延中有弘(연풍에 김홍도가 있다) - 도화서 이야기(18)
延中有弘(연풍에 김홍도가 있다) - 도화서 이야기(18)
  • 괴산타임즈
  • 승인 2020.10.0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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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우(중원대학교 상생교양학부 교수)
이근우 교수
이근우 교수

돈황(敦煌)은 사주(沙州)라고 부르던 시대가 있었으니 그 이름처럼 사막의 도시이다. 돈황 막고굴(莫高窟)은 4세기 때에 시작되어 14세기까지 수많은 동굴이 만들어진 곳으로써 그 전성기는 당나라 측천무후 때이다.

돈황의 돈(敦)은 ‘크다’, 황(煌)은 ‘번성’이라는 의미로, 돈황은 크게 번영하는 도시라는 뜻이 된다. 막고(漠高)는 사막보다 높다는 뜻인데, 그 ‘漠高’가 어느 때인가 ‘莫高’로 되었다. 

돈황 막고굴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는데 왕원록, 장대천, 상서홍이다. 도사 왕원록 하면 장경동(경전이 보관되어 있던 굴), 즉 제17굴 발견과 그 안에 3세기부터 11세까지 3만 여 점의 문서들이 있었는데, 일부의 문서들이 그에 의해서 해외로 팔려나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러나 처음 발견했을 당시에 그는 청(淸) 정부에 알렸지만, 별다른 관리 방법의 지침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중국 현대화가 장대천은 돈황에 머무르면서 돈황 벽화 임모와 창작을 남기면서 미술사적으로 매우 의미있는 업적을 남겼다.

장대천이 돈황을 떠날 무렵 상서홍이 돈황에 도착했다.

그는 1936년 파리의 세느강변 책방에서 본 프랑스 동양학자 폴 펠리오(Paul Pelliot) 편집으로 된「돈황천불동」의 중국 고대미술에 접했던 감격에 비해 황량해진 석굴에 상심했다.

그 상심이 상서홍의 발걸음을 돈황에 머물게 했다. 사주, 즉 모래 속에 파묻혀 누구도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을 때 몇몇 사람들에 의해 먼지뿐인 사막의 돈황을 지켜냈다. 

연풍에 김홍도가 있다. 하지만, 200년의 넘는 세월 속 메마른 땅속에 파묻혀 있다. 곧 겨울이 다가올 것이다.

막고굴 장경동 제17굴(왼쪽), 오른쪽 상단 왼쪽부터 왕원록, 상서홍, 장대천.
막고굴 장경동 제17굴(왼쪽), 오른쪽 상단 왼쪽부터 왕원록, 상서홍, 장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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