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도 독이 된다
음식도 독이 된다
  • 괴산타임즈
  • 승인 2018.09.2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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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준의 한방의학] 약만 독이 아니다
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원래 ‘약藥’이라는 말은 ‘독毒’이라고 썼다. 그런데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는 말도 있다. 이 말대로 하자면 음식이나 독의 근원이 같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몸에 해가 되는 것과 몸에 이로운 것의 근원이 같다는 말이다. 이렇게 봐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이 말의 뜻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먼저 약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고대의 문헌을 보면 약이라는 말보다 독이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원래 독이라는 말에도 병을 고친다는 뜻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독’이라는 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먹으면 곧바로 사람을 죽이는 독약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보고 ‘참 독하다’라고 할 때처럼 심하다, 지나치다, 세다는 뜻이다.

조선시대에 쓰인 사약에 부자附子가 들어가는데, 부자는 매우 뜨거운 약이다. 뜨거운 기운이 센 약이다. 이는 곧 부자를 먹으면 몸이 뜨거워진다는 뜻이다.

몸이 뜨거워질 뿐이지 부자를 먹고 바로 죽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약을 먹이고 뜨거운 온돌방에 가두었던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센 것일까.

센 것은 기가 세다는 말이다. 그러면 기는 무엇인가.

기는 어떤 사물이 다른 사물과 관계를 가지면서 다른 사물에 미치는 힘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독한 것은 그런 힘이 크다는 말이다.

이렇게 다른 사물에 미치는 힘을 음식이나 약을 두고 말할 때 한의학에서는 ‘기미氣味’라는 말을 쓴다.

기미를 다시 나누면 열이라는 측면에서는 ‘기’라는 말을 쓰고(여기에서의 기는 좁은 의미에서의 기이다) 맛이라는 측면에서는 ‘미’라는 말을 쓴다.

기에는 한열온량寒熱溫凉이 있다. 차고 서늘하고 따뜻하고 더운 것이다. 맛에는 산고감신함酸苦甘辛鹹이 있다. 시고 쓰고 달고 맵고 짠맛이다.

차다, 덥다는 말은 그 음식 자체가 차거나 덥다는 말이 아니다. 물리적 온도가 아니다. 다른 사물과 관계를 가질 때 그 사물을 차게 하거나 덥게 하는 힘, 곧 그 사물의 기를 말한 것이다.

그래서 차게 하는 성질이 있으면 한기寒氣라고 하고 덥게 하면 온기溫氣라고 한다. 따뜻한 것이 더 심해지면 열기熱氣가 된다. 덥지도 차지도 않은 것은 평平하다고 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는 뜻이다. 물론 음식의 물리적 온도도 중요하다. 찬 음식을 차게 먹으면 그 기는 더 차게 되고 찬 음식을 덥게 먹으면 찬 기운이 줄어든다.

맛도 마찬가지다. 어떤 음식 자체가 달거나 쓰거나 할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음식이 관계 맺고 있는 다른 사물에게 어떤 영향을 주느냐에 따라 맛을 구분한다.

음식이나 약이나 모두 기미를 갖고 있다. 이 중에서 그 기미가 그렇게 세지 않아서 늘 먹어도 몸에 큰 부작용이 없는 것을 음식이라고 하고 기미가 한쪽으로 치우친 것을 약이라고 한다. 모두 같은 기이기 때문에 음식과 약의 근원이 같다고 한 것이다.

기미가 한쪽으로 치우친 것을 늘, 자주 먹으면 몸의 음양의 균형이 깨진다. 예를 들어 찬 음식을 계속 먹으면 몸이 차게 된다. 그러므로 음식으로 적당하지 않다.

반면 약은 기미가 치우쳐야 한다. 음식을 잘못 먹어서, 또는 외부의 나쁜 기운(이를테면 찬 기운)이 들어와 몸의 음양의 균형이 깨졌을 때는 기미가 약한 음식으로는 모자란다.

