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치가 경제를 놓아주어야 할 때다
대한민국, 정치가 경제를 놓아주어야 할 때다
  • 괴산타임즈
  • 승인 2019.07.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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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일 두원공대 교수
김영일 두원공대 교수
김영일 두원공대 교수

백색국가란 일종의 수출 우대국가를 일본이 설정한 것으로, 일본이 수출한 제품이 무기로 돌아올 염려가 없는 ‘신뢰(Trust)’국가를 상대로 수출절차를 간소화한 제도이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과 독일, 영국 등 27개국을 외국환관리법상 우대제도인 백색국가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이 우리 한국에 대해서만 여러 정치적인 이유로 뺀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일본은 7월24일까지 일본 내 의견수렴을 마쳤으며, 각의 결정을 거쳐 공포하고, 21일이 경과 한 8월22일에 최대 1,100개 품목을 대상으로 한국이 백색국가에서 제외될 전망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일본의 자의적 결정인 만큼 다른 나라는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정보기술(IT), 자동차, 정밀부품, 화학 등 식료품과 목재를 제외한 거의 모든 품목에 수출허가제가 시행돼 대부분의 산업에 상당한 충격이 가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은 금수 대상으로 지정하지 않은 품목이라고 해도 군사용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판단하면 수출 허가를 통제한다. 다만 백색국가에는 개별 수출허가 신청을 면제해 주고 있다.

백색국가에서 제외되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인 불화폴리이미드·포토레지스트·불화수소 외에도 추가로 수출 제한 품목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양국 신뢰 관계에 제동을 걸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이 상황에 따라 수출 제한 품목을 늘리면 우리나라와 통상·외교관계 전반이 악화일로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백색국가로 지정된 국가에 대해 전략물자 등을 포함한 중요 물품 수출 절차를 간소화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백색국가에서 실제로 제외하면 집적회로 등 일본 국가안보에 관련한 전략물자를 우리나라에 수출할 때 일본 정부 승인을 매번 거쳐야 한다.

이 같은 조치가 실제 실행되면 불화폴리이미드·포토레지스트·불화수소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주요 소재를 규제하는 것 못지않게 파급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전략물자는 자국 국가안보, 외교정책, 국내 수급관리를 목적으로 수출입·공급·소비 등을 통제하기 위해 정한 품목·기술로 일본 정부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수출을 차단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제 보복이 우리나라가 1위인 반도체·디스플레이에 타격을 주는 것뿐 아니라 수소차, 배터리, 로봇과 같은 미래기술 산업의 발목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술 개발과 선점 경쟁이 치열한 신산업 분야에서 연구개발(R&D)의 필수 소재·부품 상당수가 일본산(産)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해 전략 물자의 수출 규제를 강화하면 첨단 소재·부품은 거의 빠짐없이 규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 정부가 올 초 내놓은 미래 핵심 전략인 '수소경제(Hydrogen Economy)'는 일본산 탄소섬유가 없으면 실현 불가능하다. 수소차는 폭발 위험이 큰 수소 기체를 가두는 '수소탱크'가 핵심인데 여기에 쓰이는 소재가 탄소섬유다. 일본 도레이(Toray)와 미쓰비시 레이온(Mitsubishi Rayon)이 세계 1·2위 기업이다. 일진그룹 자회사인 국내 중견기업인 일진복합소재(종업원 수 72명, 자본금 37억 원, 전북 완주군 소재)가 수소탱크를 만들지만 탄소섬유는 전량 일본에서 수입한다. 일본이 탄소섬유 수출을 막으면 현대차는 수소차를 한 대도 생산하지 못하게 된다.

미래 산업인 로봇산업도 마찬가지인데 로봇의 팔다리에 관절 역할을 하는 핵심 부품인 감속기(Reducer)는 하모닉 드라이브(Harmonic Drive)라는 일본 기업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로봇분야에 수천억 원을 투자하는 우리나라 네이버(Naver, LG로봇에 네이버 자율주행 기술 플랫폼 장착)는 물론이고 미국, 독일, 이스라엘의 주요 로봇 회사들도 이 회사와 협업한다. 일본이 수출 규제를 확대하면 이런 최고 완성품을 만드는 한·일 간 제조업 분업이 깨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작년 한국이 수입한 품목 중 일본 의존도가 50%가 넘는 것은 총 24개에 달했다. 일본이 '우방'에 수출 허가 면제 특혜를 주는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면, 이 품목 대부분이 군사용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수출 규제를 받을 수 있다.

