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대마도의 산맥까지 선명한
[기획연재] 대마도의 산맥까지 선명한
  • 괴산타임즈
  • 승인 2020.08.2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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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본시 우리 땅이다' 작가, 이석우 시인의 우리 역사문화 답사기
눈물의 섬 대마도를 가다 36.
이석우 시인
이석우 시인

지도에는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근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들이 기대어 살던 산줄기와 물줄기에 고을과 마을을 그려 넣고 그에 어우러졌던 삶의 세부를 기록하고 있는 까닭이다.

지도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는 세계와 삶의 합일(合一)을 지도를 통해서 표현하고자 하였다. 따지고 보면 생태환경의 결과물이 인간이 아니겠는가. 지도 제작의 결과물은 삶의 존재 방식과 괘를 같이 함께한다. 따라서 신토불이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자연관과 지도 제작자의 자연관이 일맥상통한다 하겠다. 옛 지도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중요한 역사자료로써 삶의 심층을 이해하는 총체적 자료라 할 것이다.

보물 1538호로 지정되어있는 <동국대지도>는 대마도의 산맥까지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18세기 중엽 정상기가 제작한 우리나라 전국지도이다. 이 지도는 나중에 <대동여지도>를 만든 설계도와 밑그림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상기가 만든 원본은 전하여지지 않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은 그의 지도를 가장 잘 반영한 사본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뜻으로 ‘동국’이라는 말을 머리에 얻었으며, 크기가 가로 147cm, 세로 272cm에 달하여 ‘대지도’라고 뒤에 붙여 <동국대지도>라 하였다. 이 지도는 새로운 기호 체계를 도입한 진일보한 지도이다. 이후 우리나라 전통지도인 <대동여지도>의 초석이 되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앞서 만들어졌던 <동국대지도>의 정상기와 같은 선구자의 노력이 누대에 걸쳐 축적되어 온 덕분이라 하겠다. 어떤 측면에서는 정상기가 <대동여지도>를 능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18세기 후반기 대축척 고을 지도를 제작한 신경준은 정상기의 지도를 기본자료로 활용한다.

정상기(1678년~1752)는 조선 후기의 지리학자이며 지도 제작자이다. 그런데 그는 실학에 능한 성호 이익의 제자가 된다. 그의 아들과 손자들이 모두 뛰어난 지도 제작자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옛 성현의 가르침으로 늘 마음을 가다듬어 왔다. 그런 그가 자신보다 3년 연하인 이익에게 가르침을 청한 것이다. 이를 보면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의 정도를 알 수 있다. 그는 이익의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퇴계 이황, 남명 조식 등으로부터 성리학을 열심히 받아들인다.

그는 사람들에게 점을 치고 문자를 써서 마음을 혼란하게 하지 말 것을 권고하였다. 그리고 높은 선비들이 입던 웃옷의 제작법을 잃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 공이 직접 문헌을 살펴 원본대로 제작하여 입도록 하였다.

오랫동안 조선팔도를 답사하고 백리척(百里尺)의 축척법(縮尺法)을 이용하여 팔도도(八道圖)를 도별로 만들었다. 그리고 역대의 국경변천역사와 군현의 연혁과 관방의 성곽, 해로(海路), 궁실(宮室) 등에 대한 변천을 기술하였다. 1752년(영조 28년) 8월 5일 향년 75세로 사망하였다. 묘비문은 성호 이익이 찬하였다.

그는 세상에 얼굴을 내지 않고 실학 연구에 매진하였다. 그 결과 정치· 경제국방 · 군사전략 · 의약 · 농학 등 다방면에 걸쳐 저술을 내놓았다. 아들 정항령은 관직에 나갔으나 그의 행적은 별로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1752년 정상기가 죽자 영조는 당시 하급관리였던 정항령의 집에 좋은 지도가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급히 조정에 들여와 지도를 살펴보니 산줄기와 물줄기 그리고 도로의 표현이 매우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1957년 (영조 33년) 임금의 명으로 정상기의 <동국대지도>는 모사되어 홍문관과 비변사에 보관된다. <동국대지도>와 조선 후기의 지도들은 거의 백두산을 강조한다. 백두산에서 시작해서 금강산을 거쳐 태백산과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것이 백두대간의 그 요체이다. 백두대간이 남쪽으로 힘차게 뻗어내리는 가운데 주요산맥을 사람의 몸에 비견하여 강조하였다.

<동국대지도>는 축척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정상기는 일정한 비율의 축척을 국토의 모든 곳에 일관되게 적용하여 대형의 <동국대지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도첩에는 백리척(百里尺)이라고 하는 축척을 빠짐없이 표시하였다. 전국 8도의 도별도와 작은 축척의 조선전도를 합쳐 만들었는데, 19세기 말까지 인기를 끄는 지도첩이 되었다.

특히 <동국대지도>는 2,200여 개에 달하는 지명을 다양한 기호를 사용하였다. 자연지명이 1,200여 개와 인문지명이 1,000여 개다. 인문지명 중에는 330여 개가 고을이고 오늘날의 군사령부인 병영과 수영 등의 군영, 진과 보 같은 군사기지, 산성 등 군사 관련의 지명으로 250여 개에 이른다. 이 지도는 지명들을 기호화하는 진보된 방식을 택하였으며 후일 김정호에 의하여 더욱 발전하게 된다. 육로, 해로, 고갯길을 나타내어 군사적, 경제적, 행정적 필요를 충족하였다.

정상기의 아들 겸재 항령은 영조의 시종으로 근무하다가 말년에 특별히 통정대부 행첨지중추부사(通政大夫行僉知中樞府事)의 벼슬을 가자 받았다. 

정상기의 '동국대지도'일부, 정상기
정상기의 '동국대지도'일부, 정상기
보물 제1538호 '동국대지도'는 대마도의 산맥까지 그려져 있다. 크기가 272.2×137.9 cm로 재질은 비단이며, 1755년에서 1757년 사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보물 제1538호 '동국대지도'는 대마도의 산맥까지 그려져 있다. 크기가 272.2×137.9 cm로 재질은 비단이며, 1755년에서 1757년 사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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