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가야를 일본이 다스렸을까?천만의 말씀!
[기획연재] 가야를 일본이 다스렸을까?천만의 말씀!
  • 괴산타임즈
  • 승인 2019.11.27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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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본시 우리 땅이다' 작가, 이석우 시인의 우리 역사문화 답사기
눈물의 섬 대마도를 가다 18.
이석우 시인
이석우 시인

많이 혼란스럽다. 일본서기는 백제 역사를 무리하게 바꾸다 보니 많은 오류를 생산하고 있다. 우선 연대를 잘못 기록하여 신라, 백제의 역사와 맞지 않는다.

369년 백제(근초고왕 24년)의 이야기이다. 이 해에 신라는 기야 7개국을 점령한다. 백제는 4세기 중반쯤 심미다례를 정복하여 영산강 유역을 백제권역으로 복속시킨다. 이 전투에 바로 근초고왕과 태자 근구수가 함께 참전한다. 이 백제의 영산강 정복역사를 신공왕후(249년)가 백제의 목라근자(木羅斤資)를 시켜 정복한 것이라고 각색하여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이때 연대 기록을 잘못 옮기는 바람에 120년의 오차가 생기게 되었다. 일본 역사학자들은 궁리 끝에, 일본서기의 신공왕후 기록을 2 갑자, 즉 120년을 당겨서 기록하는 무리를 범한다.

근초고왕은 곧 신공왕후 일까요? 왜가 정복했다는 이 가야 7국은 모두 신라에 통합된다. 좀 이상한 일이다. 신공왕후 전설은 백제가 늘 정복을 꿈꾸던 가야 7국을 정벌을 자신이 했다고 쓰고 있다. 이에 대하여 이근우 교수는 아직 정벌하지 않은, 정벌하고 싶은 가야지역을 정벌한 것처럼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본의 사학자 쯔다라의 주장대로 일본사기가 백제왕이 한 일들을 왜왕이 한 것처럼 기록한 부분이 대부분이라면, 신공왕후의 가야 정벌설을 백제를 주어로 해서 살피고 임나일본부도 ‘백제의 가야 지배’ 시각으로 가야의 역사를 살펴보면, 역사적 사실들이 편하게 이해될 것이다. 그러니까 4세기 중엽부터 6세기 중엽까지 가야가 백제의 지배 아래에 놓여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일본의 사학자 쯔다라의 주장과 같은 맥락에서 한국의 일부 학자들은 임나일본부는 백제가 가야지역을 통치하기 위해 설치한 기관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임나 관계에서 백제의 역사적 사건이 일본 역사로 둔갑하였다고 보는 시각이다.

540년대 이후로 가야지역이 백제의 세력권에 있었고 임나일본부를 구주의 백제계 세력인 왜 왕조와 관련시킨다. 천관우의 “왜 계통의 일부 용병을 거느린 백제가 369년부터 562년까지 북부 가야지역을 지배했다.” 라는 주장은 한반도에 분포되어있는 고분들의 해석과 일치한다.

일본 역사학자들은 신공왕후의 전설을 내세워 왜왕권이 369년~562년까지 약 200년간 가야를 비롯하여 백제, 신라 등의 한반도 남부를 직접 경영하며 북쪽의 고구려와 대결하였다고 부풀리면서, 이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 ‘임나일본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임나는 가락, 가라, 가랑 등으로 불리는 가야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보다 8년 전에 완성된 일본의 고사기에는 임나일본부라는 말이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원래 ‘일본’이라는 용어는 645년 이후 국호로 사용되고 있으니 임나일본부를 일본의 정치기구로 보는 것은 억지스러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가야지역의 4~6세기 고분의 출토품을 보면, 외부 침략으로 변화된 유물은 없다. 일본서기는 한반도의 남부지역에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들어와 다스렸다는 내용을 기록한다. 강대국이었던 고구려는 할 수 없이 빼고 백제와 신라, 가야를 일본에 조공을 바친 국가라고 눈 깜박하지 않고 적어 넣는다. 그러다가 신라가 강성해지니까, 백제와 가야를 신라로부터 구원하였다고 기록한다.

일본의 야마토 정권의 500년대는 문화와 기술이 앞서 있는 가야를 통치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군사문화의 근간이 되는 철갑의 발달사를 검토해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최근의 양식 있는 학자들은 가야에 외교나 무역기관 정도는 설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부산 복천동고분군에서 출토된 가야 갑옷으로 4세기에 만들었다, 세로로 긴 형태의 철판을 이용하였고 갑옷과 갑옷을 가죽이나 작은 철 못으로 연결하였다.
부산 복천동고분군에서 출토된 가야 갑옷으로 4세기에 만들었다, 세로로 긴 형태의 철판을 이용하였고 갑옷과 갑옷을 가죽이나 작은 철 못으로 연결하였다.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에 고흥군 안동고분에서 출토된 백제의 갑옷(장방판갑)이다.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에 고흥군 안동고분에서 출토된 백제의 갑옷(장방판갑)이다.
가야보다 1세기가 뒤진 5세기경의 야마토 군대가 사용한 갑옷(단갑)이 한반도 고분에서 출토되어 왜의 한반도 용병설이 되기도 한다.
가야보다 1세기가 뒤진 5세기경의 야마토 군대가 사용한 갑옷(단갑)이 한반도 고분에서 출토되어 왜의 한반도 용병설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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