이럴 때는 좀 더 한쪽으로 많이 치우친 약(이를테면 더운 기를 갖고 있는 약), 기가 센 약을 써서 깨진 균형을 맞춰줘야 한다.

그러나 음식이나 약이나 모두 기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그래서 음식을 요리하는 것이나 약을 짓는 것도 똑같다.

대부분의 음식은 열을 가해 먹는다. 음식에 열을 가하면 그 음식이 본래 갖고 있던 기보다 더워진다. 그런데 물로 익히면 물의 찬 성질 때문에 더운 기가 조금만 더해진다. 직접 불에 굽게 되면 불의 열기가 곧바로 음식에 들어가 더 덥게 된다.

튀기면 열기를 아주 많아지게 된다. 그래서 찬 음식인 돼지고기는 잘 익혀야 찬 기운이 줄어든다. 반면 닭고기는 더운 음식이다. 닭고기를 튀기면 더운 기가 아주 많아진다.

약도 마찬가지다. 너무 찬 약은 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볶거나 굽고 술에 축여 볶기도 한다.

음식은 보통 한 가지만 먹지 않고 다른 음식과 함께 섞어서 요리를 한다. 약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약만 쓸 때도 있지만 대부분 여러 약을 섞어서 쓴다.

이렇게 여러 음식 또는 약을 섞을 때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주재료가 되는 어떤 음식이나 약의 기를 더 높이기 위해 보조하는 재료를 쓴다.

그래서 주재료의 기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기가 세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 기를 제어할 수 있는, 반대되는 기를 갖는 음식이나 약을 조금 넣는다. 예를 들어 냉면의 메밀은 찬 음식인데 메밀의 찬 기운으로 부작용이 생길까 하여 겨자와 같이 더운 재료를 조금 넣는다. 차가운 메밀국수에 파를 넣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다.

음식이나 약을 써는 것도 마찬가지다. 깍둑썰기를 하는 것보다 어슷썰기를 하면 재료의 기가 더 많이 우러나온다.

어떤 것은 다지기도 하고 어떤 것은 채썰기도 하고 곱게 가루내기도 한다. 약도 마찬가지다. 그냥 다 같은 풀뿌리처럼 보이지만 하나하나 써는 방법이 다르다.

또한 말려 먹는 것과 날로 먹는 것이 다르다. 말리면 기가 더 세게 된다. 물오징어와 마른오징어를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나물도 날로 먹는 것보다 말렸다가 먹으면 기가 더 세게 된다. 그래서 날로 먹으면 도라지라는 음식이 되지만 말려 쓰면 길경桔梗이라는 약이 된다. 율무도 날로 먹으면 곡식이지만 말려 쓰면 의이인薏苡仁이라는 약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의식동원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음식이나 약이나 모두 같은 기이기 때문에 근원이 같다는 말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한식은 이와 같이 모두 한의학적인 사고방식에 따라 만들어졌다. 그것을 오랜 세월을 두고 먹어보면서 몸의 반응을 보고 이렇게 저렇게 변화시켜왔다. 그래서 완성된 것이 오늘날 우리가 먹는 한식이다.

물론 그렇다고 전통적인 음식만 한식이라는 뜻은 아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한식이 개발될 것이고 또 변해갈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약은 독이듯 음식도 잘못 먹으면 독이다. 다만 약은 기가 세므로 부작용이 금방 나타나지만 음식은 기가 약해서 오래 먹어야 부작용이 나타난다.

그 대신 오랜 기간 동안 쌓였기 때문에 부작용도 더 오래 간다. 가랑비에 속옷이 젖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혀에서의 쾌감을 위해 잘못된 습관을 버리려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괜찮았으니 문제없다, 그냥 먹고 죽지, 가끔은 이런 것도 먹어줘야지 등등의 말을 하면서. 약만 독이 아니다. 음식도 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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