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의 단가사랑
JP의 단가사랑
  • 괴산타임즈
  • 승인 2018.07.19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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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이승신 시인이 동경 메구로 강 6키로에 늘어진 밤 사쿠라 배경으로  -  2016  3  28  동경
이승신 시인, 동경 메구로 강 6키로에 늘어진 밤 사쿠라 배경

JP가 갔다. 멋과 풍류로 알려진 그의 젊은 총리로서의 모습은 샤프하다. 보통 사람이 군인에게서 갖게 되는 이미지와 달리 그는 여유롭고 멋이 흘렀다. 국내 어느 정치인에게서도 그런 지성과 동서양을 아우르는 박학다식함을 본 적이 없다. 

수 많은 레토릭도 남겼다. 그의 부음에 많은 기사들이 쏟아졌고 그의 정치 역정과 공과를 이야기 했다. 내가 아는 것도 있고 모르는 것도 있었다. 기사 중,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있다.

<그가 당시의 일본 외상인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와의 회담을 위해 방일했을 때 객지에 혼자 묵는 남자의 적적한 심정을 적은 단가가 숙소에 걸려 있는 걸 보고 여관 주인을 불러 ‘이런 시를 일본에서 쓸 사람은 단 한 사람, 모리시게 히사야 (1913 - 2009) 뿐’ 이라고 시인 이름을 알아맞힌 일은 일본 정가에서 두고두고 회자가 되었다. 그만큼 일본을 깊이 아는 지일파로 통했다.>

모리시게 히사야 는 시인이 아니고 당대 아주 유명한 남자 배우이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의 주제가와 많은 노래를 불렀고, 유명한 가수 미소라 히바리와 두엣으로 노래한 적도 있지만 시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은 없다.

그러나 그가 인기 있었던 만큼 노래도 많이 불렀기 때문에 어느 노래의 가사를 지은 것인지도 모르고 실제로 단가를 지었을 수도 있다. 쓸쓸한 남자의 심정을 노래했다는 그 단가 한 수가 궁금해져 이리저리 알아보았으나 아직은 알아내지를 못했다. 그 뒤의 구절 “그만큼 일본을 깊이 아는 지일파로 통했다” 도 눈길을 끈다. 음~ 어느 정도를 알아야  과연 “깊이 아는 지일파”로 통하는 것일까. 그 단서는 앞의 31음절의 짧은 詩인 ‘단가(短歌)’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일본 국민은 문학을 좋아하는데 그 중 단가를 ‘마음의 고향’으로 생각하며 사랑한다. 7세기 한반도에서 많은 귀족이 일본으로 갔고 거기에서 단가를 짓고 전해주었다.

한반도와 연계된 일본 천왕은 늘 단가를 짓고 있고 일본 정치인들은 연설에 곧잘 한 줄의 단가를 인용한다. 2012년 나의 두 시집이 한일 양국에서 나왔을 때 한 권은 일어 단가로 번역을 했고 다른 한 권은 일어 현대시로 펴냈는데 단가 형식으로 나온 것을 더 감동해 했다.

작은 수첩에 자신이 좋아하는 나의 단가 88수를 써서 들고 다니며 외우는 사람을 보았고, 국회사무실에서 모리 요시로 수상과 나의 일어 단가집 ‘삶에 어찌 꽃피는 봄날만이 있으랴’를 볼 때는 15분 예정이 1시간을 넘기며 첫 장부터 끝 페이지까지 함께 읽기도 했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 두 분이 정상회담을 할 때에 고이즈미가 어머니 시인의 평화의 단가 한 수를 읊은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2013년엔 JP와 함께 단가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어머니는 살아 생전 자신이 일본에서 잘 알려졌다는 표현을 안하여 딸인 나도 잘 몰랐을 정도로 자신을 낮추었는데, 누군가 한국에도 자신의 시비를 세워 줄 듯 한 분이 나타나자 그것 하나에는 관심을 두었다. 한국에서 일생 단가를 지었는데 일본에만 자신의 시비가 있는 것이 맘에 걸린 어머니는 되도록이면 단가의 발상지로 알려진 부여에 세워지기를 바래, 나와 그 자리를 보러 부여엘 갔다. 문화원장을 지낸 분의 안내로 서너군데를 둘러 보았는데 다 역사적 사유지여서 허가를 받는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혹, 김종필 님을 통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뉘앙스를 남겼고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은 채 어머니는 가셨다.

뭘 원하시질 않은 어머니가 그 먼데를 가서 돌아 볼 정도로 관심을 보인 건 내가 알기론 그게 유일하여 가신 후 늘 마음에 걸리던 차에, 한 번은 당시 무토 일본 대사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아 나와 함께 JP 댁에 가자’고 했다.

대사가 JP에게 나를 데려다 주었고 내가 만든 한국판 어머니의 단가집과 일생을 다룬 다큐, 그리고 나의 단가집도 보이며 그 시 이야기를 꽤 했었다. 그는 뇌졸중을 회복하는 중이어 많은 말을 하진 않았으나 내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다. 일찍이 그가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정상회담으로 마주했다면 고이즈미가 어머니의 시 한 수를 읊을 때, 바로 어머니의 멋진 다른 한 수로 맞받아쳤을 거란 생각을 했다. 풍류가 있는 얼마나 멋진 광경이었겠는가. 다음 날 일본의 주요 신문들에는 우리 대통령 대신 손호연의 단가를 통한 평화 정신을 언급한 고이즈미가 부각되었다.

그가 보인 관심으로 단가 이야기를 세시간이나 하다, 정작 부여의 시비 자리 이야기는 꺼내질 못했다. 내가 독대한 이유를 그가 모른 것이다. 3 김 시대가 있었고 그만이 유일하게 대통령을 지내지 못했다. 그가 가고 어느 동영상에서 ‘제가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하고 외치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많이 아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이 물러나고 봉변당했던 걸 생각하면 안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했다면 그의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멋스런 지성의 이미지는 깨졌을지 모른다.

장례식 후, 상여가 청구동 그의 집을 돌며 찍은 한 컷의 사진을 몇몇 분이 내게 보내주었다. 인터넷 언론에 난 것인데 그의 서재 한 가운데에 그의 사진이 있고 그 바로 위에 어머니의 단가집 하나, 그 사진 바로 아래에는 어머니의 일생 다큐  ‘일본 열도를 울린 무궁화’둥근 CD가 놓여 있었다. 몇 해 전 그에게 드린 것이다. 끝까지 마음에 간직한 ‘JP의 단가 사랑’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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