(명종 12) 충북 충주 유동리(遊洞里)에서 아버지 정선(旌善)군수 이호약(李好約)과 어머니 경주 김씨(慶州金氏)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했다고 알려졌으며, 목소리도 컸다고 전해졌다.

또, 너무 맑아서 대인의 풍모가 있었다고 한다. 학문과 수신에 힘쓰기보다는 말을 타고 전장을 누비는 것을 즐겼다해 무관으로 출사하는 데 그 뜻을 뒀다고 한다.

1584년(선조 17) 무과 별시에서 을과 16위로 급제해 선전관에 제수된 이광악 장군은 이후 연일(延日)현감·이성(利城)현감·경주(慶州)판관을 거쳐 곤양(昆陽)군수에 임명됐다.

교지.

당시 곤양군수로 재직하고 있던 이광악 장군은 초유사 김성일의 명령으로 병력을 이끌고 진주성으로 들어가 진주목사 김시민과 함께 적에 맞섰다고 한다.

왜군의 선봉이 진주성의 동쪽을 공격함으로써 시작된 치열한 전투 속에서 진주목사 김시민이 부상을 입자 그를 대신해 전투를 진두지휘했다고 한다.

이때 돌진해 온 적장을 이광악 장군이 화살로 쏘아 죽였다. 그러자 전의를 잃은 적군은 물러나기 시작했고, 조선군은 사기가 충천해 퇴각하는 적을 물리쳐 크게 승리했다는 설은 유명하다.

정유재란 때에는 남원전투에서 순국한 이복남(李福男)을 대신해 전라병사에 임명돼 순천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부대와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그 결과, 순천·광양전투에서 승리했으며, 이어 순천 예교성전투에서는 조·명연합군의 선봉군으로 활약했다.

이광악 장군은 임진왜란 3대첩에 빛나는 진주성전투 승리의 주역으로서, 그 공을 인정받아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녹훈됐다.

이후 수원(水原)부사·경기방어사·영흥(永興)부사를 거쳐 1606년(선조 39)에는 함경남도 병마절도사에 임명됐다.

1608년 52세 나이로 별세했으며, 1711년(숙종 37) 충장(忠壯)의 시호를 받았다.

이광악 장군의 묘소는 괴산군 불정면 삼방리 탑말에 있다. 이곳에는 조부 이연경, 아버지 이호약의 무덤과 함께 있는데, 무덤 아래쪽 사당인 `문효사(文孝祠)’에 장군의 위패도 모셔져 있다.

이광악의 선무공신교서는 원래 불정면 삼방리의 후손가에 전해져 오다가, 장군이 쓰던 보검과 얼굴이 그려진 영정 등과 함께 1987년 독립기념관에 기증돼 관리하고 있다.

보물 952호인 이 문서에는 이광악 장군의 자질과 품성, 경력, 진주성을 방어하는데 세운 무공과 공신에게 내리는 혜택 등이 실려 있다고 한다.

괴산군 불정면 삼방리 묘지
괴산군 불정면 삼방리 묘지 탑말에 묘셔져 있는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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