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판 명예의 전당 「사마소(司馬所)」
조선판 명예의 전당 「사마소(司馬所)」
  • 괴산타임즈
  • 승인 2021.01.2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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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서 박사 / 전 공무원
주영서 박사.
주영서 박사.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읍내리에는 국내에 몇 안 되는 유교 유적인 사마소가 있다. 충청북도기념물 제49호인 청안사마소(淸安司馬所)이다.

16세기부터 세워진 사마소 가운데 지금까지 명칭을 그대로 유지하는 곳은 청안사마소, 옥천 사마소(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57호), 경주사마소(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호, 풍영정) 등 세 곳뿐이고, 사마소로 건립되었다가 후일 다른 이름이 붙여진 곳으로 성주 연계당(蓮桂堂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15호), 영천 삼일재(三一齋), 강릉 계련당(桂蓮堂,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9호), 진주 연계재(蓮桂齋) 등 현존하는 건축물은 손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하며, 문헌에도 일선(구미) 사마소(출처 : 일선읍지[一善邑誌])·공주 사마소(출처 : 공산지[公山誌]) · 충주 사마소(출처 : 충주목 지도) · 광양 사마소(박세후[朴世煦]가 중종 때 건립) · 목천 사마소(안정복[安鼎福]이 정조 때 중건) · 인동 사마소(최문징[崔文徵]이 숙종 24년에 건립) 등 몇 안 되는 기록만이 남아 있다.

사마소는 16세기경, 그 당시 훈구파(勳舊派)에 의하여 은퇴 관료의 백성수탈기구로 전락한 자치기구인 유향소(留鄕所)에 대항하여, 사마시(司馬試) 출신 젊은 생원(生員)·진사(進士)들이 설립하기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친목 도모 및 학문 도야와 교육활동을 전개하여 고을의 교화에 이바지하였으나, 점차 압력단체로 변질되어 수령의 지방통치에 간섭하고 유향소를 유명무실화하기에 이르렀고, 이러한 폐단이 심각해지면서 급기야는 1603년(선조 36년) 류성룡(柳成龍)에 의하여 사마소 폐지가 건의되기에 이른다.

홍중삼(洪重三)이 1708년(숙종 34년) 저술한 향약통변(鄕約通變)에 향교(鄕校), 서원(書院)과 함께 사마소에 향약을 응용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초기에는 대다수의 군현에 설치되었다가, 사마소에 의한 폐단 발생으로 철폐가 시도된 이후, 한 고을에서 50인 이상의 생원·진사를 배출했을 때 제한적으로 사마소 건립을 허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청안사마소는 1703년(숙종 29년)에 펑안현에서 급제한 생원·진사의 수가 50명을 넘어섬에 따라 세워졌으며,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로 철폐되었다가, 1950년 지역유림과 후손들에 의하여 재건되었다. 제명록(題名錄)에는 현감 23인과 생원·진사 91인 등 114위가 올라 있으며, 매년 봄·가을에 제향하고 있다.

괴산의 유교 유적을 둘러보면서, 국가의 통치 철학으로, 개인의 행동철학으로, 중세 이후 우리나라는 물론 동양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준 유학이 융성했을 때 그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고, 특히 서원(書院)과 사마소는 유교를 숭상한 조선시대, 사림(士林)과 향사(鄕士)의 교화에 대한 열정과 아울러 교학(敎學)의 권력화로 유교가 지향하는 가치를 스스로 훼손함으로써 척결의 대상이 되었던 질곡의 역사가 모자람만 못한 지나침의 교훈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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