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먹는 일은 역사를 만드는 일이다
음식을 먹는 일은 역사를 만드는 일이다
  • 괴산타임즈
  • 승인 2019.08.2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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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음식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음식은 사람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자신을 실현한다. 사람이 먹어야 음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람의 관점에서 말한 것뿐이고 음식은 사람과 관계를 갖기 이전에 자연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음식이 관계 맺고 있는 자연을 천지天地라고 한다. 예를 들어 볍씨는 하늘과 땅의 기를 얻어 자란다. 한 톨의 볍씨가 천지와 관계를 맺어 하늘과 땅의 기가 온전히 스며들어가 시간이 지나 여물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쌀’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쌀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늘의 차고 더운 기운이 들어간다. 이렇게 들어간 하늘의 기를 좁은 의미에서의 ‘기’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돼지고기는 차다”고 할 때의 차다는 것이 바로 이 기미에서의 기에 해당한다. 하늘의 기와 더불어 볍씨에는 온갖 맛을 내는 땅의 기운이 들어간다.

여기에서 ‘맛’은 시고 쓰고 달고 맵고 짠 맛의 다섯 가지 맛을 말하는데, ‘오미五味’라고 한다. 이는 혀에서 느끼는 맛을 포함하여 대체로 오늘날 말하는 영양성분에 해당하는 것이 포함된다. 이렇게 볍씨에 들어간 땅의 기운을 기미에서의 ‘미味’라고 한다.

쌀에 담긴 하늘과 땅의 기를 합하여 ‘기미氣味’라고 부른다. 쌀에는 하늘과 땅의 기가 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쌀을 먹을 뿐이지만 쌀을 먹음으로써 쌀에 담긴 하늘과 땅, 곧 우주의 기를 함께 먹는 셈이 된다.

모든 음식은 다른 음식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바탕, 곧 기미가 있다. 이를 ‘성性’이라고 한다. 자신의 성에 따라 음식마다 차고 덥고 하는 기의 차이가 있고 달고 쓰고 신 맛의 차이가 있다. 성질이 찬 것은 더운 기를 좋아하고 성질이 더운 것은 찬 기운을 좋아한다.

인삼의 성질은 그 자체가 아주 더운 것이어서 반대로 서늘한 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인삼밭은 검은 천 같은 것으로 햇볕을 가려줘야 한다. 귤과 같이 추울 때 자라는 것도 그 자신의 성질은 따뜻하다.

반대로 음식의 성질 자체가 찬 것은 더운 것을 좋아한다. 참외나 포도가 그렇고(어떤 곳에서는 고르다고 했다) 수박이 그렇다. 물론 이는 대체적인 것이다. 그 음식의 성질이 어떠한지를 알기 위해서는 이러한 음양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아주 세밀한 생태적 관찰과 오랜 시간에 걸친 실제 경험이 필요하다.

또한, 껍질과 속의 성질이 전혀 반대로 나타나기도 하는 등 부위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으므로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인류의 역사에서 농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음식에 대한 이해가 일정한 정도로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뜻한다. 강우량이나 일조량, 토양 등에 대한 근대 과학적 분석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는 것은, 음식은 물론 음식과 자연이 맺고 있는 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했다는 말이다. 하늘의 움직임[천문]과 땅의 성질[지리], 하늘과 땅의 상호 관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 오늘날 우리가 먹고 있는 기본적인 음식이 이러한 이해에 바탕을 두고 음식으로 정해진 것이며 따라서 그 음식의 성질에 대한 이해도 그만큼 오래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농사가 아무리 근대 과학적으로 발전했다고 해도 대부분의 농사기술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음식에 대한 이해에 기초하여 발전하였거나, 또는 그러한 이해를 근대 과학적으로 재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고대의 ‘발견’ 또는 ‘발명’이 우연에 의한 것이라거나 단순 경험의 반복과 축적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은 근대의 과학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미신이다. 이는 근대 과학만이 과학이며 근대 과학 이외의 방법을 통해서는 결코 자연을 이해하거나 변화시킬 수 없다는 미신이다. 이는 온갖 근본주의자들의 의식과 똑같다.

절대적이며 보편적인 제1의 원리(대개는 유일신)에 의해 모든 것이 창조되었다고 보고 모든 존재는 그 원리에 따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따라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미신은 자신의 오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남을 해치는 도구가 된다. 그러한 예를 가깝게는 일제 강점기에서 볼 수 있다.

일제는 ‘과학’을 비판의 무기로 내세워 무당이나 풍수와 같은 것을 ‘미신’으로 몰아붙였다. 무당을 비판한 것은 도교의 틀 속에서 형성된 민족적 혹은 민중적 공동체 의식을 파괴하기 위한 것이었고 풍수를 비판한 것은 조선의 수탈을 위한 빨대, 나아가 대륙 진출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도로를 내기 위한 것이었다.

일제가 도로를 내자 각 지역 공동체에서는, 묘지를 해치는 것은 조상신을 해치는 것이며 터널을 뚫고 산을 허무는 것은 땅의 혈맥 곧 지맥을 해치는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이를 반대했다. 이에 일제는 ‘과학’을 내세워 이 같은 ‘미신’을 비판했고 공동체의 해체를 목적으로 기존의 유통망을 벗어나 새로운 도시를 만들면서 철도를 개설했다. 그 결과 주요한 길은 전주와 나주(전라도), 경주와 상주(경상도), 충주와 청주(충청도)를 벗어나 세워지게 된다.

일제에 의한 한의학 말살 정책 역시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식민지화=근대화는 ‘위생’과 ‘청결’을 앞세워 몸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고 식생활 개선을 앞세워 음식을 바꿈으로써 완성된다.

음식은 그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일차적으로는 자연을 먹지만, 그 다음으로는 음식이 자연과의 관계에서 얻은 하늘과 땅의 기를 먹게 되며 그렇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킨다. 인간의 노동이 자연을 변화시키지만 그 변화에 의해 인간 자신이 변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한 상호간의 변화를 기록한 것이 역사이며 그 역사는 바로 음식 속에 들어 있다. 우리는 음식을 먹으면서 자연을 먹는다고 생각하지만 음식에는 고대로부터 이어진 인류의 기나긴 역사가 고스란히 들어 있기 때문에 음식을 먹는다는 일은 바로 그 역사를 먹는 일이면서 또한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먹고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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