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기 위해 살아야 한다(1)
먹기 위해 살아야 한다(1)
  • 괴산타임즈
  • 승인 2019.01.23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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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기위해서는 먹어야 하고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
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사람이 살기위해서는 먹어야 하고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 분명히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무언가를 생산하기 위해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쌀을 생산하기 위해 농사짓고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해 노동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생산을 해서 이윤이 나면 그 이윤으로 더 많은 생산을 위해 투자한다. 이제 더 많은 생산과 더 많은 이윤이 모두의 목표가 되었다.

그 결과 생산하기 위해 일을 하고 일을 하기 위해 밥을 먹게 된 것이다. 완전히 거꾸로 되었다. 

그런데 인류가 이런 식으로 생산을 위한 생산을 하게 된 것은 자본주의화가 진행된 극히 최근의 일로, 그 이전의 역사에서는 오히려 성대하게 소비하기 위해 생산이 이루어졌다.

일을 해서 생산한 것을 쌓아두거나 더 많은 생산을 위해 다시 쏟아 붓는 일은 하지 않았다.

고대에 성城이나 궁궐과 같은 거대한 건축물을 짓는 것은 권력의 강화를 위한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었지만 그런 대규모 토목 사업을 통해 부의 재분배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가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소비를 위한 생산이라는 전통은 얼마 전까지도 남아 있어서, 부잣집 잔칫날은 거지들 배불리는 날이었다.

그래서 부자라고 하면 누구보다 더 넉넉하게 잔치 음식을 준비하여 나누어주는 것이 덕이 있는 행동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구두쇠로 비난을 받게 된다.

지금도 잔치를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은 자기가 받은 것을 장부로 기록해놓고 대를 이어 갚아야 한다. 

음식에 있어서 생산을 위한 생산을 가능하게 한 조건의 하나는 냉장고의 탄생이었다. 냉장고가 생기기 전에는 생산을 위한 생산을 하려고 해도 오래 보관하기 어려워 생산의 규모는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냉장고가 생기고 일반화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무한대는 아니지만 과거에 비해 어마어마한 규모의 생산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냉장고는 단순한 저장만이 아니라 음식의 이동에도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제 북극에서 생산된 것을 남극으로 옮기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변화는 생산을 위한 생산을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문제를 낳는다. 먼저 냉장고가 음식과 몸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자.

첫째는 냉장이라는 것이 음식의 변질을 막아주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음식에 변화가 온다. 한 마디로 맛이 변하게 된다. 때로 상하기도 한다. 맛에 민감한 사람은 냉장고에 들어갔던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을 구분한다.

지금도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는 고기를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는다. 바로 잡아서 바로 먹는 것이다. 숙성을 하더라도 자연적인 조건 속에서 숙성시킨다. 

둘째는, 이것이 중요한 점인데, 계절이나 그 지역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게 됨으로써 건강을 해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먹어온 대부분의 음식은 어느 정도 오래 먹어도 별다른 해가 없는 것들이어서 약간의 독이 있다고 해도 당장은 큰 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병은 작은 것이 쌓여서 어느 날 갑자기 크게 드러나는 것이다. 제 계절이나 제 지역을 벗어나 생산된 음식을 일상적으로 먹는 시대가 오면서 조금씩이지만 독이 쌓이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독이라고 했지만, 이는 그 자체가 독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런 새로운 음식, 새로운 조건에 우리의 몸이 적응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원래 ‘독毒’이라는 말 자체에는 두텁다(厚), 많다, 세다(猛烈)는 뜻이 있다. 그 자체가 독이 아니라 진화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우리 몸에 센 것, 지나친 것이다.

사실 인류가 탄생하면서부터 지금까지도 쓰고 있는 모든 약은 음식 중에서 우리 몸에 작용하는 힘이 센 것이다. 그래서 고대에는 ‘약’이라는 말이 없었고 그냥 ‘독’이라고 하였다.

독의 센 힘을 이용하여 우리 몸의 병을 치료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독에는 치료한다[治]는 뜻도 들어 있다. 

