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에 대해 아십니까?
기에 대해 아십니까?
  • 괴산타임즈
  • 승인 2019.10.3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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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기’라는 말은 일상에서 흔히 쓰이고 있기 때문에 보통은 기가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감기에 걸렸다, 기가 막히다 등은 물론 기분, 기운 등 기라는 글자가 들어간 말이 많다. 그러나 막상 기가 무엇인지를 물으면 답하기 쉽지 않다.

예를 들어 ‘기분氣分’이란 무엇일까? 네이버 국어사전을 보면, 기분은 ‘대상ㆍ환경 따위에 따라 마음에 절로 생기며 한동안 지속되는, 유쾌함이나 불쾌함 따위의 감정’이라고 되어 있다. 이 사전에 따르면, 기분은 감정의 일종인데 왜 기라는 글자가 들어 있을까? 기분을 한자 그대로 풀면 ‘기의 몫’이라는 뜻인데, 왜 사전에는 이런 뜻이 들어 있지 않을까? 이런 정의는 기분이라는 말을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 걸까? ‘감기感氣’는 ‘기를 느꼈다’는 말인데, 도대체 기가 무엇이기에 그저 느꼈을 뿐인데 감기라는 병에 걸린 걸까? 심지어 ‘기절氣絶’하면 죽기까지 한다.

기분이 감정의 일종이라고 한다면 감정은 무엇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감정은, 인간이 외부의 자극을 오관을 통해 감각하여 뇌에서 반응하는 정신활동의 특수한 형태이다. 여기에 ‘기’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이러한 괴리는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 

근대 이전의 세계 

근대 이전의 우리말에서 기분이란, 우리 몸을 기로 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아니 몸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을 기로 본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는 전근대 세계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전제였다. 몸을 기로 보았을 때, 오장육부와 팔다리, 눈, 코, 귀, 입 등 몸의 모든 부분(‘부분’이라는 말도 없었다) 역시 기이다. 여기에서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 맡고 귀로 듣는 등의 모든 일은 각자가 나누어 맡은 몫이다. 몸이라는 기의 한 부분으로서, 각자가 맡은 일을 ‘기의 몫’이라고 한다. 각자가 자신이 맡은 몫을 잘 하고 있으면 기분이 좋은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기분이 나쁘다.

각 부분이 자기의 몫을 잘 하느냐 못하느냐는 눈이나 코와 같은 부분 자체의 상태에도 달려 있지만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또한 눈은 간, 코는 폐와 같은 식으로 각 부분은 오장육부와 연관되어 있어서 간이나 폐가 나빠져도 눈이나 코가 나빠지게 되고 그러면 기분이 나빠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쓰던 원래의 ‘기분’이라는 말은 단순한 감정이나 마음의 상태가 아니다. 기분은 몸이라는 기의 상태다. 이 때 몸과 마음은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다. 몸도 마음도 모두 기일 뿐이다. 기의 세계에서는 마음의 상태가 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반대로 몸의 상태가 마음의 상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몸과 마음을 나누지만 그때의 몸과 마음은 모두 하나의 기이다.

나아가 사람을 둘러싼 모든 환경 역시 기이다. 대상과 나 사이에는 마치 몸과 마음의 관계와 같은 관계가 성립한다. 나와 대상을 나누지만 그렇다고 대상이 나와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있지 않듯이 대상도 나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이는 동서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전근대 사회에서 일반적인 인식론이었다. 

근대는 무엇을 바꾸었는가 

그러던 것이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게 되었다. 먼저 대상과 내가 분리되었다. 인간이라는 주체가 부각되면서 대상은 나와 분리된 물질이 되었다. 그럼으로써 대상은 다른 모든 것과의 보편적 연관을 배제당한 채, 주체의 ‘자유의지’대로 작용을 가할 수 있는 객체가 되었다. 몸과 마음도 분리되었다. 몸은 하나의 물질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되었다.

대체로 서양의 경우, 이는 르네상스와 과학혁명을 통해 진행되었고 이를 뒷받침한 것은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었다. 동양의 경우, 근대화는 대개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화와 같이 진행되었다. 이런 과정은 주로 선교사를 통한 근대 서양의 기계와 의학의 도입으로 시작되어 근대 서양의 ‘과학’의 정착으로 완성된다. 기의 세계가 근대 서양과학의 세계로 뒤집힌 것이다. 이제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미개하여 시대에 뒤떨어졌으며 소위 전통이라는 미신에 빠져 있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기분’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근대에서의 몸은 전근대의 몸과는 전혀 다른 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를 잘 알아채지 못하는 데는 근대의 ‘과학’이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용어를 그대로 차용했다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은 일본의 해체신서解體新書(1774년)에서 정식화되었다. 여기에서는 근대서양 과학에서의 ‘리버Liver’를 전통 용어를 빌려 ‘간肝’이라고 했다. 나머지 다른 해부학 용어도 마찬가지다. ‘너브nerve’와 같이 기존에 없던 것은 ‘신경神經’이라는 식으로 기존의 용어를 가져다 재구성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무 의심 없이 마치 그것이 원래의 개념이었던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전근대에서 쓰이던 대부분의 말은 이해할 수 없거나 황당한 것이 되어 버렸다. 전근대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것은 단순히 끊어진 전통을 잇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늘의 근대를 정확하게 이해하여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전근대의 말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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