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구곡(華陽九曲)
화양구곡(華陽九曲)
  • 괴산타임즈
  • 승인 2020.10.12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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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서 박사 / 전 괴산군 농업경제건설국장
주영서 박사.
주영서 박사.

화양동은 청화산에서 발원한 화양천이 물줄기가 가령산과 도명산을 만나면서 빚어 놓은 절경이다.

이곳의 옛 지명은 황양나무가 많아서 붙여졌던 황양동이었는데, 우암 송시열 선생이 중화(中華)의 화(華)와 일양내복(一陽來復)의 양(陽)을 따서 화양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화양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양서(梁書)」 도홍경전(陶弘景傳)에서 찾을 수 있다.

도홍경의 호가 화양은거(華陽隱居)였는데 그는 구곡산(句曲山)에서 은둔하면서 양무제(梁武帝)의 여러 차례 부름에도 끝내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화양(華陽)이 은자(隱者)가 사는 곳이라는 뜻으로 회자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우암 선생은 조선을 통틀어 정치와 학문 영역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3천 번 이상 등장하고, 전국 23개 서원에서 제향한 대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선생께서 심혈을 기울였던 북벌 정책이 효종의 급서로 무위로 돌아가고 현실정치에 대한 실망까지 겹쳐 낙향을 결심하면서 택한 곳이 바로 이곳 화양동이었다.

선생은 1666년 8월부터 1688년까지 이곳 화양동에 거하며 학문을 도야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화양동에는 성리학(주자학)을 신봉했던 선생이 주자의 무이구곡을 본 따 직접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지는 화양구곡, 학문을 도야하고 후학을 양성했다는 암서재,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제자 권상하 등이 지었다는 화양서원과 만동묘 등이 있다.

화양동은 암각자의 보고이기도 하다. 조선 선조의 만절필동(萬折必東), 명 태조의 충효절의(忠孝節義), 임진왜란 때 파병을 결정한 신종의 옥조빙호(玉藻氷壺/현재 소재 불명으로 누군가에 의해 훼손됨), 명의 마지막 황제 의종의 비례부동(非禮不動), 우암 선생의 ‘창오운단 무이산공(蒼梧雲斷 武夷山空)’ 등의 친필 암각자가 남아있다.

자연의 창조물인 절경과 그에 걸맞은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한 우암 선생의 합작품으로 명승과 고적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화양동은 지금도 사시사철 찾는 이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편, 지난 2014년 6월 문화재청은 ‘괴산 화양구곡’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했다. 화양구곡이 명승으로 지정되면서 전국 구곡 가운데 구곡이란 이름으로는 첫 명승으로 탄생됐다.

조선 선조대왕의 글씨 만절필동(萬折必東). 2001년 전 중원대 이상주(구곡문화전문가) 교수 탁본 제공
1914년 우인규(禹仁圭 1896~1967). 우구원 탁본 제공
‘옥조빙호’를 새긴 돌을 끼워 넣었던 직각 홈. 2015년 전 중원대 이상주(구곡문화전문가) 교수 사진 제공
명나라 태조의 글씨 충(忠)․효(孝)․절(節)․의(義). 2001년 전 중원대 이상주(구곡문화전문가) 교수 탁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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