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부러지다
나무 부러지다
  • 괴산타임즈
  • 승인 2020.04.08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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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이승신 시인이 동경 메구로 강 6키로에 늘어진 밤 사쿠라 배경으로  -  2016  3  28  동경
이승신 시인이 동경 메구로 강 6키로에 늘어진 밤 사쿠라 배경으로 - 2016 3 28 동경

그걸 보는 순간 절망했다.

그 나무를 내가 처음 대면한 건 2014년, 다음 해 시작될 도시샤同志社 대학 일정을 앞두고 미리 가 방을 구할 때였다.

대학 바로 앞의 고쇼御所, 일본 천왕이 대대로 살아오던 궁으로, 경복궁보다 훨 크니 다 돌아볼 수도 없는데, 밖으로 난 여러 문 중에 동지사대학 정문을 건너 보이는 그 궁문으로 들어가면 곧 나오는 것이 벚나무 군이 모여있는 특별한 뜰이다.

봄이면 교토에서 벚꽃을 이미 많이 본 때였음에도, 궁의 북쪽 끝 열 두어 그루, 키 크고 폭 넓은 나무들이 꽃으로 서로 어우러지고 땅으로 늘어진 우아한 그 모습은 지상의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그 중 한 그루는 15 미터 키에 나무 통이 굵지도 않은데 높이 오른 한 가지가 옆으로 길게길게,  꽃을 쏟아지게 피어내 올려다 보고 둘러도 보고 만져도 보고 그 아름다움을 우러렀었다. 

얼마 머물지 않는 꽃이기에 교토에 머무는 짧은 기간 몇 번을 가 보다, 떠나기 아쉬워 뒤돌아보니 그제서야 아래 쪽 몸통이 눈에 들어오며 울퉁불퉁 많이 헤진 게 보여 도로 뛰어 가 그걸 쓰다듬어 주었다. 터지고 갈라져 보기에도 쓰라린 그 줄기로 수수억개 애써 피워낸 게 애처로웠기 때문이다.

모두들 나무 저 위의 화려하게 피어난 꽃만 찬양하고 있었다.

갈 곳 많은 도시, 그렇게 꽃 피는 철에만 본 그 나무를 웬지 겨울에 보고 싶어졌다. 교토는 우리보다 남쪽이어 춥다고 느낀 적이 없지만, 겨울은 역시 잎이고 꽃이고 없었다.

일정을 마치고 겨울의 고쇼御所 궁을 찾았다.

봄에 보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 없었다. 나무는 많았지만 그 나무, 그 몸통을 찾았다. 아무리 보아도 그게 그거 같고 잎과 꽃 없이 휑하여 다 허름해만 보였다. 

헤치고 헤쳐, 마침내 어스름에 그걸 찾아냈을 때 봄보다 더 텅빈 나무 통은 갈라지고 많이 파여진 모습이었다. 그 나무가 한 겨울, 겉으로는 안보이나 저 속에서 꽃을 피워내려 온 힘 다해 물길을 끌어올리고 내리고, 그렇게 끝없이 반복하고 있을 걸 생각하니 희생하는 '대지의 어머니' 만 같아 안스러웠다. 

오는 봄에도 긴 혹한을 견뎌온 사람들과 나에게 힘을 줄 거지? 살아있는 생명에게 그렇게 말도 걸었었다.

그는 해마다의 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2018년 봄에도.

하늘에서 내리는 그 희망을 보며 많은 글을 쓰기도 했다. '천년千年'이라고 내가 이름지었던 그 이야기가 '왜 교토인가?' 신간에 몇 개의 글로 들어있기도 하다.

그러던게 지난 2018년 가을 그 뜰에 들어가니 아니 이게 웬 일인가. 십여 그루 중 유독 눈독 들였고 꽃으로 빛이 나나 제일 파졌고 흉하게 갈라진 몸통의 그 나무가, 높이 올라 왼켠으로 길게 뻗치어 핑크 폭포로 쏟아져 내리던 꽃줄기가 완전 잘려져 나간게 아닌가. 부러진 것이다.  세상에, 앙상한 가는 몸통만 남은게 처참했다. 엄청난 테러 맞은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적막했다.

그 여름 연일 쏟아진 폭우로 교토가는 공항이 폐쇠된 외신은 보았으나, 화안한 빛으로 세상을 밝히던 그 꽃줄기가 뭉텅 잘려나가고 위로 뻗친 가는 줄기 몇 가랑만 남게 된 건 정말 몰랐었다.

뿌리채 파이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위로해 보나 아 그러나 그 순간, 그것은 절망이었다.  일년 12달, 목숨다해 피워낸 생명의 커다란 부분이 몸에서 떨어져 나갈 때의 심정이 어땠을까.

다른 의미로 그에게 다가가 다시 안아주었다.

여직은 그가 나를 품어 주었다면 이번에는 전심으로 내가 끌어 안아주었다.

미안해 미안해, 정말 몰랐어. 양팔이 잘려 나갔으니 어쩌면 좋아~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을까, 아~  나무 모서리에서 보면 꽃덩어리가 커다란 하트로 보이던 그 옆 벤치에 주저 앉았다.

그리곤 일어섰다. 너는 할 수 있어. 자연이 준 것을 자연이 가져갔지만 다시 시작하는 거야.  첫 걸음부터 한 걸음 한 걸음.  몸통이 있고 물이 있고 공기가 있고 그리고 뿌리깊은 저 흙이 있쟎아. 거기에 햇빛은 내리 쏟아지고. 

하룻 밤새 길다란 가지를 다 키울 순 없지만 언젠가는 그보다 더더 크게 새로운 모습으로 자라날 거야. 너는 할 수 있어. 해마다 보아왔지, 네 안에 싱그런 그 분홍빛 물이 잔득 들어있지 않아. 가지를 키우고 잎싻을 틔워 그 엑기스를 다시 넣어주어야 해. 무엇보다 생명이 있고 받은 소명이 있지. 시련을 딛고 일어서 눈부신 모습으로 힘과 위로가 필요한 가엾은 이 세상에 희망을 보이는 거야. 위대한 환희의 선물로. 

지난 봄 그렇게 어루만지고 돌아 와 대학원에서 '문화예술 인문학'을 가르치고는 종강 다음 날부터 허리로 전혀 일어서질 못하고 있다. 지금 내가 들어야 할 말을 그때 그에게 한 생각이 난다.

이 또한 예상못한 일이다.

모든 일정을 캔슬했고, 1시간 거리 교토는 고사하고, 집 밖도 나가지 못했지만, 캄캄한 터널의 이 계절이 다하곤 빛 속의 그를 마주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남은 몇 가지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리라
서로롤 보며 얼마큼 일어섰는지
얼마나 속이 깊어졌는지 
새봄에
우리는 한 눈에 가름할 수 있으리라

마주하리라
마침내 꽃을 피우기 위해
마침내 그 희망 보이기 위해

혹독한 이 계절이 다하면

 

봄이면 피어날, 땅으로 늘어진 꽃가지 - 교토 고쇼
나무 근처 보이는 옛 왕족 고노에 가近衛家 집터
2018 4월까지 15미터 폭으로 길게길게 피어났던 '천년'
'퀸 사쿠라'로 불리는 이 나무들은 다행히 피해를 피했다
하트로 피어났던 '부러진 나무, 천년'의 옆모습, 일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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