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우(중원대학교 상생교양학부 교수)
규장각(奎章閣)은 정조 즉위 1776년(영조 52) 3월에 착공을 시작해서 7월에 창덕궁의 북원(北苑)에 설치되었다. 일층은 규장각이고 2층은 주합루(宙合樓)인데, ‘규장(奎章)’ 이라는 이름은 하늘의 별 중에서 문장을 맡은 별인 ‘규수(奎宿)’가 빛나는 집이라는 뜻이다. ‘주합(宙合)’이라는 말은 ‘우주의 하나가 된다’는 뜻이니 자연의 이치에 따라 정치하겠다는 정조의 큰 포부가 담겨있다.
규장각의 성격은 첫째 어제(御製), 어서(御書), 전적(典籍)의 봉안소 및 장서각으로 둘째는 학술기관, 셋째는 정치기구로서의 기능이다. 규장각 설치 이후 1894년 갑오경장으로 폐지될 때까지 조선조 후기의 문운(文運)을 불러 일으킨 중심기관이었다.
정조는 창덕궁에 왕권정치의 산실인 규장각을 창설한 뒤 가장 우수한 화원 10명을 선발해 규장각에 파견 근무하게 하는 준(準) 궁중화원 성격의 ‘자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 제도를 설치함으로써 도화서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정조는 자비대령화원들을 매우 파격적으로 우대하였다. 조선 후기의 화려한 도화서 전성시대를 연 김응환, 신한평, 김홍도, 이인문, 김득신 같은 대표적인 화원들은 모두 규장각의 자비대령화원을 지낸 궁중화원 출신이다.
저작권자 © 괴산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