일본의 수출 허가 물품은 광범위해 일본 정부의 해석에 따라 수출 규제 대상이 결정된다. 예컨대 일본 의존도가 91%(전체 수입액 중 일본 비중)인 수치제어반(CNC 초정밀 공작기계)은 일본 수출 허가 리스트의 '수치 제어를 할 수 있는 공작기계'나 '컴퓨터나 수치 제어장치에서 제어되는 측정장치' 항목에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의 소재·부품 수출 규제 강화는 전기차·로봇과 같은 미래 기술 개발은 물론이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차세대 연구·개발(R&D) 프로젝트를 막을 수 있는 위험 요소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차세대 D램 메모리개발 프로젝트로 '극자외선 기술(EUV, Extreme Ultraviolet, 124nm - 10nm)'을 추진하고 있다. 두 회사는 이 기술로 세계 최초의 10나노대 D램 개발에서 가장 앞선 상황이다. 이 신기술에 필수적인 소재가 일본이 수출 규제한 극자외선(EUV)용 포토 레지스트(반도체 원판 위에 회로를 인쇄할 때 쓰이는 감광재)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길어질수록 우리나라와 미국·중국 경쟁사간 기술 격차가 좁혀지는 상황이 될 것이다.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는 기존 LCD(액정표시장치)와 달리, 얇고 자유자재로 접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기술력 역시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보유하고 있지만, OLED의 핵심 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90% 이상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폴더블(접히는)폰 '갤럭시폴드'에 들어가는 폴리이미드(Polyimide) 역시 일본 스미토모(주)(SUMITOMO Corporation)에서 전량 수입하고 있다. 중국 화웨이(Huawei)를 제치고 폴더블폰의 강자가 되려는 삼성의 스마트폰 사업은 물론 차세대 먹거리인 폴더블·롤러블(돌돌 말리는) 디스플레이 산업까지 일본이 마음만 먹으면 제동을 걸 수 있는 셈이다.

세계 배터리 시장에선 삼성SDI·LG화학이 선두권이지만, 핵심 소재인 '배터리 분리막(Battery Separation Membrane)'은 일본 아사히 가세이(Asahi Kasei)와 도레이(Toray)에서 들여온다. 전기차 분리막은 배터리에서 전기를 만드는 양극재(Ni, Mn, Co, Al)와 음극재(리튬이온, 흑연)를 분리해 이온만 통과시키는 소재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면 폭발이나 화재로 이어진다. 분리막 기술이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경쟁력인 셈이다. 바이오산업에서도 항체·백신 원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바이러스를 걸러주는 '바이러스 필터(Virus Filter)'는 일본이 세계 1위다. 수출이 중단될 경우 의약품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일본의 '수출 허가 물품(전략물자)' 리스트는 포괄적이어서 일본 정부의 입맛에 따라 세부 수출 허가 물품을 설정할 수 있다. 일본의 수출 허가 물품엔 '군용 차량 또는 그 부속품' '군용화학제제의 원료가 되는 물질' '전자식 카메라' 등 포괄적인 품목명이 적혀 있다. 작년 한국이 수입한 품목 중 일본 의존도가 50%가 넘는 총 24개 물품도 일본의 자의적 해석에 따라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작년 일본산 수입 비중이 54%인 '기타 광학기기 부품'도 일본의 수출 허가 물품에 '광학기계 또는 광학 부품의 제어장치'라는 이름으로 올라와 있다. 우리 정부는 국산화로 대처한다는데 산업 분야마다 수백 개씩 달하는 필수 소재·부품을 100% 국산화하는 건 고순도 최첨단기술이라 단시간에는 불가능한 일이며, 정부가 R&D 과제 주고, 예산 쓴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여러 미래 첨단산업의 국가 간 협업사례에서 살펴본 봐와 같이 글로벌 핵심부품 공급 체인(Global Key Components Supply Chain)은 각국의 분업체계를 바탕으로 이뤄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가 잘 만들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하여 세계 일류상품을 만드는데 힘써야 한다. 또 한국의 미래 먹거리 산업분야를 망치지 않으려면 과거사와 경제를 분리한, 국가 간 과거사 문제해결을 위한 위원회 설치와 경제 분야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긴밀한 국가 경제협력체제 확립을 위한 노력이 필요할 때다. 또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정치가 경제를 놓아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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