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치도리가후치千鳥ケ淵
엄마의 치도리가후치千鳥ケ淵
  • 괴산타임즈
  • 승인 2020.03.27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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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이승신 시인이 동경 메구로 강 6키로에 늘어진 밤 사쿠라 배경으로  -  2016  3  28  동경
이승신 시인이 동경 메구로 강 6키로에 늘어진 밤 사쿠라 배경으로 - 2016 3 28 동경

동경東京을 여러 번 간 분 중에도 타이밍이 맞지 않거나 몰라서 치도리가후치千鳥ケ淵의 연못 물로 빨려 들어가는 그 분홍빛 폭포를 못 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스무 살부터 동경에 많이 간 나도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없었다. 손호연의 전기집 '풍설의 가인風雪の歌人'을 보기 전까지는.

키다데 아키라北出 明씨는 일본 국제관광진흥원 서울 소장으로 1993-1998년 사이 서울에 주재했다. 귀국하기 조금 전에야 어머니를 만나게 된 그는 한국에 5년 머무는 동안 가장 감동한 분으로 어머니를 꼽았다. 일본으로 돌아가기 직전 만나게 된 걸 몹시 아쉬워하며 손호연의 일생을 책으로 내기로 결심을 하게 된다. 공직에 있던 분이 처음 작가가 되는 순간이다. 

휴가를 맞을 제마다 서울을 날아와 어머니를 4년 여 인터뷰하고 취재를 했다. 그렇게  일본 굴지의 출판사인 고단샤講談社에서 '풍설의 가인風雪の歌人'이 출간되고는 어머니가 동경 출판기념회에 참석하셨고 매스콤으로 화제가 되었다.

태어나니 나라 잃은 시대였고 조선의 마지막 왕비 '방자方子 여사'가 동경 유학을 보내주어 가정학을 전공하면서 단가를 짓기 시작했고, 귀국 후 일어로 가정학을 가르치게 된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일어로 시 짓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17살에 몸에 밴 것을 빼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북 분단, 6 25 동족상잔의 전쟁이 터지고, 아버지(나의 할아버지) 의 북으로의 납치, 3년 간의 초량 피난~ 등이 이어진다.

그런 아픔의 시대를 살아온 것만도 힘들었는데 제목까지 '풍설의 가인, 눈폭풍 속을 살아온 시인'으로 하고 싶지 않았으나, 작가 키다데北出 씨가 그런 역경을 거치고 대가가 되었기에 독자들이 힘을 얻을 것 아닌가, 라며 설득했다고 어머니에게 들었다. 치마저고리를 입은 사진의 표지엔 '이 시인에게 일어는 모국어가 아니었다' 라고 쓰여져 있다.

가신 후에야 어머니의 여러 원고 연구 중에 보게 되었다. 수 백수의 단가詩가 전기집에 들어 있다. 우리 민족이면 맞았을 파란만장의 일생을 짧은 시에 함축하여 표현한 것이다. 시에는 자신의 삶도 들어 있지만 그 삶의 배경인 대한민국 현대사가 죄다 나온다.

남편과 할머니, 다섯 남매를 기르시던 어머니의 시를 쓰는 모습을, 아주 말년을 빼고는 본 적이 없다.

늘 조용하셨던 어머니는 나에겐 '그냥 엄마'였다. 전화로 '밥은 먹었니?'가 제일 많이 들은 말이다. 이제는 어머니의 일생을 왜 묻지 않았을까 '손호연 프로젝트'를 하면서 후회막심이지만, 그때는 코앞의 일로 바쁜 나에게 엄마가 자신의 가치나 시詩의 배경을 이야기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들을 태세였다면 왜 하시지 않았겠는가. 

키다데 씨는 한일 정상회담 연설에서 한일 두 수뇌가 어머니의 평화의 시를 읊자 두번 째로 손호연 전기집을 다시 내게 된다. 인상적인 것은 교토를 방문해 나카니시 스스무中西 進 선생 (일본의 레이와令和 새 시대 이름을 고안한 분) 댁에 머물고는 역전에서 헤어지며 다시는 못볼 것처럼 어머니가 흠씬 울었다는 이야기와, 밀가루에서 추출한 글루텐으로 만든 후麩 요리 이야기였다. 가신 후 나도 나카니시 선생과 교토의 후麩 요리하는 역사 깊은 한베이를 찾았었다. 최근 미국에서 대체고기로 고기 맛을 내는 것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걸 거기선 1689년부터 만들고 있었다.

동경 이야기로는 치도리가후치千鳥ケ淵 (천마리 새의 늪) 의 벚꽃을 잊을 수 없다는게 마음에 남는다. 봄이 오자 나는 거기로 향했다. 그 곳은 천왕이 사는 왕궁을 빙 둘러 싼 연못의 일부이다. 수 십년 그 앞이 숙소였는데 왜 그걸 몰랐을까 싶으나, 연못이 워낙 커서 걷는 거리는 아니었다.

궁 담을 끼고 물 양켠으로 오래 된 벚나무의 꽃이 길게 늘어져 내리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처음엔 만나는 세 팀과 밤 조명까지 하루에 3 번을 가 보기도 했다.

그 피어남의 절정이란 겨우 이삼일, 인산인해이나 무리없이 2키로 산책길을 걸었다. 감탄의 경지를 넘어서인가 한마디 표현없이 모두들 조용히 움직였다. 광경도 광경이나 어머니가 70년 전 보신 그 광경을 이어서 딸이 보는 감격이 더해졌다.

한 나절 기다려야 하는 배타기는 엄두를 못내나, 분홍빛 폭포수가 쏟아져 내리는 배경에 연둣빛 물을 노 젓는 씬은 영화보다 강렬했다. 

저 광경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70년 전 어머니는. 

곰곰 생각해보는 동경 치도리가후치千鳥ケ淵의 봄 산책이다.

詩로 먼저 표현하신 어머니 
그 순간 무슨 시를 떠올렸을까

천마리 새의 늪
치도리가후치 千鳥ケ淵
風雪을 이겨내고 꽃은 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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