모든 음식은 그 음식이 나는 지역의 자연과 그 자연 속에 사는 인간과의 기나긴 시간에 걸친 진화의 과정을 거쳐 최적의 관계로 형성된 것이다.

예를 들어 더운 곳에서 나는 쌀인 인디카종(Indica rice, 안남미安南米)은 더운 곳에 사는 사람들의, 찬 기운에 약한 비위脾胃에 적합한 쌀이다.

반면 온대 이상의 북쪽에서는 그런 쌀로는 허기를 채우기 어렵다. 거꾸로 북쪽에서 나는 멥쌀 내지 찹쌀은 더운 곳에 사는 사람들이 소화시키기 어렵다. 

대부분의 음식은 자기가 나는 계절에 맞는 성질을 갖게 된다. 여름에는 속을 덥혀주는 고추와 파와 같은 식물이 잘 자란다.

더운 여름에는 몸 밖의 온도에 비해 몸 안의 온도는 상대적으로 낮다. 상대적으로 차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는 몸 안을 덥혀 주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러므로 여름에는 고추나 파를 넉넉히 먹어도 좋지만 겨울에는 그래서는 안 된다(설렁탕을 먹을 때, 여름에는 파를 넉넉히, 겨울에는 조금만 넣어 먹는 것도 이런 이유다).

반대로 겨울에 몸 안을 지나치게 덥혀서 땀을 내게 되면 몸의 기가 약해져서 감기와 같은 병에 걸리기 쉽게 된다.

겨울에 땀을 내서 생기는 병은 바로 나타나지 않고 그 다음 봄에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이 춘곤증이다. 

셋째는 차게 먹지 않아야 할 것을 차게 먹거나 차게 먹는 것도 지나치게 차게 해서 먹게 된다는 점이다.

모든 음식은 그 나름대로의 적절한 온도가 있어서 그 온도에 맞게 먹었을 때 더 맛있다. 그런데 어떤 음식은 찬 성질을, 어떤 음식은 더운 성질을 갖고 있다.

여기에서 ‘차다’ ‘덥다’는 말은 물리적 온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을 기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 음식이 사람의 몸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한가를 말한 것이다.

예를 들어 고추나 마늘 같은 것을 먹으면 몸이 더워진다. 술을 마셔도 그렇다. 이럴 경우 그 음식을 덥다고 한다. 그런데 냉장고를 이용하여 찬 음식을 더 차게 하면 그 성질이 세게 된다.

독이 된다. 독이 쌓이면 병이 된다. 

냉장고가 미치는 사회적 영향은 더욱 심각하다.

첫째는 음식이 축적 가능한 상품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본격적인 식량전쟁도 가능하게 되었다. 둘째는 음식이 자본의 이윤창출을 위한 도구로 변하면서 중소자본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전에는 그날그날 먹을 것을 샀기 때문에 가까운 가게에서 조금씩 사다가 먹었다. 그러나 이제는 냉장고 덕분에 먼 곳까지 가서 한꺼번에 많은 음식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자연히 동네 구멍가게는 몰락할 수밖에 없고 대형마켓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독점이 일반화한 것이다.

셋째는 주요 생산자인 농축산민과 어민의 자본에 대한 의존 내지 종속이 심화된다. 내가 노동하여 생산할 식물이나 동물, 물고기의 종류와 양은 물론 생산 방법까지 통제받게 된다.

농기구와 비료, 농약, 심지어 종자까지 그 모든 것을 자본에 의존하게 된다. 

냉장고를 없앨 수는 없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냉장고는 냉장고로서의 미덕이 충분한 것이다. 조만간 냉장고는 스마트폰과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비쿼터스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톰 잭슨, ‘냉장고의 탄생’).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에도 냉장고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석빙고를 만들어 얼음을 보관하고 제사에 쓸 음식들을 갈무리해두기도 했다. 그러나 그 용도는 역시 소비를 위한 것이었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것처럼 냉장고 역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냉장하는 것이다. 이를 어기면 냉장고는 독이 되고 결국은 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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