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아리랑 마쯔리(祭)는 한류의 재연
[기획연재] 아리랑 마쯔리(祭)는 한류의 재연
  • 괴산타임즈
  • 승인 2020.02.14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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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본시 우리 땅이다' 작가, 이석우 시인의 우리 역사문화 답사기
눈물의 섬 대마도를 가다 23.
이석우 시인
이석우 시인

2016년 한 일 공동으로 조선통신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부산과 대마시는 축제를 연다. 그러나 조선통신사를 바라보는 양국의 시각에는 상당한 갭이 있다. 일본은 한류의 열풍을 불러 일으켰던 조선통신사를 조공행렬로 보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대마도에 31개의 포대를 설치하여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초토화 시킨 후, 군사요충지로써의 대마도의 중요성을 확증하게 되었다. 그래서 또다시 대마도에 자위대의 미사일 기지를 설치한 것이다. 대마도에는 대학교가 없다.

군사기지가 필시 대마도 개발을 가로 막고 있을 것이다. 일본 관광객도 한국 문화로 가득한 대마도로 발길을 돌리지 않는다. 해방 전에는 대마도에서 발생한 환자들은 부산으로 후송되어 치료 받았다. 대마인들은 부산의 한 구로 지정해 주었으면 하는 푸념까지 했을 정도이다.

대마도는 도주의 힘이 약화되면 왜구들이 더욱 창궐하였다. 조선은 대마도 왜구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이종무의 대마도 징벌 후, 도둑질에 능한 왜구들이 숨어 있는 대마도와는 교역하지 못하게 고립화 정책을 썼다.

굶어 죽게 생긴 대마도주는 세종 2년(1420) 윤정월 10일 사람을 보내온다. "대마도는 조선의 주군(州/郡)으로 하며, 그 주명(州名)을 지정받고자 한다. 동시에 조선 조정에서 주군인(州郡印)을 내려달라"고 하였다. 이에 조선 정부는 대마도를 다시 경상도에 예속시키고, 관인(官印)을 보내주었다. 대마도 1州는 8郡으로 행정구역이 편제되었다.

세종 25년에는 계해조약을 맺어 대마도주에게 1년에 50척의 세견선과 200석의 세사미를 보내주었다. 이후 왜구의 노략질이 뜸해졌다. 대마도는 늘 한반도에 경제적 도움을 달라고 애걸복걸하면서도 왜구와 일본 정부의 칼날을 피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래서 대마도는 곡식과 칼날에 의한 양속 관계에 놓였던 것이다. 한국인 관광객이 그들을 먹여 살리고 있으므로 지금도 현실적으로 그 양속 관계는 지속되고 있다할 것이다.

8월 첫째 토요일과 일요일에 걸쳐 조선통신사 행렬을 축제로 승화시킨 ‘아리랑 마쯔리(祭)’리가 성대하게 열렸다. 이 축제는 일본 5대 축제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 축제가 최근 몇 년간 열리지 않았었다. 대마도에 있는 문화재를 원정 절도단이 훔친 때문이라고 대마시는 이유를 들었다. 어찌하든 이것은 왜구의 노략질과 다름없는 짓이었다.

우리는 문화재 2점 중 하나는 돌려보내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좀 민망스러운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대마도는 우리 땅이다. 대마시가 문화재로 지정하여 소중하게 여기고 있으니 모두 돌려보내 모국의 깊은 뜻을 헤아리게 해야 할 것이다.

역시 대마도는 본시 우리땅(對馬島本是我國之地)이다. 금년 들어 ‘아리랑 마쯔리(祭)’가 다시 열렸다. 관광객 유치 차원이긴 하겠으나 한반도 도래인들의 무의식적인 고향에 대한 동경을 어찌 딸 잘라낼 수 있을 것인가. 이는 "무릇 대마도는 옛날에는 신라국과 같은 곳이었다. 사람의 모습도 그곳에서 나는 토산물도 있는 것은 모두 신라와 다름이 없다.”라고 한 대마도인의 저술『진대(塵袋) 2권』을 통해 그 답을 음미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조선통신사는 조선과 일본 양국에 250년간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뿐만 아니라 선진 문물을 전달하는 수단이 되었던 것입니다. 500 명에 이르는 이 사절단은 국왕의 외교문서를 지닌 채 인삼, 호피, 모시, 삼베, 붓, 먹, 은장도, 청심원, 각종 시문과 서적 등을 선물로 가지고 가서, 일본인들에게 당인의 춤(唐人誦), 마상재 등의 예술제를 제공하였다.

이것이 바로 한류의 원조가 된 것이다. 통신사가 나타나면 글이나 글씨를 받으려고 군중이 몰려들고, 특히 마상재(馬上才)의 곡예는 관백이 직접 관람하였다. 당시 마상재와 통신사행렬도 자개문향을 새긴 도장주머니는 일본 귀족사회의 유행품이 되었다. 6개월에서 1년 정도가 걸리는 조선통신사를 일본은 막대한 예산을 들이며 국빈으로 대접하였다.

아리랑마쯔리는 부산과 대마시 합동으로 열린다. 에도시대에 조선통신사 일행을 영접하던 의식을 축제로 승화시킨 것이다. 아리랑 마쯔리(祭)는 한류의 재연이다.

일본에 전승되고 있는 당인춤 : 조선통신사의 아동이 추던 춤을 흉내 낸 춤이 현재 일본에서 전승되고 있는데, 당시 일본인들은 중국과 한국을 구별할 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당인춤”이라 하였다.
일본에 전승되고 있는 당인춤 : 조선통신사의 아동이 추던 춤을 흉내 낸 춤이 현재 일본에서 전승되고 있는데, 당시 일본인들은 중국과 한국을 구별할 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당인춤”이라 하였다.
대마도에서 재현되고 있는 조선통신사 모습
대마도에서 조선통신사 모습이 재현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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