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바다의 신, 이순신 해군 제독
[기획연재] 바다의 신, 이순신 해군 제독
  • 괴산타임즈
  • 승인 2020.07.13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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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본시 우리 땅이다' 작가, 이석우 시인의 우리 역사문화 답사기
눈물의 섬 대마도를 가다 33.
이석우 시인
이석우 시인

1905년 5월 27일 새벽 4시 45분, 대한해협의 동쪽 대마도에서 세기의 해전이 벌어진 것이다. 24시간 계속된 해전에서 러시아 발틱함대는 38척의 함대 중 35척이 괴멸되고, 3척만이 회생한다. 사령관 로제스트벤스키 제독까지 포로가 된다. 도고 헤이치로 제독이 이끄는 연합함대에게 러시아 함대가 전멸한 것이다.

그가 시용한 전술이 바로 이순신 장군의 정자전법(丁字戰法)이었다. 일렬로 늘어서오는 함대를 가로로 막아서서 맨 앞의 배를 집중포격하여 개전 30분 만에 러시아 함대 선두의 스와로프호를 격침 시켜 버린다.

승전 축하연에서 기자가 도고 제독에게 영국의 넬슨 제독과 이순신 제독에 비견할 만한 빛나는 업적을 세웠다고 말하자. "나를 이순신 제독에 비교하지 말라. 그분은 전쟁에 관한 한 신의 경지에 오른 분이다. 이순신 제독은 국가의 지원도 제대로 받지 않고, 훨씬 더 나쁜 상황에서 매번 승리를 끌어내었다. 나를 전쟁의 신이자 바다의 신이신 이순신 제독에게 비유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겸허하게 말하였다.

실제 일본 해군사관학교에서는 "이순신전술전략"이라는 교과목을 가르치고 있었다. 도고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은 조선의 수군을 지휘한 이순신 제독입니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였다.

대마도해전 승리는 러일전쟁에서 일본에게 갑자기 승리의 영광을 가져다주었다. 이때 출전했던 하사관 중에는 진해 출신의 조선인들이 많았다. 그들의 이순신 장군의 후예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들의 승리는 우리 민족에게 곧바로 불행의 그림자를 덧씌우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토 히로부미는 1905년 11월 10일 고종황제에게 “짐이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대사를 특파하노니 대사의 지휘를 일종하여 조치하소서.”라는 일왕의 친서를 내밀더니, 한 일간 조약 체결을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궁궐의 안팎은 물샐 틈 없는 일군이 에워 쌓고 있었다. 황궁의 나뭇잎마저 공포에 휩싸여 떨게 만들었다.

11월 17일 경운궁의 어전회의는 5시간이 넘도록 결론에 닿지 못하고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얼굴색이 악마로 변하더니, 군사령관과 헌병대장을 대동한 채, 대신들에게 가부(可否)를 강압적으로 묻기 시작하였다. 이때 이완용, 이근택, 이지용, 박제순, 권중현은 찬성하여 ‘을사오적’이 되어 대대손손 민족의 반역자라는 낙인을 얼굴에 새기게 되었다.

그날 밤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 공사 하야시 간에 굴욕적인 을사늑약 이른바, ‘한일협상조약’이 체결되고 말았다. 1910년 병탄으로 이어져 우리 역사에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안겨 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2년 6월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이끄는 일본 연합함대와 니미츠 사령관이 지휘하는 미국의 태평양함대가 맞붙은 미드웨이 해전이 터진다. 미드웨이섬의 공격에 나선 야마모토 대장은 1941년 12월 7일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했던 유능한 해군 제독이었다.

미국 측 함정 35척(항공모함 3척), 비행기 233기, 일본 측 함정 47척(항공모함 4척), 비행기 285기)이 동원된 역사상 최대의 해상전이었다.

일본 전력은 결코 미국에 뒤지지 않았으나 참패하여 결과적으로 해상 장악력을 잃고 패망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때 니미츠함대는 아군 전력을 횡대로 배치하여, 적을 감싸 안듯 양 날개를 휘어, 적을 최대한 유효 사거리 안에 집어넣는 전술, 즉 한산도 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이 펼쳤던 학익진(鶴翼陣)의 전법을 사용한 것이다.

야마모토 대장은 후일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읽고 나서 "이 책을 진작에 볼 수만 있었다면 미드웨이 해전에서, 더 나아가 2차대전에서 결코 패망하지 않았을 텐데……" 하고 탄식하였다고 한다.

 학익진은 문종이 직접 저술한『신진법(新陣法』에 등장한다. 부산해전에서 활용한 장사진(長蛇陣)과 함께 적시되어 있다.

이순신 장군은 병법과 더불어, 진법(陣法)과 진도(陣圖)를 깊이 연구하였다. 밑바닥이 평평한 조선 판옥선의 이점을 활용하여, 지자포, 현자포 등의 대포 화력을 일본 수군보다 월등하게 늘려 배치하였다.

그리고 배를 우현과 좌현 혹은 전방으로 자유롭게 회전시켜, 양 날개포와 전방포를 교대로 발사함으로써, 판옥선을 사실상 장전시간이 필요 없는 전천 후 포격선(판옥선)으로 개조하였다. 조선의 정식 수군은 500명 정도에 불과하였지만, 격군(노젓는 병사)은 오히려 750명 수준을 유지한 것으로도 포격선은 기동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왜군은 5만~10만 명 규모의 백병전에 능한 무사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포는 병선으 안정성이 없어 겨우 2문 정도를 들보에 매달아 놓고 발사하는 지경이었다. 배는 삼나무로 만들어져 있어서 어쩌다 조선의 병선과 부딪치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일본은 학익진과 장사진 전술을 T자형 혹은 丁(고무래 정)자형 진형이라고 응용하여 1894년 청일해전과 1905년 러일해전에서 승리하였다.

영국의 경우, 일본 해군의 학익진(丁자진) 해전원리를 도입하여 1차 세계대전 때 독일 해군을 깨뜨렸고, 2차 세계대전에서는 일본의 태평양 함대가 미국 해군의 학익진(T자진)으로 무참하게 괴멸되었다.

지금도 세계 여러 해군사관학교에서 학익진은 해전 전술학으로 강의 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은 최고의 군인이 되기 위해 수많은 병법서와 전쟁사를 연구하였으며, 실전에서 한 치의 오차도 발생하지 않도록 군사들을 철저하게 훈련 시켰다.

그가 세계제일의 해군 제독으로 추앙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날개를 편, 학의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학익진도라고 한다
날개를 편, 학의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학익진도라고 한다
발틱함대 이동경로 : 러시아는 일본 태평양함대에 대항하기 위해, 발틱함대를 지구 반 바퀴 돌아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시킨다. 석탄 증기선을 무리하게 유럽에서 동아시아로 항진하다가, 피로 누적의 패퇴 원인을 불러왔다
발틱함대 이동경로 : 러시아는 일본 태평양함대에 대항하기 위해, 발틱함대를 지구 반 바퀴 돌아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시킨다. 석탄 증기선을 무리하게 유럽에서 동아시아로 항진하다가, 피로 누적의 패퇴 원인을 불러왔다
러시아 발틱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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