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막이옛길과 수월정
산막이옛길과 수월정
  • 괴산타임즈
  • 승인 2020.12.20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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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서 박사 / 전 공무원
주영서 박사.
주영서 박사.

산막이옛길은 옛날 산막이마을에 살던 선조들이 물이 불어 강을 건너지 못하면 이고 지고 턱에 차는 숨을 몰아쉬며 고단한 삶을 이어가기 위해 오가던 길이었는데, 발길이 끊어지면서 다시금 자연이 되었었다.

군자산 남쪽 기슭에 펼쳐진 갈은구곡의 빼어난 경관과 대한민국 최초, 우리 기술로 건설한 괴산발전소 상류에서 수력발전을 위해 기다리느라 잠시 멈춰선 물길이 만들어 낸 괴산호가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하게 할 만큼 조화를 이룬 절경을 품고….

원석은 자연의 산물이지만 보석으로 탁마(琢磨)하는 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보다. 흔적조차 희미해진 옛길을 다듬고 가꾸어 지금은 수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명소가 되었다.

산막이옛길에는 눈에 보이는 수려한 풍광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길의 끝자락에서 만나게 되는 산막이마을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대학자인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 선생이 20년간의 기나긴 유배 생활을 마감하는 마지막 2년을 보냈던 수월정(水月亭 : 노수신 적소)이 자리 잡고 있다.

산막이마을은 선생에게 닥쳤던 불운을 걷어내고 길운으로 앞날을 채워 준 길지(吉地)이다. 선생은 1515(중종 10)에 출생하여 1543년 식년문과(式年文科) 장원으로 관리의 길에 들어서 삼정승을 모두 역임하였으며, 퇴계 선생과 함께 독서당(讀書堂)에 선발되어 학문을 연구하였고, 『대학장구(大學章句)』와 『동몽수지(童蒙須知)』 등을 주석하였으며, 선생의 저작인「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에는 퇴계 선생이 주석을 붙일 정도로 학문적으로도 높은 경지에 다다랐던 대학자였다.

이조 좌랑이던 1545년(명종 원년) 을사사화(乙巳士禍)로 1547년부터 시작된 유배 생활은 1567년 선조(宣祖) 즉위로 다시 기용되기까지, 순천에서 진도를 거쳐 괴산으로 20여 년간 이어졌다.

선생의 불운은 산막이마을에서의 2년을 끝으로 종지부를 찍었고, 이후 대사헌, 대제학 등을 거쳐 1573년 우의정, 1578년 좌의정, 1585년에는 영의정에 이르기까지 승승장구하게 된다.

선생의 행적을 살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벗하는 사람에 따라 인생이 바뀌듯이, 거(居)하는 곳에 따라서도 운명이 바뀌는 것이 아닐까? 오늘날 산막이옛길에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도, 눈에 보이는 수려한 풍광과 아울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길지(吉地)의 푸근한 기운이 조화롭게 작용하고 있는 것 때문은 아닐까?

아무리 좋은 향기도 받아들일 마음가짐이 없으면 스쳐 지나가는 한 줄기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처럼 모든 사람이 어려운 시기에 이곳을 찾는 이들 모두 이 땅의 힘찬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새로운 희망을 다지고 앞날에는 길운(吉運)만이 깃들기를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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