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산책을 하며
봄 산책을 하며
  • 괴산타임즈
  • 승인 2021.04.2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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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이승신 시인이 동경 메구로 강 6키로에 늘어진 밤 사쿠라 배경으로  -  2016  3  28  동경
이승신 시인이 동경 메구로 강 6키로에 늘어진 밤 사쿠라 배경으로 - 2016 3 28 동경

카톡으로 많은 글이 오는 중, 스티브 잡스Steve Jobs 가 생전에 산책을 하며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에피소드에 최근 감명을 받았다.

긴 겨울 방 창으로 앙상한 가지로만 보이던 거목에 어느 날 새 잎들이 나와 봄인 걸 알았지만, 여러 달 한글판 일어판 책을 쓰고 만드는 작업으로 그 나무를 바로 앞서 못 본지 오래여, 날 좋은 날 산책을 나선다.

집 뒤로 약간 언덕진 길을 오르면 배화여고 정문이 나오고 그 문을 통해 학교 운동장 끝으로 보이는 큼직한 삼각산이 봄으로 변한 것을 확인하고는 그 옆의 거목 은행나무로 발길을 돌린다.

나무가 우람하면 싻 나오는 시기가 늦어지는데 연두빛 여린 잎들이 나무를 덮은 걸 방 창으로 보았지만, 지난 여러 달 바라보던, 갇힌 사람들 마음 같이 앙상하던 그 나무가 과연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매 해 그 변화를 보지만 매 해 신기하기만 하다. 거리 두라는 코로나 시대인가 싶을 만큼 너른 뜰 그 나무 아래에는 수많은 사람이 밝은 낯빛으로 차를 들고 있다.

거기서부터 본격 시작되는 산책 길을 걷는다. 지난 여름과 가을 많이 걷던 길인데 긴 겨울 지내고는 처음이다.

원래 있던 것과 길을 만들며 새로이 심은 벚나무가 많은 걸 보고는 내년 봄에도 코로나로 하늘 길이 안 열리면 잊지말고 이 꽃들을 꼭 봐줘야지 했었다.
그런데 잊었다.

전엔 그 산 정상을 오르곤 했는데 얼마 전 밑둥에 둘레 길이 생기고는 걷기가 편하다. 산 타지 않던 젊은이들도 갈 데가 딱히 없으니 산을 온다고들 한다.

며칠 전 비가 오고는 져버린 벚꽃이지만 그 흔적은 있다. 꽤 걸으니 혹간 덜 떨어진 꽃도 있다.
산자락이어 별 기교는 없지만 그 순수함이 비오고도 남아있어 기쁘다.

걷는 그 길에 최근 규모 있는 '초소 책방' 북카페가 생겼다. 김신조가 나온 후 청와대와 가까운 곳이니 군부대 초소가 여기저기 있었다. 걸으며 보초 서는 어린 군인들과 인사도 했었다.

그 초소 하나에 책이 있는 찻집을 구區에서 지은 것이다. 광화문 시내 한복판이 내려다 보이고 산과 숲에 둘러싸인 좋은 위치로 이런 데가 대도시 복판에 어디 또 있을까 싶다.

산 만한 바위도 코 앞에 있다. 코로나 임에도 사람들이 아래 위로 꽉 찼다. 얼마나 갑갑했을까 하는 연민은 있다.

다시 걷는다.

거기서부터는 계절이 늦었지만 하얀 산벚꽃도 보이고 진분홍을 넘어 빨강에 가까운 복사꽃이 보인다. 잿빛 겨울엔 상상 못 할 화려한 빛이다. 꽃가지들 사이로 청와대와 북악산이 보인다. 수십 년 보아 왔는데 기대 안한 조화다.

무슨 나무인가 아직 잎 없는 겨울나무인데 고개를 젖히니 앙상한 저 가지 위로 꽤 큰 새집들이 보인다.

와아~ 얼마나 똘똘하면 두 팔도 없는 새가 입으로 가지들을 물어다 합심하여 저런 집을 네개나 지었을까. 흔히 인간만 집을 짓는 줄로 생각한다.

새머리라고 비하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 여름 가을 꽤 걸었는데도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들이다. 시끄럽고 혼란스런 인간의 역사가 어지러웠다.

인간은 자연의 겨우 일부일 뿐인데 우리가 다인양 행새했다고 봄꽃과 새들, 발 밑을 기어가는 풀벌레가 일러준다.

재앙의 긴 시간은 어쩌면 인류에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을 오염시켜온 인류이지만 걸핏하면 잊고 지낸 대자연은 커다란 사랑의 품으로 소리없이 우리 생명을 지켜오고 있었다.

어둡고 추운 겨울의 터널을 나와 27살에 간 윤동주 문학관까지 긴 산책을 했다. 교토에서도 서울에서도 그 푸른 시인은 내 곁을 떠나지 않는구나.

김형석 선생이 백 년을 살아오며 아는 이 중 가장 성공한 이가 윤동주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 여러 조건을 갖춘 것이다.

마주하는 봄꽃이 봄풀이 바람에 흔들리며 '팬데믹이 끝없어 보여도 결국은 끝이 있는 거야, 그런 거야 ' 라고 나에게 귀띔해 준다.

해마다 매듭짓는 꽃이라면 이 봄에 다시 만날 수 있을 그대여
- 손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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