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대마도의 한국어 학교 ‘한어사’와 ‘한어학소’
[기획연재] 대마도의 한국어 학교 ‘한어사’와 ‘한어학소’
  • 괴산타임즈
  • 승인 2020.12.29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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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본시 우리 땅이다' 작가, 이석우 시인의 우리 역사문화 답사기
눈물의 섬 대마도를 가다 45.
이석우 시인
이석우 시인

아메노모리 호슈(雨森東)는 한국어 학습서 '교린수지'집필에 만족하지 않고 1727년 통역양성학교인 한어사(韓語司)를 대마도에 설립하였다.

조선 선비들은 한글을 언문이라며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대마도 사람들은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였다. 이들은 오히려 조선 선비들보다 한글을 더 잘 썼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특히 남자들은 한국어를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터에, 한국어를 잘하면 실제로 출세의 길이 열렸으므로 동기부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한어사는 9살에서 17살 사이의 청소년을 뽑아 3년을 공부시켰는데, 조선한자음 연습을 위해서 『유합(類合)』, 『십팔사략(十八史略)』을 공부하고, 한어교육의 단계별 교재로는 『교린수지(交隣須知)』 및 『물명책(物名冊)』, 『한어촬요(韓語撮要)』, 『숙향전(淑香傳)』 등의 소설을 학습하고, 한학(漢學)은 『소학(小學)』, 『사서(四書)』, 『고문(古文)』, 『삼체시(三體詩)』 등을 교재로 삼아 공부하였다.

하루 4시간씩 한국어 수업을 하고 매달 27일 월말고사를 보았다.

주목되는 점은 학습자의 흥미 유발을 위해 우선 한국 풍습 관련 자료를 동원하였는데, 특히 춘향전 등 한글 소설을 읽어가며 교재로 활용한 점이다.

매월 3일과 8일에는 한국어 토론을 하고 그 내용을 한글로 적어 우삼동에게 보내면 그 내용들을 책으로 편철하였다. 중국어를 배울 때도 구어체 소설을 활용하였다.

우삼동이 사용한 교육법은 조선시대 사역원의 학습방법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한어학소(韓語學所)가 광청사 건립과 동시에 1872년 8월 25일 개설되었다. 조선 침략을 준비하기 위해 통역사를 양성하려고 세운 임시통역사 학교였다.

이곳에 대마도 유력자의 자제 34명을 입학시켜 1873년 8월 2일까지 교육한 후에, 10명을 선발한 다음, 이 한어학소는 폐쇄하였다. 이 선발된 학생은 그해 10월 16일 부산초량관에 어학소를 만들어 유학교육을 시킨다.

강화조약 후, 양국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한국어 학습의 필요성이 증대하자, 우라세가 교린수지를 교정하면서 내용을 늘린다.

이 책의 인쇄를 담당했던 호세코는 1880년에 일본인을 위한 한국어 학습서인 『한어입문(韓語入門)』 저술하는데 『교린수지』 초간본의 ‘하늘’, ‘우레’, ‘아침’이 여기서는 ‘하’, ‘우’, ‘앗’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이 초량관어학소는 1880년 동경외국어학교에 조선어학과가 생기면서 자동으로 문을 닫았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 때 한국어 통역사 2명이 투입되는데, 그들이 바로 한어학소 출신이다.

또한, 조선 식민지를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통역비서였던 고쿠분 쇼타로(國分象太郞)도 한어학소 출신이었다.

그는 을사늑약 조약문 초안과 한일 합병문 초안을 작성하였으며 그 공적으로 나중에 훈장까지 받은 인물이다.

그는 1906년 통감부 서기관에서 1910년 총독부 인사국장으로 발탁되었고, 1917년 1월에는 이왕직 차관까지 올라, 덕혜옹주의 일본 강제 유학을 추진한 당사자 이기도 하다.

1921년 9월 7일 운명의 그림자가 그에게 덮쳐왔다. 조선호텔의 한 결혼피로연에서 술 두어 잔 마시고 토하다가, 장에 구멍이 뚫려 요절하고 말았다.

당대 명필가로 알려진 이완용은 한걸음에 달려가 애도하며 그의 묘비명을 쓴다. 누군가 나중에 그 비문 “종삼위훈1등국분상태랑지묘” 왼쪽 아래에 ‘후작 이완용 서(侯爵 李完用 書)’라고 새겨 넣었다.

이 묘비를 황백현 박사가 대마도에서 2007년 발굴했고, 서예가들과 학자들의 검증을 거쳐 이완용의 필체임을 밝혀냈다.

한어학소는 우리나라의 언로를 옥죄며 국권을 찬탈하는데, 한 역할을 감당한 셈이다.

『교린수지』는 2009년 12월 7일 부산광역시의 문화재자료 제51호로 지정되었다. 이 책은 부산광역시 시립시민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교린수지』는 2009년 12월 7일 부산광역시의 문화재자료 제51호로 지정되었다. 이 책은 부산광역시 시립시민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한어사는 우삼동이 한국어를 가르치던 곳이다, 일본 소학교적 1호이다.
한어사는 우삼동이 한국어를 가르치던 곳이다, 일본 소학교적 1호이다.
한어학소가 설치되었던 광청사 본당 건물이다.
한어학소가 설치되었던 광청사 본당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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