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대마도의 토요포대와 부산의 장자등포대
[기획연재] 대마도의 토요포대와 부산의 장자등포대
  • 괴산타임즈
  • 승인 2020.07.2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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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본시 우리 땅이다' 작가, 이석우 시인의 우리 역사문화 답사기
눈물의 섬 대마도를 가다 34.
이석우 시인
이석우 시인

일제는 대마도에는 제2차세계대전 목전까지 약 30 문의 대포를 설치한다. 그 가운데 토요포대는 대마도 북쪽에 만든 대표적인 포대이다. 토요포대는 대한해협의 제해권을 장악하기 위해 1929년 5월 착공하여 1934년 3월 공사를 종료하였다. 조선인 노동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강제로 동원되었다.

두께 2~3미터의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흙을 올려 인공산을 만들고. 그 속에 포신 18.5 m, 중량 108톤, 사거리는 30.3km에 달하는 당시 세계 최대의 함포를 은폐시킨 것이다. 당시 대포는 수압의 힘으로 상하 이동할 수 있었는데 그 시설이 아직 남아 있다. 관광객의 눈길을 끈다.

그러나 토요포대의 대포는 단지 3발의 시험발사를 했을 뿐이다. 미군의 군함이 이 산엄한 포진지 때문에 대한해협에 접근하지 않았으므로 함포를 발사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해방후, 1945년 10월 미군 폭파반은 포대를 해체하려고 하다가 3m에 달하는 철근 콘크리트의 두께에 굴복하고 말았다.

또한, 일제는 오륙도가 내려다보이는, 부산 남구의 용호동 일대에 대마도 토요포대보다 일찍 포대 건설을 시작하였다. 이 포대는 600여 명의 조선인이 강제 동원된 가운데 대마도와 똑같은 쌍둥이 포대로 만들어졌다.

부산의 관문 오륙도(五六島)는 국가지정문화재 명승(名勝) 제24호이다. 거친 바람과 파도를 막아준다는 방패섬, 소나무가 섬 봉우리를 지킨다고 솔섬, 수리가 갈매기를 사냥하는 수리섬, 송곳같이 뾰족한 송곳섬, 섬의 가운데 굴이 있는 굴섬, 평평한 밭섬에는 유일하게 사람이 살았었는데 1937년 11월에 등댓불이 바다를 밝히면서 등대섬으로 이름표를 바꾸어 달았다.

여섯 개의 바위섬이 나란히 뻗어 앉아 있는 가운데, 동쪽에서 보면 여섯이 되고 서쪽에서 보면 다섯이 된다.

1740년에 편찬된 『동래부지(東萊府誌)』는 이렇게 보는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셈 수를 놓치지 않고, 오륙도라 명명하였다. 이것은 방패섬과 솔섬이 아랫부분이 거의 한 덩어리로 끌어 않고 있어, 썰물일 때는 한 개가 되고 밀물일 때는 두 개가 되는 지형적 특성에서도 비롯된 이름이다.

이 아름다운 오륙도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용호동(장자등) 일대에, 일제는 1924년부터 대마도의 토요포대와 함께 대한해협을 향한 포진지를 만들었다.

1930년 완공된 이 장자등 포진지는 높이 3m, 내부 길이 45m, 연면적 1 천 652 ㎡ 규모의 거대한 지하 요새로 지하에 1개 대대가 주둔할 수 있다. 이곳에 일제는 사거리 30 ㎞가 넘는 구경 16.1인치 포대 2 문을 배치해 대한 해협을 봉쇄하였다.

일테면 육지에 정박해 있는 군함(軍艦)인 셈이다. 이 지명은 군함(軍艦)의 소리글로 구남이라 부른다. 일제는 이 잘록개를 장자등이라고 기록하였다. 포진지 등을 감추기 위해 편백과 삼나무 숲은 만들기도 하였다.

 이곳에 배치한 포대는 군함 아카시로에 탑재되었던 함포 4기를 떼어 내어, 통째로 대마도와 이곳에 설치하였다. 이것은 워싱턴 군축조약에 따라 아카시로가 항공모함으로 개장하면서 분리한 것이다.

부산과 대마도의 거리가 49.5km이므로 양쪽에 사거리 30km의 포를 설치하면 대한해협은 완전히 봉쇄된다. 일단 일본은 미국 함대의 대한해협 접근을 막는 데는 성공하였다.

2차대전 막바지에 미군의 B-29가 장지등포의 상층부를 날려버린다. 해방 후에 대포와 부속 시설은 미군이 떼어간 후, 1946년 3월 이성곤 장로가 한센인들과 용호동 장자등포대 일본군 막사에 용호동 상애원을 시작하여, 양계 등으로 용호농장을 운영하여 자립갱생의 기반을 닦아 1200여명 한센인의 생활터전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군사구역 내 일부 시설은 녹물을 뱉어내며 아직도 신음하고 있다. 막사와 탄약고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할까 말까 말만 무성하다. 정부가 세금 올리듯한다면야 무엇인들 못하랴.

지심도에도 4곳에 일본군 중포대 포진지가 남아있다. 이 포진지도 대한해협을 겨냥한다. 이 섬의 포대는 1936년에 착공해 1938년에 완공하였다.

이것은 진해만 요새의 확장개념으로 1942년부터 부산 요새로 바뀌게 된다. 포진지와 탄약고, 서치라이트 보관소 등이 아직 그대로 있으며, 가덕도와 외양도에도 일본군 막사와 포진지가 아름다운 섬의 상처로 고스란하게 존재하고 있다.

토요포대 내부
장자등 포대지구 탄약고
장자등포대 막사
부산 ‘장자등포대’에서 오륙도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부산 ‘장자등포대’에서 오륙도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토요포대 안내판
토요포대 안내판
군함 '아카시로'의 캐논포 2문 한 세트가 토요포대로 옮겨졌다.
군함 '아카시로'의 캐논포 2문 한 세트가 토요포대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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