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이야기
서촌 이야기
  • 괴산타임즈
  • 승인 2020.05.1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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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이승신 시인이 동경 메구로 강 6키로에 늘어진 밤 사쿠라 배경으로  -  2016  3  28  동경
이승신 시인이 동경 메구로 강 6키로에 늘어진 밤 사쿠라 배경으로 - 2016 3 28 동경

서울의 서촌은 내 고향이다

나의 원적 본적 현주소가 '서울 종로구 필운동 90' 으로 되어 있

미국에 유학을 가 머문지 20여 년그리워 한 곳도 이 마을이었다

 경복궁의 서쪽이어 서촌으로 불리우나 인왕산의 옛 이름이 서산西山이어 그 산 아래 동네를 서촌이라 부르게 되었고 세종께서 태어나시어 세종 마을로 부르기도 한다

 경복궁 바로 곁인 이 마을에는 예로부터 선비와 학자 문인 예술가가 많았고 내가 어려서 이 곳에 살기 시작했을 때에도 여유롭고 참으로 좋은 주택가였다

옛 골목이 미로처럼 많아 어디든 통하고 통인 시장과 금천교 시장의 두 전통 시장이 있으며 사직공원과 활터어린이 도서관종로도서관, 유서 깊은 경복고 경기상고 청운상고 배화여고 배화여대가 있고 무엇보다 마을 서편에 인왕산이 길다랗게 뉘어져있다. 시내 한복판인데도 살짝 들어와 있어 조용하고 평안했다

 그러던게 미국의 삶 20년 후 귀국해 보니 학군을 따라서든 올라가는 부동산 값을 따라서든 많은 이가 그 사이 강남으로 가버렸다그들이 간 후 이 곳은 시내 복판임에도 가격이 형편없이 떨어지고 서민 동네가 되어 버렸다.  300 년 되는 유서 깊은 커다란 한옥에 혼자 남아 대책 없이 추위에 떨고 계신 어머니가 답답하기만 했었다

 그런데 다시 수 많은 세월이 흘렀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누상동 길을 따라 올라가면 나오는 수성동 계곡이 여러 해 공사 끝에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재색도' 속 본래의 수성 계곡으로 복원되어 물이 내려오고, 강남 아파트가 좋다고 가버린 이들이 수 십년 지나 이제 오래된 이 마을이 좋다고 찾아들고 있다

문학 예술 건축 외의 다양한 문화와 골목들, 다채로운 음식이 살아나고 서촌에 상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떠났던 사람도 돌아오지만 출판사 영화사 갤러리 패션 레스토랑 건축사 사무실들이 들어오고 통인시장이 사람들로 붐빈다

의 대가로 일찍이 이웃나라의 인정을 받은 어머니가 옮기지 않고 여기에 그대로 머물기만 하는 게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맞았다. 적어도 이조 시대와 함께 했을 이 마을과, 사랑과 영혼이 깃든 집을 차마 버리고 떠날 수 없어 추워도 외로워도 홀로 참고 견디었던 어머니가 맞았다는 걸 깨달은 건 그러나 가시고도 한참 후의 일이다

손호연 시인 말고도 이 곳엔 이상 윤동주, 어려서 본 노천명 같은 위대한 시인과 춘원 이광수, 서정주 김동리의 흔적이 살아 있고, 조선시대 최고 화가 겸재 정선뿐 아니라 이상범 박노수 화백, 어머니가 그 집에서 금계라는 그림을 직접 산 천경자 화백이 있었다. 평양에서 바이올린을 함께 한 이윤모 아버지를 보러 이 필운동 집에 오셨던 김동진 가고파 작곡가도 2009년 97세에 가시기까지 바로 옆, 누상동에 사시어 아침마다 우리 집 앞을 잰 걸음으로 산책하시는 걸 매일 보았다

꼭꼭 숨어있던 보석 '서촌' 탐방이 시작되어 손호연 이승신 모녀시인의 집은 물론, 이상 시인의 집윤동주 시인의 하숙집박노수 미술관, '건축학개론' 영화 속 서연과 승민의 아련한 첫 사랑 씬을 찍었던 누하동 한옥과 70 년 역사로 중고 서적이 전혀 팔리지 않아도 버티어 온 할머니의 대오서점, 대만 사람이 50여 년 자장면을 만들어 온 영화루, 대기업 빵집이 판치는 세상에 줄을 서는 동네 빵집 효자 베이커리, 대통령이 임기 중 서민의 동정을 살피러 명절에 예고 없이 들리는 인근 통인시장, 그리고 수성 계곡의 푸르른 자연과 그 역사를 돌아본다

고층 건물과 융통성 없는 규격 아파트에 싫증이 난 이들이 이리로 와 남의 나라 관광하듯 겉으로만 훑는 것이 안타까워, 구석구석 숨겨져 있는 그 감동의 역사와 휴먼 스토리를 알려주어 힘을 얻어 갔으면 하고, 여직 같은 집에서 글을 쓰고 있다

 시내 가까인데도 시골스럽고 어리숙해 보이나 정겨운 마을이다 

워싱톤, 뉴욕의 삶에서 조국을 그리는 말과 글을 썼으나, 돌아와 보니 정작 내가 그리던 건 어려서 자라난 이 마을이었다

이 곳이 상업화만 될 게 아니라, 오밀조밀 골목길에 '사람 사는 냄새'  있고 인왕산 정기에 조상들의 혼과 문향예술향이 살아 넘치는 서울의 대표적 품격 있는 마을로 오래오래 보존되기를 나는 소망한다. 세상이 여러 번 바뀌어도 그런 마을 하나 쯤은 나라의 자존심으로 있어야 하지 않겠나

다 떠났어도  300 년 유서 깊은 자신의 고택이 도시개발 포크레인에 길로 뭉턱 잘려 나갔어도, 일찍이 바꿔타지 않아 큰 손해를 보았어도, 역사의 가치와 사랑의 혼을 지키며 '한 줄의 시'로 일생 이 곳에서 묵묵히 표현해 온 어머니가, 함께 걸은 골목길을 걷다보면 몹시도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젊을 때부터 정들여온 집 떠나기 망설여져 구석구석 그대 모습 생생해

 

                                                                                            손 호 연

젊을 때부터 정들여온 집 떠나기 망설여져 구석구석 그대 모습 생생해 - 손호연

63년 역사의 대오서점
길게 줄을 서는 동네 빵집
시인 이상의 집
옛 게임방이 서촌 소개소로 된 옥인상점
통인시장과 유명 기름 떢볶이
'손호연 이승신 모녀시인의 집'  종로구 필운동 90
영화 건축학개론의 첫사랑 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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