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공동체를 위한 건강인가
왜 공동체를 위한 건강인가
  • 괴산타임즈
  • 승인 2019.03.22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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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은 관계를 본질로 하는 생명을 대상으로 한다
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지금까지 대부분의 건강에 관한 이론이나 정보는 사람이라는 개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그것도 특정한 부분 또는 일면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야맹증은 비타민 A, 각기병은 비타민 B, 괴혈병은 비타민 C의 부족이 원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좀 더 복잡한 설명을 보더라도 기계적인 원인과 결과라는 틀에 맞춰져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이론이나 정보로는 많은 한계가 있다고 본다. 한 개체나 부분에서는 진리인 것이 전체로서는 진리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 개체나 부분에 좋은 것이 다른 개체나 부분을 배제하거나 심지어는 해를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다른 모든 것들과 관계를 갖고 있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어떤 것의 원인이라고 하면 그 원인을 만든 또 다른 원인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야맹증의 원인이 비타민 A라고 하면 비타민 A가 부족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를 고려해야 하며 그 원인이 밝혀지면 다시 그 원인이 생긴 또 다른 원인을 생각해야 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영향을 미치는 다른 모든 요인들을 생각해야 한다. 이런 과정은 무한히 확대되어 진행될 것이다.

또한 비타민 A가 부족하게 되어 이로써 생기는 다른 결과도 생각해야 한다. 원인과 결과만이 아니라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어 생기는 문제 역시 고려해야 한다. 여기에 더하여 비타민 A를 인위적인 방법으로 투입했을 때 생기는 문제 역시 생각해야 한다. 흔히 약물 부작용이라고 하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비아그라와 같이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으로 의외의 효과를 얻기도 한다. 부작용副作用은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의도하거나 예상하지 않았던 부차적인 작용이다. 이러한 모든 부작용까지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고 야맹증의 직접적인 원인의 하나가 비타민 A의 부족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설명이 갖는 일면성과 부분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슈퍼컴퓨터와 같은 기술의 발전으로 언젠가는 거의 무한에 가깝게 보이는 관계들을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런 수준에 달하기 전까지는 원인-결과라는 틀이 갖고 있는 일면성과 부분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지금과 같이 낮은 수준에서의 원인-결과라는 틀로 분석한 것을 절대적인 진리로 여겨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사람이라는 개체에 미치는 자연과 사회, 나아가 역사의 영향까지 고려한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는 원인-결과라는 틀로 절대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가 아닌가, 이를테면 디지털로 아날로그를 모두 설명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왜 그런 작업을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작업을 하는 이유는 한 마디로, 그 분석의 결과를 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온갖 비타민 상품과 건강식품이 그 증거다. 설혹 순수 이론이라고 해도 돈이 되는 분석을 뒷받침하기 위해 의미가 있을 때에만 연구비가 제공된다.

그 결과, 부분적이고 일면적인 진리가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진리가 되어, 한 마디로 상품이 되어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리의 몸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건강에 접근하는 방법은 그런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건강은 관계를 본질로 하는 생명을 대상으로 한다. 모든 생명은 관계다.

첫째, 생명은 생물학적 관계의 총체다. 단세포생물에서 다세포생물로의 진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생명은 수많은 부분들의 관계 속에서 탄생했고 그런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둘째, 생명은 자연적 관계의 총체다. 모든 생명은 한 순간도 물과 공기와 빛이 없으면, 한 마디로 자연과의 관계없이는 살 수 없다.

셋째, 생명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다. 어떤 생명도 혼자서는 살 수 없다. 같은 혹은 다른 생명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생명이 유지된다. 생명의 지속 가능성은 오로지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렇게 보면 생명이 따로 있어서 이것이 다른 것과 관계를 갖는 것이 아니라 관계 자체가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모든 관계의 운동에 어떠한 특정한 목적이나 인위적인 의도, 또는 미리 만들어진 설계(디자인이나 모델)는 없다.

'노자'의 말처럼 천지天地는 불인不仁하다. ‘불인’이란 무감각하다는 말이다. 곧 자연은 인간적 감각 또는 인위적인 의식, 한 마디로 목적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전근대의 동아시아에서는, 만물은 그저 기의 이합집산일 뿐이라고도 하였다. 음양의 기가 모이면 특정한 꼴[형形]을 만든다.

사람도 되고 나무도 되고 돌도 되고 짐승도 된다. 그러나 기가 흩어지면 다시 아무 것도 없는 상태, 무無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 무에서 다시 꼴이 생겨난다. 그렇게 흘러가는 것뿐이다. 아무 것도 없는 데서 기가 모여 짐짓 구름이라는 꼴을 만들지만 다시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가 다시 구름을 만드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러한 생명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은 총체적인 관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전체와의 관계를 배제한 부분의 분석은 중요하지만 그것은 그런 한계 속에서의 의미만을 갖는다. 
그리고 어떤 이론이나 정보가 올바른지 아닌지는 최소한 3대에 걸친 검증을 거쳐야 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의사가 3대를 거치지 않았으면 그 의사의 약을 먹지 마라’('예기禮記', '곡례曲禮')는 격언이 내려오고 있다. 이는 어떤 약이 그 개체는 물론 다음, 그리고 그 다음 세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고 하는, 세대를 거친 경험의 문제만이 아니라 생산과 재생산이라는 관점에서 제기된 문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생물학적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

공동체는 단순히 특정한 이념 하에 특정한 사회적 관계가 실현되는 공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말하는 공동체는 사회적 관계를 포함하여 생물학적, 자연적 관계가 총체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다만, 이 공동체는 사람이 만드는 목적의식적인 공간이다. 사회와 자연과 몸이 하나 되어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곧 상생의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공간이다. 인위적인 공간이다. 인위적이기는 하지만 자연과 사회와 몸이 서로 조화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공간이다.

이러한 의도에 가장 부합하는 사상 체계로는 황노학黃老學을 들 수 있다. 그것은 대체로 '노자'와 '회남자', '황제내경'을 거쳐 '동의보감'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된 체계라고 할 수 있다. 황노학은 몸과 사회와 자연을 하나로 본다. 모든 것을 하나의 기로 보는 것이다. 황노학에는 연관을 배제한 분석이 없다.

이는 황노학의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이 된다. 연관이 배제된 사물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못한 것은 하나의 단점이다. 연관이 배제된 분석적 이해는, 그것이 다시 변증법적 종합의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사물의 운동과 발전을 부분적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지만, 대상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이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상을 인간을 위한 것으로 장악하는 데에서는 큰 힘을 갖는다.

물론 과학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가 하는 문제는 가치관의 문제이므로 이에 대해서는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하다. 총체적인 황노학의 이해가, 연관이 배제된 개체의 분석과 그 종합이라는 방법과 어떻게 통일되어야 하는가, 그럴 필요가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또 하나, 황노학은 농경을 바탕을 둔 전근대 계급사회의 사상체계다. 이것이 과연 앞에서 제시한 공동체의 개념과 어느 정도 어우러질 수 있는지는 앞으로 더 연구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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